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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동호 위원장 "부산영화제,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

  • 박수진
  • 입력 2015.03.29 07:56
  • 수정 2015.06.01 14:01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집무실에서 만난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집무실에서 만난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의 입에 영화인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는 15년간(1996~2010)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부산영화제를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부산영화제는 안팎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산시장이 특정 영화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 교체를 추진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갈등 중재 역할을 기대하는 영화인들이 많습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에 계속 간섭한다면 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지 않겠다”(박찬욱 감독), “영화의 소재에 제한을 두고 간섭을 하는 영화제에 누가 오느냐. 개운치 않은 결과를 내면 부산국제영화제는 망할 것이다”(임권택 감독), “서병수 부산시장의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는 충격적이고 비통하다”(티에리 프레모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싸고 안팎으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스무해째를 맞는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평가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러나 올해 축제 분위기보다는 안팎의 여러 갈등들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19회 부산국제영화제(이용관 집행위원장)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서병수 부산시장이 불편한 심경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급기야 서 시장은 지난 1월 이용관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시장이 임기가 아직 남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일은 전례가 없다. 이 위원장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를 공동위원장 체제로 바꾸겠다며 서 시장에게 타협안을 제시한 상태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김동호(78)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입에 영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는 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 2010년 15회 때까지 위원장직을 이어갔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데에 김 위원장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영화계 안팎의 평가다. 2013년부터는 이러한 성과 등을 바탕으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동호 위원장의 상징적 존재감은 여전하다.

<한겨레>는 23일 김동호 위원장을 서울 종로구 문화융성위원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문화융성위원회 전반의 활동과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논란들에 대해 물었다. 김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깊은 수준의 언급은 삼갔다. 다만 ‘지자체 등 정부가 영화제에 지원은 하되 간섭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것, 특정 영화를 이념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부산 영화제 성공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 한다’는 원칙 덕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20회다. 김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구실을 해왔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것에 감회가 깊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한 기간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 후임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지금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데 올해도 잘 치러지리라 믿는다.

- 다만 영화제가 성장통도 앓는 것 같다. 몇년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좌파 영화제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지난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등은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프로그래머 수준이 낮다고 공격했다.

= 세계 어느 영화제에서든 초청된 상영작들에 대해 상반된 평가들이 있다. 평론가들 사이 다양한 말들이 회자되는 것이 바로 영화제의 기본 모습이다.

- 평론가의 평가는 자연스러운 거다. 그러나 정치권이 영화제의 수준을 논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 아닐까?

= 그것도 그냥 하나의 평가로 보면 된다.

- 정치권의 평가도?

= 일반 관객의 평가나 정치권의 평가도 함께 들어갈 수 있고 그런 거지.

- 그렇게 동일 선상에 놓고 봐도 될까? 부산영화제는 시비와 국비가 투입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영화제 내용을 문제 삼으면 외압으로 비칠 수 있는데.

= 글쎄.

- 임권택 감독이 10일 부산영화제 공청회에 참석해 부산시의 외압 논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 부산영화제를 걱정하는 그런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 아닌가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나 지자체의 기본 원칙이어야 하는 건 맞다. 지금까지 부산영화제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원칙이 지켜져왔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앞으로도 존중돼야 한다.

- 한국 영화가 6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우수한 영화를 배출하며 황금기를 맞다가 이후 20년 넘게 정체기를 겪었다.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된 사회 환경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표현의 자유가 크게 확대된 것과 관련이 있다. 99년 영화 <쉬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공작원과 아군이 총격전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는 북한군과 아군 초소 대원끼리 왔다 갔다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면 그런 영화들이 안 나왔을 것이고 지금과 같이 영화계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부산영화제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영화들이 상영되기 어려울 것 같다.

= 전혀 그렇지 않다. 부산영화제에서 2012년 <남영동 1985>도 상영했지 않나. 그리고 <다이빙벨>은 전혀 좌파 영화가 아니다. 그게 왜 좌파 영화인가.

-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 다이빙벨이 논란이 된 것은 좌파 영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담은 영화라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영화를 이념적으로 몰아붙일 것은 아니다.

- 다이빙벨을 상영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 한 영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잘 해결되겠지." "지켜봐달라."

다이빙벨과 부산시의 외압 논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자 김 위원장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단답형 대답을 이어갔고 때로는 특정 질문에 침묵했다. 분위기가 점점 경색되어 갔다.

- 영화인들이 김 위원장을 무척 존경하면서도 한편 최근에는 좀 답답하다고 느낀다고 토로하더라. 부산시의 외압 논란이 불거지고 심지어 칸과 베를린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도 공개적으로 비판 의견을 내는데 김 위원장께서 침묵만 하고 있다는 불만인 것 같다.

= 글쎄, 허허허, (침묵) 뭐 잘 해결되겠지. 잘 해결되리라 본다.

- 갈등의 중재에 나설 생각은 없는지.

= 잘 해결될 거다. 그렇게 믿는다.

- 막연하게 잘 해결될 거라고만 하니 좀 답답하다.

= 그대로 기사 쓰시면 된다. 지금 대화 나누는 것 그대로.

- 영화진흥위원회가 다양성 영화들에 대해 좌파 영화라며 지원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영화인들 사이에 많다.

= 모든 영화를 좌파·우파로 이렇게 이데올로기적으로 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 중에는 사회 비판적인 것들도 있을 수 있는 거다. 그런 속에서 영화가 질적으로 산업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크게 봐야지.

- 부산영화제 쪽과 부산시와의 갈등을 잘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 허 기자라면 어떻게 하겠나.

- 김 위원장께서 공개되지 않은 어떤 자리에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 그리고 영화 원로 몇몇을 모아 서로 대화하도록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서로 오해를 풀도록.

= 2월25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정기총회 때 임권택, 강수연씨 등 많은 영화인들이 찾아왔다. 그때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서 참석했다면 영화인들과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참석을 안 했더라.

- 그런 공개적인 자리가 아니라 따로 중재 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

= 하여간 (영화제 외압 논란 관련) 진전되는 걸 좀 봐달라.

김동호 위원장은 올해 나이가 일흔여덟이다. 머리와 눈썹이 하얗게 변해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움직임은 씩씩하고 정정해 보였다. 아직 한창 나이의 공무원으로 보일 정도다. 그는 작은 수첩을 품고 다닌다. 날짜별로 그어진 네모난 선 안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하루의 일정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러한 일정 소화가 가능한 것은 그가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매일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손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40여분간 동네를 걷거나 뛴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 두시간씩 집 근처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도 친다. 음식은 주로 채식 위주로 먹는다.

김 위원장은 196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보부(문화공보부의 전신. 1990년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며 문화공보부 폐지)의 공개 채용에 응시해 공무원이 됐다. 1973년 공보부 문화국 국장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문화계 쪽 일을 하게 됐다. 88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이 되었고 그때의 경력을 바탕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도 맡았다.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첫회 행사 비용 22억원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며 결국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부산국제영화제로 초대하려고 자비를 들여 프랑스로 날아가기도 했다. 영화제 기간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 전역을 누비며 참가자들의 술자리를 챙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문화 융성은 국민이 문화와 예술로 풍성해지도록 하는 것"

그가 현재 맡고 있는 문화융성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김 위원장은 문화 정책에 대해 “문화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고 문화 융성은 국민이 문화와 예술로 풍성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국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국민들이 각종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에 할인 또는 무료 입장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문화시설 1300여곳이 정책에 참여하고 있고 자세한 시설 소개는 문화융성위원회 누리집(www.pcce.go.kr)을 찾으면 살펴볼 수 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2013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진 문화정책 생산 대통령 자문 기구다. 문화계 저명 인사들이 위원으로 있고, 황우여 교육부 장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당연직 위원으로 있다.

- 2013년 7월부터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

= 모스크바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는데 청와대 모철민 교육문화 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는데, 다른 분야도 아니고 문화 융성을 위한 자문기구이니 수락했다.

- 문화부가 있는데 따로 문화융성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 문화 정책은 문화부만으로는 안 된다. 문화 정책은 교육과 방송에도 반영되어야 하고, 행정자치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서도 시행되어야 한다. 그 조율을 문화융성위원회가 맡는다.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대통령 주재 회의 때 문화융성위원회 위원과 정부 쪽 당연직 위원들도 참석해 대통령께 보고하고 안건을 논의한다.

-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정책을 펴는 게 가장 눈에 띄더라.

= 문화융성위원장에 임명된 뒤 (2013년) 8월 한달 동안 광역시·도를 계속 다녔다. 문화 예술계의 의견을 들었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것이 뭔지 요약해 8개 분야로 나누어 대통령께 보고했다. 그중 하나가 결국 국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과 문화를 접해야만 제대로 문화가 꽃필 수 있다는 거였다. 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문화 소외 지역 사람들에게 전시회나 공연을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접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 국공립 예술 기관 등을 무료나 반값으로 개방하게 했다. 문화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고 문화 융성은 국민이 문화와 예술로 풍성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 입장료가 저렴해져도 노동자들이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 공연장을 갈 수가 없다. 이런 것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 많은 기업들에 ‘문화가 있는 날’ 정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동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기대를 해본다.

- 대통령께서 문화에 관심이 많은가?

= 대통령께서 ‘문화가 있는 날’ 시행 첫달에 초등학생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대학 신입생들과 대학로 창작 뮤지컬도 함께 보시는 등 문화 융성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계시다.

- 대학로의 건물 임대료가 높아져 작은 극장이 쫓겨나고 있다. 극장주들이 최근에 시위도 했는데.

= 문화인들이 어떤 지역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으면 되레 땅값이 올라 문화인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자체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 지난해 8월 문화융성위원회가 인문정신문화 진흥 방안을 발표했던데.

=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로 짜여 있다. 학생들이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다. 사회 갈등이 심해지는 건 우리의 전통 미덕인 배려와 포용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과 인성 교육이 중요한 시기다. 학교 교육을 바꾸고 공공 도서관 등에서 인문학 강좌를 확대할 것이다.

- 교육부가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으니까 인문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만나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 황우여 장관도 우리 위원회 위원이라 만난다. 지난해 말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많이 개선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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