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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단독인터뷰] 플플달, "제 인생 얘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줄 몰랐어요"

  • 박세회
  • 입력 2015.03.24 10:26
  • 수정 2015.03.24 10:32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Flood Darlings, 이하 '플플달')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자 좀 힘들었다. 별다른 굴곡 없이 자라 항상 즐거운 강아지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솔직히 버거운 정서였다. 그러나 '감정 과잉'으로 치부하며 흘려들었던 비슷한 장르의 음악에서는 별로 느낀 적 없는 전달력이 있었다.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났다. 오랜 타국 생활로 혹시나 말이 잘 안 통할까 싶어 제작자인 '영기획'(YOUNG,GIFTED&WACK)의 하박국 씨도 참석했으나, 기우였다.

'Vorab and Tesoro'라는 앨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플플달 지금 남자친구와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쓰던 온라인 아이디예요. 제 아이디인 '보랍'은 스위스의 산 이름이고 남자친구의 아이디인 '테소로'는 스페인 어와 이탈리아어로 '보물'이라는 뜻이죠.

솔직히 음악이 듣기 힘들 정도로 슬펐어요. 자기애가 강하면서도 자신을 증오하는 느낌이랄까?

플플달 이 앨범은 과거의 상처에 대해 저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예요. 자신을 미워하는 감정이 많이 담긴 건 사실이에요. 미워한다기보다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느낌? 영어로는 'Self-loathing'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한국어 가사도 한 곡 있지만 영어 가사의 노래가 대부분이고 가사집에는 그걸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실었어요.

플플달 9살에 뉴질랜드로 가서 거의 20년을 거기서 살았어요. 한국어가 익숙지 않으니 한국어로 가사를 쓸 생각은 못 했죠. 제작자인 하박국 씨가 한글 가사 곡을 만들자고 해서 타이틀 곡 '별'을 한국어로 쓴 게 처음이에요.

하박국 한국어 번역은 본인이 한 거고 제가 살짝 손봐준 정도예요. 그런데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다 보니까 더 좋아진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그럼에도 너는 나를 여전히 사랑해' 같은 가사는 우리말로 썼다면 조금 다르게 나왔을 것 같아요.

'별' 뮤직 비디오.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씨가 출연한다.

그 부분의 영어가사는 뭔가요?

플플달 'See me true and still love me'예요. 정확하게 단어 대 단어로 대치하면 뜻이 전달이 안 되니까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뜻을 한국어로 옮기는 방식을 썼어요.

꽤 어려서 독립했다고 들었어요.

플플달 16살 때 독립을 했어요. 가족이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냥 혼자 살게 됐어요. 원래 아버지는 한국에 계셨고 어머니는 그때쯤 뉴질랜드에 있다가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어요. 누나 둘은 호주로 가고요.

조금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것 같아요. 음악은 언제부터 했나요?

플플달 취미로 시작한 건 13살이었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진 음악을 누군가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악기는 어려서 피아노를 두 달 배운 게 전부고요. 다루기 쉽게 되어있는 '리즌'같은 시퀀싱 프로그램(여러 트랙의 음원을 섞고 편집하는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쩌다 한국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요.

플플달 어찌 보면 10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관련이 깊어요.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뉴질랜드 호주 태국을 떠돌다 3년 전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그 와중에 태국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공부를 1년 정도 한 게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일종의 계기가 되기도 했죠.

남자친구를 따라 한국에 와서는 뭘 했나요?

플플달 솔직히 한국 와서 몇 개월간은 뭘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친구를 사귈 수도 없고 할 일도 딱히 없었어요. 종일 집에 있으면서 남자친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죠. 그때의 경험을 쓴 게 'Waiting'이란 노래에요. 그땐 '내가 뭐 하고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을 계속 하게 됐고 악몽도 꾸게 됐죠. 굉장히 조그만 오피스텔 16층 원룸에 살았는데 창문 밖으로 빨려 나가는 악몽을 꿨을 정도니까요.

"네가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

너는 내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_'Waiting'中

그 외에도 이번 음반에는 개인적인 얘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들었어요.

플플달 대부분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에요.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제 경험의 시간순이에요.

관객과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기도 하나요?

플플달 공연에서는 노래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서 관객들과 될 수 있으면 나누려고 해요. 그런 거엔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요. 예를 들면 '별'은 10대 초반, 가정환경도 안 좋고 외톨이로 지내고 있을 때, 제 성 정체성을 찾은 시기의 이야기라고 솔직하게 말해요.

'Do You remember?'나 'At Neo's'는 소중한 추억에 대한 노래 같아요.

플플달 'Do You Remember?'는 당시 만나던 애인과 텅 빈 도로에서 달빛을 맞으며 춤을 췄던 순간에 대한 노래예요. 'At Neo's Bar'는 제겐 구원 같은 친구들의 얘기예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인데 여자 두 명과 저, 이렇게 셋이 단짝처럼 지냈어요. 1.5세 이민자라는 경험을 공유하며 술 마시느라 가족처럼 친해졌죠. 지금 한 명은 시카고에 있고 다른 한 명은 대만에 있어서 만나기 힘든데, 그때의 경험이 녹아있는 노래가 'At Neo's Bar'에요. 작년에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엄청나게 반가웠어요.

"너와 같이 길거리를 뛰며 웃고 즐겼어

밤새 네오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우리가 좋아하는 클럽으로 갔어." _ 'At Neo's'中

음악은 한국에 와서 시작한 거죠?

플플달 사실 그 전에 만들어놓은 음악은 아주 많았어요. 한 백 개 되려나요? 하지만 음악을 발표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상상만 하면서 '리버브 네이션' 같은 온라인 음원 공유 사이트에 올리는 게 다였죠. 당시에 온종일 집에서 남자친구만 기다리던 때라,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독일어 공부를 하기도 했고, 방콕에서 했던 음악 공부를 다시 해보려고 사운드 엔지니어 학교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정식으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가르치는 곳이 없더군요. 그때 알게 된 게 상상마당의 '전자 음악 전문 과정'이었어요.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사진의 선명한 모습. 랩을 쓰고 낙서를 하는 건 플플달이 어린 시절 친구와 하던 장난이다.

그게 계기가 됐군요?

플플달 그렇죠. 그때부턴 좀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아요. 지원 시기를 놓치는 등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요. '캐스커'씨가 그 클래스의 선생이었어요. 1년 동안 캐스커 선생 밑에서 배웠죠. 근데, 배우다 보니까 음악이 매우 좋은 거예요. 본격적으로 결심했죠. 음악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운 좋게 하박국씨랑 만나게 된 거죠.

하박국 캐스커 형네 작업실에 놀러 가 전자 음악 전문 과정 이번 기수 중 제가 좋아할만한 친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플플달의 노래를 들려주더군요. 맘에 들었어요. 그 후에 제이(플플달의 영어 이름)가 'WATTM'이라는 전자음악 정기공연 플랫폼에 신청해서 무대에 서게 됐는데, 그때 다시 한 번 만났어요. 음원도 공연도 모두 좋았죠. 데모 CD도 사왔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좀 적극적으로 접촉했어요.

음반이 나오고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이 좋다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플플달 우선 좀 어색한데 참 이상하기도 했어요. 제 음악을 듣고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렸다.', '감동 받았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이건 다 내 얘긴데, 내 얘기를 무대에서 노래로 한다는 건 어떠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듣고 감동을 한다는 게 놀라웠죠.

어떤 점에서 놀라웠나요?

플플달 '나 혼자만의 얘기인 줄 알았는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굉장히 유니버설한 감정이었구나.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음악 해요'라고 말하나요?

플플달 예. 지난 한국에서의 3년 동안은 정말 대답하기가 곤란했어요. 보통 사람들이 '당신의 직업은 뭔가요?'라고 안 물어보고 '뭐 하세요'라고 물어보잖아요. 곤란하죠. 이제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있게 됐어요. 다만, 그렇게 얘기하게 됐다고 해서 제 안에서 바뀐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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