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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멸망시킬 소행성 충돌을 막을 수 있을까?

  • 김도훈
  • 입력 2015.03.27 12:46
  • 수정 2015.03.27 12:47

불과 수십㎞ 지름의 소행성의 충돌로도 지구는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6500만년 전 공룡 멸종이 북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제 정설입니다. 최근에는 유난히도 지구를 백지장처럼 스쳐가는 소행성이 많아지면서 불안감이 높아집니다. 관측기술의 발전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효과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구에 근접하는 소행성들에 대한 연구에 예산이 투자되고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아는 게 힘일까요, 아니면 병일까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또 하나의 행성. 18세기 후반 천문학자들은 토성 이후 또 하나의 태양계 행성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이때 독일 비텐베르크대학의 수학 교수 티티우스와 베를린 천문소장 보데가 ‘티티우스-보데 법칙’을 가지고 나온다.

a=2ⁿ×0.3+0.4

지구가 1번 행성(n=1)일 때 지구와 태양까지 거리(a)는 1AU(약 1억5000만㎞)다. 수성 -∞, 금성 0, 지구 1, 화성 2, 목성 4, 토성 5를 n의 자리에 넣고 계산하면(단, n=3은 빠져 있다) 놀라울 만치 실제 관측치와 가까운 태양과 행성 간 거리가 나왔다. 1781년 윌리엄 허셜이 이 법칙이 예견하는 위치에서 천왕성을 발견했을 때, 천문학자들은 이 법칙의 정확성에 환호했다. 그렇다면 n=3의 자리에 무언가의 행성이 숨어 있다는 말이었다. 열정적으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공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미지의 행성이 드러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801년 1월1일 피아치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새로운 행성 ‘케레스’(Ceres·세레스)를 발견한다. 피아치의 고향, 시칠리아섬 수호여신의 이름을 땄다.

경쟁적으로 많은 행성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행성이라 부르기에는 크기가 작고 울퉁불퉁한 암석 덩어리가 대부분이었다. 케레스나 팔라스처럼 적당히 큰 천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강가의 돌멩이처럼 잘기만 했다. 태양을 공전하긴 했지만 술에 취한 사람처럼 궤도가 비틀거렸다. 결국 천왕성 이후 최종적으로 행성 지위에 오른 건 해왕성과 명왕성뿐이었다. (명왕성은 나중에 자신보다 큰 소행성이 줄줄이 등장하자 행성 자격을 잃는다.)

학자들은 행성 지위에 오르지 못한 별들을 소행성이라고 불렀다. 케레스 같은 비교적 큰 행성들은 왜행성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만들어 위로해주었다. 지천에 널린 소행성은 자연스레 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우주의 시원을 규명하는 빅뱅 이론, 태양계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는 카이퍼벨트, 오르트구름대 같은 주제에 비하면 소행성은 너무 사소했던 것이다.

그나마 소행성의 명맥을 이은 것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소행성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이름을 지었다. 2010년까지 약 23만개의 소행성이 발견됐다. 대부분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 목성과 같은 궤도상의 트로이 소행성군 그리고 명왕성 너머 태양계의 변두리 카이퍼벨트에서 태양을 회전한다. 그래 봤자 소행성의 질량을 모두 합쳐도 지구의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소행성은 태양의 중력이 끌어당기는 티끌들이다.

영화 <아마게돈>

지구처럼 태양을 도는 소행성은 지구 궤도를 가로질러 지나갈 수 있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지만 그때 지구와 부딪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영화 <아마겟돈>과 <딥임팩트>는 정확한 과학적 사실 묘사 논란과 관계없이 우리가 가진 공포를 잘 드러내주었다. 물론 한없이 넓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가 하나의 티끌을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는 우주의 행성과 소행성 그리고 많은 별자리를 주목하지만, 우주 공간은 이들의 존재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허공에 가깝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우리는 광막한 사하라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술 취해 비틀거리는 타조가 자동차로 돌진한다. 예상할 수 없었다. 자동차는 쿨럭쿨럭 연기를 일으키고 항상력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6500만년 전 실제로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룡은 포유류가 번성하기 이전 지구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졌다. 대략 6500만년 전,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 팔레오세의 경계 지점이었다. 지질학자들은 이를 공룡과 포유류의 시대를 나누는 ‘케이티(K-T) 경계’라고 부르는데, 2억5000만년 전 ‘페름기 대멸종’에 이은 대량멸절 사태가 짧은 시간 지구를 뒤흔들었다. 공룡을 비롯해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절반이 사라졌다.

공룡 멸종은 오랫동안 지질학계의 최대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지구에 닥쳤길래 포악하고 질긴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라졌을까. 화산 폭발, 해일 혹은 한파 등 전지구적인 기후재앙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추정하기는 어려웠다. 유력한 가설은 인도의 데칸고원에서 나왔다. 데칸고원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광대한 화산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인도 대륙에서 길고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었고 이것이 전지구적인 기후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것으로만은 부족했다. 미스터리는 엉뚱한 데서 풀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는 이탈리아에 있는 백악기와 제3기 팔레오세 지층 사이에 있는 얇은 점토층에 주목했다. 그는 이 지층에서 이리듐 농도가 유난히 높게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리듐은 지구에서 잘 발견되는 물질이 아니다. 우주에서 훨씬 더 잘 발견된다. 지구에는 ‘우주 먼지’로 떨어지거나 운석과 함께 도달한다. 앨버레즈는 과감한 가설을 내놓는다. 공룡의 멸종은 소행성 충돌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너무 의외여서 처음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전세계의 케이티 경계 지층에서 이리듐이 검출됨으로써 정설이 되어갔다.

북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에서 발견된 칙술루브(Chicxulub) 분화구는 6500만년 전 지구가 어느 소행성의 습격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지름 180㎞, 깊이 20㎞ 이상의 거대한 구덩이는 당시 지구 궤도에 뛰어든 소행성이 얼마나 덩치가 컸을지 상상하게 해준다.

운석이 뻥 쳐버린 지구의 지각판은 지진과 화산 폭발을 일으키고 대륙을 향하여 해일을 발진시켰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대기에 가득 찬 화산재는 햇볕을 차단했다. 식물의 생장이 멈추면서 생태계는 아래에서부터 붕괴됐다. 공룡 중에서는 초식공룡이 첫 희생자였을 것이고,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육식공룡도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는 ‘리부트’됐다. 다시 진화의 역사가 재개됐고 포유류가 번성했고 인간이 탄생해 군림한 게 지금이다.

소행성이 지구에 돌진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초속 40㎞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소행성은 산산이 부서진다. 대부분의 파편은 대기와의 마찰로 가열되면서 사라지지만(이것이 유성이다), 큰 파편은 땅을 들이받고 상처를 남긴다. 이 파편이 운석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사우스웨스트연구소의 윌리엄 보트케 박사 등이 200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칙술루브에 흔적을 남긴 운석은 지름 10㎞의 바위산 정도 크기였다. 지구 대기권에서 깨지기 이전에는 이보다 컸을 텐데, 보트케 박사 등은 밥티스티나 소행성군 가운데 궤도가 바뀐 소행성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다른 소행성을 주범으로 지목하는 주장도 나오는 등 이제 공룡 멸종의 원인을 부른 소행성을 찾는 게 학계의 관심사다.

2013년 2월 소행성의 파편이 러시아 첼랴빈스크를 덮쳤다.

2013년 2월15일 러시아 우랄산맥 부근의 첼랴빈스크에 운석이 떨어진 장면은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했다. 건물 4500채가 파괴되고 1000여명이 다쳤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운석의 크기가 지름 17~20m, 최고 초속 18.6㎞로 날아온 것으로 추정했다. 운석은 소행성의 파편이므로, 본체인 소행성은 이보다 더 컸을 것이다.

16시간 뒤 또 하나의 바윗덩어리가 지구에 돌진했다. ‘367943 두엔데’(2012 DA14)는 지름 45m의 농구장만 한 소행성이었다. 지구 공전주기와 비슷한 368일 주기로 태양을 도는 367943 두엔데는 이날 초속 7.8㎞로 상공 2만7700㎞까지 지구에 바싹 붙었다. 정지위성이 공전하는 정지궤도가 3만6000㎞ 상공이니, 우주적인 공간 개념에서 보면 이 소행성은 지구의 마당을 침범한 것이다. 만약 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졌다면 첼랴빈스크에 떨어진 운석보다 훨씬 큰 피해를 남겼을 것임이 자명했다. 2011년에는 ‘2011 엠디(MD)’가 1만2000㎞ 상공에서 비껴간 적이 있다.

소행성은 때때로 방향을 바꾼다. 인간은 얼마간 예측하지만 손을 쓰기엔 너무 늦다. 소행성에 관한 한 지구의 운명은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지구의 공전궤도가 고속도로라면, 우리는 지금 시속 10만㎞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길을 살펴보지도 않고 건너는 보행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공룡 멸종을 불러온 소행성 충돌이 “일반적인 보험 통계 기준으로 볼 때, 어느 개체의 평생 동안에 일어날 확률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불운한 개체의 생애에 일어나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결사적으로 소행성 충돌을 막아야 할까. 우리 세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은 ‘통계적 사실’이다. 그러나 불안은 냉정을 무너뜨리는 촉매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듯 ‘어떤 불운한 개체’가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는 불안을 우리는 씻을 수 없다.

미국의 우주선 딥임팩트호가 템펠 혜성에 접근해 충돌기를 떨어뜨리고 67초 뒤에 포착된 폭발 장면.

미국 항공우주국은 2005년 영화와 같은 이름의 ‘딥임팩트’ 우주선을 발사해 ‘템펠’(9P/Tempel) 혜성에 근접시킨다. 우주선은 일종의 충돌기를 떨어뜨려 작은 폭발을 일으켰고, 혜성에는 크레이터가 형성됐다. 적어도 어느 미친 소행성(혹은 혜성)이 지구에 달려들 때 ‘지구의 전사들’이 출동해 소행성에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를 지킨다는 시나리오의 일단은 확인한 셈이다.

소행성에 뭔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됐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소행성의 궤도를 바꿀 만큼의 에너지를 투입하려면 수만 수십만개의 핵폭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덩어리를 들고 정확한 지점에 투척하는 아주 빠르고 강대한 우주선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지금 상상하는 미사일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난다 해도 우주 공간을 항해하는 추진력을 얻기란 쉽지 않다.

덕분에 현대과학은 소행성의 비밀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미국 항공우주국 등은 지구 궤도를 가로지르는 소행성과 혜성 등을 모니터링하는 ‘지구 근접 천체’(Near-Earth Object, NEO)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사후대책은 없지만 적어도 다가오는지는 안다. 2013년 1월 국제천문연맹 산하 소행성센터에 등록된 ‘근지구소행성’(Near-Earth Asteroids, NEAs)은 9440여개에 이른다. 충돌 잠재력이 있는 별들이다.

물론 소행성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충돌을 방지하는 것 말고도 다른 과학적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지구 궤도에 뛰어드는 ‘어느 미친 보행자’를 막을 순 없어도 뭔가는 나올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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