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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위안부, 인신매매의 희생자"

  • 김병철
  • 입력 2015.03.28 07:25
  • 수정 2015.03.28 07:27
Japan's Prime Minister Shinzo Abe reacts to a question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his official residence in Tokyo, Tuesday, Nov. 18, 2014. Abe called a snap election for December and put off a sales tax hike planned for next year until 2017, vowing to step down if his strategy falls flat. (AP Photo/Shizuo Kambayashi)
Japan's Prime Minister Shinzo Abe reacts to a question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his official residence in Tokyo, Tuesday, Nov. 18, 2014. Abe called a snap election for December and put off a sales tax hike planned for next year until 2017, vowing to step down if his strategy falls flat. (AP Photo/Shizuo Kambayashi) ⓒASSOCIATED PRESS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받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교묘한 물타기'를 시도하고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는 표현을 들고 나온 것이다. 27일(현지시간)자로 발매된 워싱턴 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직접 꺼내 든 표현이다.

이는 그동안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던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언급해 언뜻 긍정적으로 비친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인신매매는 국제사회에서 여성이나 아동 등 약자를 상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착취하는 행위를 통칭하고 있다. 그동안 아베 내각은 1993년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 '광의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강제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인신매매를 언급한 것이라면 나름대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아베 총리의 이번 언급이 기존 입장과 전혀 달라진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게 워싱턴DC 외교소식통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가 `인신매매의 주체'를 적시하지 않는 대목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아베 정권은 위안부를 동원한 주체가 민간업자들이었고 심지어 조선인들이 가담했다는 억지 주장을 펴왔다.

일본제국주의 군대, 즉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온 것이다.

성(性)을 목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소식통은 "당시 징용피해자들 역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었다"며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극악성을 흐리기 위한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면서 '사과와 반성'(apology and remorse)이 아닌 '가슴 아프다'(my heart aches)라는 표현을 쓴 점이다. 이는 가해자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데 쓰이는 표현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주당 내각은 2012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은 뒤 사과와 반성이 삭제되고 '깊이 고통을 느낀다'(deeply pained)라는 어정쩡한 표현이 들어갔다.

결국,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한 사실이 없고 한국이 사실을 왜곡·과장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는 지적들이 많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현재 진행 중인 한·일 실무급 '위안부' 협상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위안부는 일제에 의해 매우 조직으로 저질러진 구체적인 범죄"라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성노예'(sex slaves 또는 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위안부=인신매매 희생자' 표현은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로 인식하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적절히 무마하면서도 기존의 역사수정주의 입장을 고수하려는 '절묘한 꼼수'라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아베 총리가 미국 정치권과 외교가에 영향력이 큰 WP를 골라 인터뷰를 시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아베 총리가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미국의 여론주도층을 상대로 일종의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치 아베 총리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고 반성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줌으로써 상·하원 합동 연설때 위안부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외교소식통은 "위안부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할 기회가 없었던 미국의 여론주도층으로서는 아베 총리의 언급을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의 이날 인터뷰에서 주목할만한 대목은 그가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2005년 종전 60주년 때의 고이즈미(小泉) 담화 등 전임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는 1월초 신년 기자회견과 2월 중순 참의원에서 밝힌 언급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문제는 '전체로서 계승한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이는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통절한 반성' 등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들을 그대로 사용할지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아베 내각이 고노(河野)담화를 재검증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미국 역사교과서를 상대로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흐름을 고려할 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결국, 아베 총리의 이번 WP 인터뷰는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를 어떤 식으로든 덮고 가려는 의도를 다시금 확인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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