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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어내린 롯데월드

한 발은 배에 한 발은 선착장에 있던 시각장애인도, 가녀린 체구의 여성 안내인도 직원의 완력에 의해 강제로 끌어내려졌다. 바이킹이나 자이로드롭은 멀쩡히 탈 수 있었던 내가 왜 정글 탐험보트를 타서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여성 안내인까지 강제로 끌어내려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한 것이었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롯데월드 전체를 총괄하신다는 팀장님의 설명도 납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2년판 매뉴얼의 내용은 말문이 막히게 했다. 공식 문서에는 쓰지 않는 '장애자'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장애자가 오면 잘 설명해서 돌려보내라'는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 안승준
  • 입력 2015.03.24 10:52
  • 수정 2015.05.24 14:12
ⓒ롯데월드

어느새 봄내음이 물신 풍기는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주말이면 더욱 화창해지는 날씨 덕분에 별 계획 세우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나들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산으로! 들로! 강으로! 여건이 안 되면 가까운 놀이동산이라도! 콧노래 부르면서 김밥 도시락을 까먹기에 이만큼 좋은 때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신나는 봄나들이에서 나만 제외되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별 다른 근거 없이 어느 한 사람의 판단으로 인해 작은 권리마저 박탈당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3월 21일 주말을 맞아 친구들과 서울 잠실 롯데월드를 찾은 나의 나들이도 처음엔 절로 나오는 콧노래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시원한 후룸라이드와 짜릿한 바이킹! 아찔한 자이로드롭까지! 손수 준비한 김밥으로 소풍의 구색을 제대로 맞춰가고 있던 나는 말 그대로 '신비의 나라, 모험의 나라'에 있는 듯했다. 파격적인 카드할인 혜택과 장애인 우선탑승제도 덕분에 큰 돈을 쓰거나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반나절도 안 돼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용객들처럼 우리도 마지막 코스로는 조금 편안한 놀이기구를 택했다.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우리에겐 스릴과 도전보다는 편한 휴식이 필요했다. '정글 탐험보트'는 적어도 우리에겐 위험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놀이기구였다.

다른 놀이기구를 탈 때와 마찬가지로 몇 차례 복지카드의 시각장애 확인을 거치고 배에 오르려는 순간 우리는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해야만 했다. 새삼스럽게 시각장애 여부를 다시 물어오는 직원의 물음에 우리는 의례적 확인절차라 생각하고 순순히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 순간 친절로만 고객을 상대할 것 같던 직원은 흡사 야수로 변한 것만 같았다. 한 발은 배에 한 발은 선착장에 있던 시각장애인도, 가녀린 체구의 여성 안내인도 직원의 완력에 의해 강제로 끌어내려졌다.

바이킹이나 자이로드롭은 멀쩡히 탈 수 있었던 내가 왜 정글 탐험보트를 타서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여성 안내인까지 강제로 끌어내려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한 것이었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납득할 만한 해명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그 직원이 흘려 뱉은 '죄송'이라는 말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로 글자 그 자체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던 그는 다른 손님들 때문에 바쁘다며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나타난 매니저라는 분은 우리가 요구한 매뉴얼에는 관심도 없는 듯 변명을 늘어놓았다. 시각장애인들이 해당 놀이기구를 타다 다수의 사고가 발생했었다는 것,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허리를 다칠 위험이 더 높다는 것, 어두운 공간에서는 보트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궁색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수 발생했다는 시각장애인의 어떠한 사고기록도 내놓지 못했고,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엉뚱하게도 왜 허리가 더 약한지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들지 못했다.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보트가 왜 어디로 튈지 모르는지 역시 해명하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롯데월드 전체를 총괄하신다는 팀장님의 설명도 납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25년간의 경험을 담아서 만들었다는 2012년판 매뉴얼의 내용은 말문이 막히게 했다. 공식 문서에는 쓰지 않는 '장애자'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장애자가 오면 잘 설명해서 돌려보내라'는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내부기밀이라며 촬영은 물론 소리 내 읽는 것조차 안 된다며 살짝 보여준 이 내용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근거였던 것이다. 고객과 관련된 안전관리 규정이 내부비밀이라는 것도, 시각장애인 당사자에게 보호자가 내용을 소리 내 읽어주는 것도 안 된다는 팀장의 설명은 나로서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완고한 태도의 근거로 사용한 2012년판 매뉴얼과는 달리 2014년 가을엔 관광공사와 롯데월드의 초청으로 다수의 시각장애 학생들이 해당 놀이기구를 이용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과거 수차례 보이지 않는 눈으로 같은 놀이기구를 이용할 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롯데월드의 설명은 근거는커녕 일관성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단 두 가지였다. 고객을 상대로 완력을 사용한 직원에 대한 합당한 조치, 그리고 근거 없는 매뉴얼에 따른 탑승제한 조치의 해제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어떠한 약속도 받아내지 못하였다.

납득할 수 없는 조치에 항의하면서 해당 놀이기구 입구로 향하는 우리에겐 물리적인 제지까지 뒤따랐다. 장애인은 약하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 그들에게, 그 기구는 장애인으로부터 온 몸을 바쳐 방어해야 할 대상이었나 보다. '장애자는 잘 설명해서 돌려보내라'는 그들의 매뉴얼대로라면 팀장님도 매니저님도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 직원들도 어쩌면 롯데월드의 충실한 직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보내고 자포자기하며 돌아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직원들이 따라왔다. "붙잡아! 가지 못하게 막아!"라는 치욕적인 소리와 함께 말이다. 그들은 내가 귀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들이 나를 막아선 이유는 겨우 찾아온 장애인 사고기록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제서야 그들이 내놓은 사고기록엔 3년 전 어느 정신지체인의 후룸라이드 사례가 적혀 있었다. '정글 탐험보트'와는 관련도 없고 나의 상황과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가 그들이 우리를 붙잡고 제시한 마지막 근거자료였다.

지하철역까지 쫓아온 직원은 우리가 지불한 자유이용권 요금 만오천원을 돌려주겠다는 비참한 제안까지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난 돈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두 시간 넘게 버티고 있던 게 아니다. 그 놀이기구가 한 번 타고 싶어서 떼를 쓴 것도 아니다. 다만 아무 근거도 없이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시각장애인이 강제로 끌어내려지는 상황이 다시는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느 영화관에서 "당신은 내 25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심장이 약해 보이니 들어갈 수 없어"라는 설명과 함께 잘 설명해 돌려보내야 한다는 매뉴얼을 보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신이 주신 아름다운 날씨와 잠시라도 편히 웃으며 쉴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작은 권리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판단해 이러한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벼운 나들이길이 이해하지 못할 규정들로 망쳐질지 모른다. 나도 복잡한 고민 없이 맘 편히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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