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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달러? 허리띠 더 졸라맨다

  • 허완
  • 입력 2015.03.26 05:57

“국민소득이 곧 3만달러에 이른다는데, 내 소득이 늘어나는 건 물가상승률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고 노후대비도 해야 하고, 주택 대출금도 곧 원금상환을 시작해야 하니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게 당연하지요.”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김아무개(48)씨의 얘기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8000달러를 넘어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발표가 그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했다.

25일 한은이 내놓은 ‘2014년 국민계정(잠정치)’을 보면, 지난해 우리 경제는 3.9% 성장(명목 국내총생산 기준, 실질 경제성장률은 3.3%)하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968만원으로, 전년도에 견줘 3.5%(101만3000원) 늘어났다. 달러로는 7.6%(2001달러) 늘어난 2만8180달러에 이르렀다. 달러환산 소득이 크게 증가한 것은 원화가치가 지난해 3.8% 올라서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의 소득을 빼고 국민 개인의 주머니 사정을 볼 수 있는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 세금·연금 등을 빼고 개인이 임의로 쓸 수 있는 소득)은 3.3% 늘어나는 데 그쳐, 1인당 국민총소득 증가율(3.5%)에 못 미쳤다. 또 가계의 소비를 중심으로 한 민간의 실질 소비는 실질 경제성장률(3.3%)을 크게 밑도는 1.8% 증가에 그쳤다. 가계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소비지출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지난해 1662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4인 가족 기준으로는 평균 6650만4000원이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3.3%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3.2%) 이후 최저치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3%)과 같은 수준이다. 이는 성장의 과실이 가계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2012년과 2013년엔 각각 3.4%와 4.5% 늘어, 1인당 국민총소득 증가율(3.3%, 3.0%)을 웃돌았지만, 지난해엔 국민총소득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56.0%로 전년(56.2%)보다 소폭 줄었다. 이 비율은 2001년(61.7%)까지만 해도 60%를 넘었지만, 이후 기업소득이 가계소득보다 빠르게 늘면서 50%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62.6%(2012년 기준) 수준으로 우리보다 7%포인트가량 높다.

경제는 아직 활력이 미약하다. 실질 경제성장률은 2012년 2.3%에서 2013년 2.9%, 지난해 3.3%로 매우 완만한 속도로 높아졌다. 가계가 지출을 억제해 소비가 부진한 것이 경제 활력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 지난해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실질 민간소비증가율은 1.8%로 2009년(0.2%) 이후 가장 낮았고, 3년째 1%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계의 소득 증가도 부진했지만 부채 상환이나 불안한 앞날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는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가계순저축률은 6.1%로 2004년(7.4%)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김영태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가계저축률이 높은 것은 경제 안정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가계 소비성향이 낮아진 점은 경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태 엘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질 낮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고용이 늘고 자영업 상황이 악화하면서 국민소득 증가만큼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지속돼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자 가계가 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포괄적인 물가수준을 보여주는 지디피(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0.6%로 전년(0.9%)보다 다소 낮아지면서 2년째 0%대 수준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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