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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4일 08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4일 14시 12분 KST

이슬람 문제 아닌 것을 착각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 인해 심화된 경제 문제를 이슬람이라는 종교 문제로 교묘하게 포장한 사안을 종교 비판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처럼 엄연히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연루된 일을 이슬람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비약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종교로서 이슬람을 무조건 용인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슬람 문제가 아닌 것을 이슬람 문제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긴급한 사안이라는 말이다.

한겨레

* 이 글은 장정일 작가와 이택광 교수의 아래 1), 2), 3) 논쟁에서 이어지는 글로, 4) 글과 한겨레에 함께 게재됐습니다.

1) 장정일 | '이슬람 테러'에 온정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지제크의 답변

2) 이택광 | 장정일은 지제크를 물구나무 세웠다

3) 장정일 | 이택광이야말로 어정쩡한 좌파다

4) 장정일| 이슬람 비판과 공포증 분간해야

앞선 글에서 나는 장정일의 '오독'을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가 지제크의 메시지를 '거꾸로' 읽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물구나무 선 헤겔'을 바로 세워야한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를 상기해보자. 어떤 사안을 이렇게 '거꾸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을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내 주장은 장정일의 편견을 만들어낸 그 이데올로기야말로 지제크가 비판하고 있는 자유주의라는 것이었다. 장정일은 "이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 급진좌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서구의 무신론이다. 종교도 비판하지 못하는 좌파는 좌파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제크의 입을 빌려 "현대 유럽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고 옹호하고 있는 그 무신론을 신봉하는 이들이 계몽이라는 명목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행한 악행을 살펴보면, 요즘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문화재 파괴 못지않았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무신론의 초석을 다진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고, 역시 종교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존 로크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예무역에 투자하면서 노예를 동등한 인간이라기보다 소유하고 증식해야할 재산으로 취급했다. 이들에게 유럽 백인 이외에 다른 인종은 사실상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정일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신론이 종교를 훌륭하게 비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종주의를 적절하게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종교의 반대라기보다 종교와 같은 구조를 공유하는 다른 믿음체계이다.

장정일은 이슬람 비판을 급진 좌파의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 위선자"라는 말을 가장 많이 쏟아낸 사람은 지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파리 집회에서 프랑스 공화주의 만세를 열렬히 외쳤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이다. 지난 총선에서 네타냐후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어정쩡한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 이 표현을 즐겨 사용했고, 그 결과는 팔레스타인의 땅을 몰수하겠다고 호언한 우파정당의 집권이었다. 이스라엘 강경우파인 네타냐후가 갑자기 '급진 좌파'로 전향했을 리는 없을 테고, 이 역시 장정일의 전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 인해 심화된 경제 문제를 이슬람이라는 종교 문제로 교묘하게 포장한 사안을 종교 비판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처럼 엄연히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연루된 일을 이슬람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비약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종교로서 이슬람을 무조건 용인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슬람 문제가 아닌 것을 이슬람 문제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긴급한 사안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이슬람 자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든 무슬림이 풍자에 테러로 대응하지 않음에도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는 근본주의자의 테러를 이슬람이라는 종교 일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살인을 서슴지 않는 KKK단의 행동을 기독교 일반의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정 종교가 특별히 폭력적이라는 전제는 이런 의미에서 기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종교를 그와 무관한 사건에 연루시키려는 기동에 대한 비판이지, '미개한' 이슬람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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