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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들을 만나러 오키나와에 가다

한 번도 의뢰인을 만난 적이 없는 사건이 있다. 의뢰인은 조선적 재일동포인 정영환 교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조부모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 온 재일동포 3세다. 조선적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의 국적이 '조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한국에 들어오려면 먼저 재일한국영사관으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한다.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조선적 재일동포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한 번도 의뢰인을 만난 적이 없는 사건이 있다. 의뢰인은 조선적 재일동포인 정영환 교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조부모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 온 재일동포 3세다. 조선적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의 국적이 '조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한국에 들어오려면 먼저 재일한국영사관으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한다.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조선적 재일동포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2009년 5월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정영환 교수는 오사카영사관에 여행증명서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정영환 교수를 대리해서 정부의 발급 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고 작년 초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정영환 교수의 입국은 요원해졌다. 그래서 직접 그를 만나러 2월 13일 오키나와에 갔다.

그러나 정영환 교수를 만나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이 금지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더 나아가 재일동포정책에 대한 고민을 풀고 논의하기 위함이 주된 이유였다. 일본에서는 정영환 교수 외에도 오키나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적 재일동포 백충 일본 변호사, 그리고 조선적을 유지하다가 몇 년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김철민 일본 변호사가 모임에 동참했다. 한국에서는 재외동포의 인권을 보장하고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도모하는 단체인 지구촌동포연대(KIN)의 배덕호 대표, 최준혁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리 일행은 오키나와합동법률사무소와 헤노코 미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 있다. 그래서 탄약고와 활주로를 갖춘 신기지를 헤노코 지역에 건설하기 위해 토지 매립 작업을 하고 있다.

헤노코 미해군기지 매립 현장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대규모로 벌이고, 오키나와합동법률사무소는 이들 주민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제주도 강정과 모든 면에서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강정 주민들과도 연대해서 싸우고 있다고 한다.

헤노코 미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일행 및 주민들과 함께

이어서 우리 일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민들과 일본군이 미군의 공습을 피해 숨어 지냈던 아부치라 가마(자연동굴)를 찾았다.

안내원이 아부치라 가마 입구에서 설명하고 있다.

좁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 몇 백 명의 사람들이 반 년 가까이 생활했다고 한다. 동굴 안 구멍으로 스며들어오는 햇빛을 조명 삼아 다친 일본군들을 수술했다고 한다. 어린 여학생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민들과 일본군의 대소변을 동굴 밖에 내다버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로 꽉찬 비좁은 공간에는 조선인 위안부도 있었다고 한다. 무거운 감정을 누르고 찾은 평화기원공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평화기원공원 내 조선인 희생자 명단. 이곳에서도 남과 북은 갈라진다

그러고 보니 답사한 모든 곳이 전쟁 및 평화와 관련된 곳이다. 그런데 이 찝찝한 감정은 무엇인지. 답사한 그 모든 곳에서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로만 그려졌다. 일본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주변국들에 피해를 입힌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일본이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최소한 주민들의 상황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오키나와는 류큐왕조가 있는 독립국가(유구국)였다. 1800년대 후반 류큐왕조가 무너지고 오키나와는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일본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강요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나루토(본토)와 우리는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국의 도발을 오키나와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일본국의 피해로 위장한다. 반면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에 관해서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 정부에 이로우면 국민임을 강조하다가도 정부에 이롭지 않으면 주민들과 대척점에 선다.

'달면 먹고 쓰면 뱉는'식의 정책은 한국 정부에도 해당된다. 평화기원공원에는 거대한 한국인위령탑이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징용을 당한 조선인이 1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오키나와에서 전사하거나 학살을 당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리는 위령탑은 분명 뜻 깊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것은 위령탑이 진정 고인들을 기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고인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다. 그들 중에는 북에 고향을 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당시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위령탑의 이름은 '한국인' 위령탑이다. 위령탑에는 '대통령 박정희'가 크게 새겨져 있다. 위령탑의 휘호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한다. (참고로 박정희 정권 시절 위령탑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고인들을 기리기 위함인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기 위함인지 알 수 없다.

오키나와 평화기원공원 내 한국인위령탑, 휘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휘호 왼쪽에 '대통령 박정희'라고 새겨져 있다.

멀리 오키나와에서 민족과 동포의 아픔을 기리겠다는 한국 정부는 같은 민족과 동포인 조선적 재일동포에게는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다. 모임 사흘째, 우리는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이 거부되는 상황을 그린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항로'는 재일동포 극단인 '항로'의 대표이자 배우인 김철의 씨가 조선적으로 살아온 사연, 보고 싶은 한국의 관객들을 만나지 못하는 사연을 담고 있다. 제주MBC의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다'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아픈 현실과 삶을 다루고 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조선적을 유지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들이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부모, 조부모가 조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 크다. 조선적 재일동포이자 한국 남성과 결혼한 리정애 씨는 결혼 후 한국에서 몇 년째 생활하고 있지만 친정에 갈 수 없다. 친정이 있는 일본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길이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계속해서 조선적 재일동포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에 대한 선택을 요구한다.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입국하고 싶으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라고 한다. 동시에 일종의 준법서약을 요구한다. 그러나 굳이 취득과 준법서약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국적법상으로 조선적 재일동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따라서 조선적 재일동포는 여권을 발급 받는 게 맞다. 그래서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이 금지되는 이 상황과 정면 대결하기로 했다. 여행증명서가 아닌 여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출입국의 자유가 있음을 당당히 내세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대응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번 일정을 마무리했다.

내년에는 꼭 한국에서 만나길 바라본다.

글_윤지영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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