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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을 거부하고 망명한 이예다씨, 그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

"전문대 졸업이면 아예 일자리도 별로 없는 데다가 많은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병역"을 취업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잖아요. 병역을 거부하면 거의 같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고 출소 후에는 '전과자'가 됩니다. 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국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죠. 아버지는 육사를 나온 전직 직업 군인이셨는데 "니가 결정한 것이라면"이라고 하며 별로 말씀을 안 하셨지만, 어머니는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무조건 참아! 군대 가!" "감옥에 2년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잖아"라고 통곡하셨죠. 하지만 결국은 항공권과 생활비를 어머니가 마련해주셨어요."

지금 일본에서는 '징병제 부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이미 징병제가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된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까.

아베 정권이 지난 2014년 여름에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지난 60년 이상 금지해 온 집단적 자위권, 즉 다른 국가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인정하고 함께 반격하는 행위를 용납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 여당 내에서는 관련법 제정에 대한 협의가 막바지에 들어섰다. 법 제정이 마무리되면 미국의 한 동맹국으로서 일본의 군대인 자위대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 분쟁지역에 나서는 경우가 분명히 확대될 것이고,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싸운다는 것도 일본 사회에서 보다 현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 헌법은 국민의 의무로 "국방"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징병제를 도입에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도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자민당도 현단계에서 "징병제를 도입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60년 동안 헌법이 금지해 온 집단적 자위권을 "해석 변경"으로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현 정권이니까 징병제 역시 "해석 변경"을 통해 도입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지난 1월,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이예다씨(24)를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그는 2014 년 9월에도 일본을 방문해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미래 세대를 위해, 내 이야기가 참고가 되면 좋겠다"고 자기 체험을 이야기한 바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망명까지 해야 하는 걸까. 멀지 않은 미래 일본도... 라는 생각은 김칫국부터 마시는 걱정일까. 그런데 언젠가 내 가족이나 친척이 그런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CIA에 의하면 징병제를 도입한 국가는 이스라엘, 쿠바, 스위스, 노르웨이, 북한, 한국 등이다. 이중 많은 국가에서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 이들의 경우 정부기관이나 사회복지 시설 등에서 대체 근무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에 징병제를 사실상 폐지한 독일의 경우는 사회복지 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으로 병역을 대체할 수 있었고, 실제로 군에서 복무한 젊은이는 2010년 시점을 기준으로 대상자 중 16%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병역 거부로 수감된 사람은 2015년 2월 기준으로 무려 636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대부분이 종교단체 여호와의 증인 신자지만, 이예다씨는 신자가 아니다. 신자가 아닌 병역 거부 수감자가 8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면, 한국사회로부터의 압력이 얼마나 강한지 놀랄 수밖에 없다.

원점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 왜 병역을 거부한 건가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를 빌려주었고 "전생윤회"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먹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파리나 모기를 죽이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세가 가까워질수록 "총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직업에 종사하는 의무를 다해야 하나?"라고 고민하게 됐죠. 선배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야" "의무라니까" 등의 얘기만 할 뿐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교외의 전문대에 들어갔는데, 저는 군대에 가지 않은 채 졸업했죠. 재학 중에 병역 거부자들의 체험기를 담은 책을 읽었고, 한국군의 역사도 배웠습니다. 5.18 때 민간인을 탄압했고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외국인을 학살했습니다. "진정 국민을 위한 군대라고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생겼죠.

─ 입학한 지 얼마 안된 2010년 4월에는 천안함 사건이 있었는데, 영향이 있었나요?

확실히 있었죠. 언론과 민간 단체가 사고로 죽은 병사들을 영웅시하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졌습니다. "전쟁은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피부로 느꼈고, 군대가 신성하고 멋있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무서워졌죠.

졸업 후 집 근처에 있는 PC방에서 시간당 4300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전문대 졸업이면 아예 일자리도 별로 없는 데다가 많은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병역"을 취업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잖아요. 병역을 거부하면 거의 같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고 출소 후에는 '전과자'가 됩니다. 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국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죠. 병역이 없는 민주주의 국가 중 난민 신청 시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를 찾다가 결국 프랑스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 가족은 반대하지 않았나요?

아버지는 육사를 나온 전직 직업 군인이셨는데 "니가 결정한 것이라면"이라고 하며 별로 말씀을 안 하셨지만, 어머니는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무조건 참아! 군대 가!" "감옥에 2년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잖아"라고 통곡하셨죠. 하지만 결국은 항공권과 생활비를 어머니가 마련해주셨어요. 2012년 7월에 관광 명목으로 프랑스에 입국해 다음날 난민 신청을 지원하는 NGO "FTDA"에 간신히 도착했죠.

난민 신청을 위한 임시 주소 등록, 의료 보험 신청 등을 거쳐 11월에 프랑스 난민 무국적자 보호국(OFPRA)의 서류 심사가 있었고, 2013년 5월에 면접을 봤습니다. 병역을 거부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 것, 그 동안 배운 한국군의 실상을 호소했더니 면접관들은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라고 모두 놀랐죠. 한 달 후에 난민으로 10년의 체류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나왔다더군요. 신청해서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 취업할 수는 없었지만, 노숙자 등 사회 취약 계층에 식사 등을 제공하는 "사회복지 센터"가 잘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대학에 들어가려고, 프랑스어 등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2014년 봄에 윤일병 사건과 관심 병사의 난사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나서 징병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의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징병제 자체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한국의 의견은 큰 소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군 당국은 불상사를 은폐하려 했고, 인권교육 등 미봉책을 내놓는 데 그쳤죠. 그런데 군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확실히 바뀌고 있습니다. 징병 대상인 젊은 세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징병, 군대 등의 문제를 피부로 파악하고 싶었다"

작년 9월에 이예다 씨를 일본에 초청한 것은 작가이자 활동가인 아마미야 카린 씨였다. 주로 외국 특파원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시민단체 집회 등에도 함께 참석했다. 아마미야 씨는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헌법 해석 변경에 따라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싸운다는 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있었다.

─ 왜 이에다 씨에게 관심을 가졌나요?

2014년 8월에 아는 사람과 술을 마시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젊은데 "살인은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망명까지 했다. 그것에 감동해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술자리에서 바로 "일본에 와 달라"고 전화했습니다.

마침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로 여태까지 대부분 사람과 상관이 없었던 "군대"라는 존재가 조금씩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다가왔던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기감을 갖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괴리가 너무 심해서 위기감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했었습니다. 예다 씨를 만나면 전쟁, 징병, 군대 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008년에 한 잡지의 기획으로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한국의 징병제와 병역 거부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를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영에서의 가혹행위는 물론 입영이 싫어서 자살한다든가, 청소년 문제라는 관점에서도 일본과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시민단체의 한 회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은 헌법 9조가 있고 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반공 라인"이 한국으로 설정돼 방위를 강요당하고,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도 상관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달라"고. 지금까지 이웃 나라에 징병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충격이었습니다.

─ 일본인에게 징병제는 아직 절박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위협으로는 다가오지 않은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슬람 국가" 인질 사건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이 "필요하겠지" 혹은 "해외 동포를 내버릴 수 있겠나"라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고, 테러의 위협이라는 말에 선동돼 모두가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우선 해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끝까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지만.

저도 미국의 경제적 징병제(지원병 제도이지만, 실업과 저임금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없이 군대를 지원하는 것)도 지식으로만 알고는 있었죠. 다만 그것이 일본에 도입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모르니까 먼저 실태를 알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었죠. 가장 영향이 큰 젊은이들에게 살인자가 되기 싫어서 나라를 버린 한국 젊은이를 소개해주고 싶었죠. 한국에서는 병역을 거부하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하는 것조차 나는 몰랐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도 못하다니,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스템인지 모릅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예다 씨 이야기를 들은 일본 젊은이들은 친구와 같이 음악활동 같은 것도 할 수 없고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말하자면 평범한 젊은이들의 작은 소원조차 이룰 수 없는 한국 군대의 현실에 놀랐답니다.

─ 일본에서 자민당이 헌법 개정을 목표로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자민당이 이미 만든 개헌 초안에서도 "징병제를 도입할 생각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아마 "전쟁하는 국가 일본"으로 변해가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2008년에 만난 한국 사람도 말했죠. "우선 신체검사 등 건강한 사람의 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대학생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논의하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자문회의에서 어느 경제인 단체 간부가 "학자금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방위성에서 인턴십을 시키라"고 발언했습니다. 아마 상당히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나서 한 말이겠죠. 지금 일본에서는 장학생의 10% 이상이 취업난과 저임금 노동 등으로 학자금 대출 상환을 체납하고 있는데 이 방안은 "경제적 징병제"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죠. 나중에는 저임금 직업에 종사하거나 무직인 젊은이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일본에서는 제2차 대전 패전 후에 징병제를 실시하는 "군대"가 일단 없어졌는데 세계에서는 징병제에 관한 문제가 지난 70년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일본에서는 그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다른 나라의 전쟁에 참가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죠. 이제 일본인도 전쟁, 군대, 그리고 "총을 들고 전쟁에 나가는 것"이란 무엇일까, 잘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을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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