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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 남부를 가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세계에서 깨끗한 물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7억4800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 남아시아 인구가 1억4900만명인데, 인도 사람들의 비중이 61%나 된다. 인도인 가운데 한 해에 45만명이 더러운 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14~18일 인도에서 식수용 새 우물을 파고 위생교육을 벌이는 국제구호개발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인도 벵갈루루의 물 부족 지역을 다녀왔다.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의 도시 벵갈루루. 지난 14일 이곳 칙잘라 지역에 있는 마라나야카나할리 마을의 좁은 흙집에서 아차나(8)를 만났다. 아차나의 왼쪽 옆구리는 휘었다. 인도에서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다. 부모와 두 남동생이 함께 사는데, 가족이 마실 물을 길으러 물항아리를 옆구리에 끼고 하루에 3~4번씩 왕복 40분 거리에 있는 물탱크를 오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전기를 이용해 물을 길어올리는데, 전기 사용량이 많은 때(건기인 2~5월)에는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물을 받으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아차나는 이 때문에 학교도 종종 결석한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 아차나가 한개에 80루피(약 1420원) 하는 10ℓ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옆구리에 끼고 또 물을 받으러 집을 나섰다. 길은 어린 아차나에게 위험하다. 채석장에서 돌을 실은 큰 트럭들이 자주 지나간다. 아차나는 “차가 많이 다녀 무섭다. 차도 아닌 곳으로 걸으면 뱀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힘들게 길어 오는 물이지만 깨끗하지 않다. 아차나의 엄마 치카발라푸라(28)는 “아이들이 설사를 자주 한다. 신선한 물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먹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차나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비디아나가르 크로스 마을이 있다. 이곳에 사는 시바라주(13)는 지난해 2월 두살 위인 누나 지얌마를 잃었다. 지얌마는 채석장 옆 호수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물에 빠져 숨졌다. 사고 이틀 뒤에야 호수 위로 떠오른 딸을 찾았다는 엄마 샨타(30)는 “물 공급만 잘됐다면 지얌마가 호수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울었다.

벵갈루루에서 차로 5시간 떨어진 반디푸르 지역은 코끼리, 호랑이 등 야생동물보호구역이 있는 국립공원이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이곳은 한해 평균 강우량이 520~560㎜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지역이다. 건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마실 물이 부족해진다.

양치기라는 뜻의 아디나카나베이 마을에서 평생을 산 마칭가(72)는 5년 전 곰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았다. 양에게 물을 먹이러 집에서 1㎞ 떨어진 호수에 가던 길이었다. 그 사고로 병원에서 한달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왼쪽 눈을 잃었고 왼쪽 얼굴 부위가 내려앉았다.

사고 이후 정부는 호수 근처에 우물을 설치했지만, 이른 아침이나 밤이면 코끼리가 와서 물이 지나는 파이프를 뽑아버리곤 한다. 16일 만난 마칭가는 “사흘 전에도 코끼리가 마을에 다녀갔다. 건기가 되면 수도에서 새는 물을 마시려고 코끼리가 마을까지 온다”고 했다.

옆마을 칼라말라에 사는 60대의 케차나도 4년 전 물을 뜨러 호수에 가다 곰에게 물려 팔과 다리를 다쳤다. 그는 “몇년 전부터 비가 내리지 않는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호수를 이용한다. 해가 떠 있을 때만 호수에 다녀온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식수와 공중위생 보고서’(2014)를 보면, 인도인 12억2000만명 중 9200만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한다. 비위생적인 화장실을 쓰는 사람은 7억9200만명이나 된다. 아예 외부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도 5억9700만명에 달한다.

국제구호개발단체 굿네이버스는 인도에서 깨끗한 지하수원을 찾고 학교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식수위생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벵갈루루 주변 6개 사업장에서 우물 6곳을 팠다. 정부가 주민들을 위해 수도시설을 만들었지만 깨끗한 지하수를 퍼올리지 못해 더러운 물을 마셔야 하는 곳에 새로 우물을 판 것이다. 이 덕에 호수에서 누나를 잃은 시바라주 가족이 사는 마을은 지난 2월부터 지하 850m에서 끌어올린 깨끗한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곰에게 습격당한 케차나가 사는 마을 주민들도 지난해 10월 우물을 판 뒤 야생동물이 어슬렁거리는 호숫가로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된다.

“손을 깨끗이 씻고 화장실에 갈 때는 슬리퍼를 신는다.” 18일 오전 칙잘라 손나파나할리 공립학교에서 만난 시바라주가 식수 위생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시바라주는 뎅기열에 걸리지 않으려면 우물에서 떠온 깨끗한 물이라도 덮개를 씌워야 한다는 주제의 연극에도 배우로 출연했다. 매달 한차례씩 굿네이버스 직원한테서 올바른 물 사용법을 배운다. 시바라주와 380여명의 친구들은 학교 정수기에서 받은 물을 교실로 가져간다. 영어교사 아니타는 “정수기가 설치되기 전 깨끗하지 않은 물을 마시기 싫어한 한 아이가 담석증에 걸린 적도 있다. 지금은 아이들이 물을 많이 마신다”고 했다.

근처 수바시나가르 학교에 다니는 아치타(9)도 학교에 설치된 정수기 물을 마신 뒤로 더는 아프지 않다. 전에 마시던 물에는 진흙이 섞여 있었다. 흙을 가라앉힌 뒤 끓여 먹었지만 황달에 걸렸다. 1년 동안 열이 나고 설사와 구토를 했다. 아치타는 “물이 달다. 이렇게 맛있는 물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아치타가 사는 마을은 아직 깨끗한 식수원이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은 아치타가 집에서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정수기 물을 떠 가게 한다.

김민정 굿네이버스 인도지부장은 “인도에서는 도시와 농촌 모두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어렵다. 새 우물을 설치하는 곳은 주민의 동의를 받은 공공부지다. 설치 전에 지역 정부로부터 우물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계획을 받고, 이후에는 주민들과 지역 정부가 스스로 우물을 운영하도록 한다”고 했다.

‘생명의 샘’ 우물을 지켜라…칙잘라 여성들 자조모임 꾸려

굿네이버스가 판 우물을 넘겨받은 인도 지역 정부는 ‘워터맨’을 고용해 이를 관리하지만 주민들의 감시가 없으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굿네이버스는 주민들 스스로 정부와 협상하고 삶을 가꿀 수 있도록 꾸린 자조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마을 여성 15~20명으로 구성된 자조모임은 각자가 낸 돈으로 2%의 낮은 이자만 받고 생활자금을 대출해주는 일종의 계모임이기도 하다.

15일 인도 벵갈루루 칙잘라에서 마을 여성 15명이 모였다. 물이 부족한 건기에 우물을 어떻게 운영할지, 지역 정부에 요청할 것은 더 없는지를 논의했다. 사베라(37)는 18개월 전 모임에서 4만루피(약 71만원)를 빌려 꽃과 과일을 파는 작은 가게를 시작했다. 그는 가게를 하기 전까지 8년 동안 채석장에서 돌을 날랐다. 일하다 오른쪽 손가락 마디 하나가 잘리는 사고도 당했다. 14살인 막내아들 리야즈는 엄마의 점심 도시락을 나르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빌린 돈을 다달이 조금씩 갚아 나가는 사베라 가족에게 남은 빚은 이제 2만8000루피(약 49만6000원)다. 사베라는 “대출을 받은 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생겼다”고 했다.

17일 반디푸르 카르말라 마을 여성들은 모임을 열었다. 이날 모임을 지켜본 지역 정부 직원 나가마루는 “주민들이 우물에 관심이 많다. 정부가 파이프 수리, 하수구 청소, 물탱크 청소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의 자립 없이는 구호단체의 지원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굿네이버스 현지 직원 미나(47)는 “인도 여성들은 집 밖으로 쉽게 나오지 못하고 외부인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자조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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