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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물복지 축산농장'에 다녀와서 | 축산농장 동물의 사육방식에 대해 알 권리

축산농장들을 둘러보고 나니, 인간이 동물을 이용함에 있어서 지켜야 하는 한계, 그 윤리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먹고 있는 계란, 그리고 다른 축산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육되는지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앎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장서연
  • 입력 2015.03.23 06:30
  • 수정 2015.05.23 14:12

지난주에 '동물복지 축산농장'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농장'을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하는 제도가 있다. 2012년에 산란계 농장, 2013년에 양돈 농장, 2014년에 육계 농장에 대한 인증제가 도입되었고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내가 다녀온 곳은 산란계 농장이었다.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지 않은 농장은 어떤 곳일까. 현재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곳은 60곳 정도밖에 없다. 전체 산란계 농장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99%의 산란계 농장들은 유럽에서 금지되고 있는 폐쇄형 케이지에서 닭을 사육하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폐쇄형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들은 평생 땅을 밟지 못한다. 층층 칸으로 되어 있는 철제 케이지에 A4용지에도 못 미치는 공간에서 날개도 한번 펴보지 못하고, 자연광도 보지 못하고, 옴짝달싹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장 본능적인 행동인 먹이를 찾는 행동, 모래목욕도 하지 못한다. 오로지 계란 낳는 일에만 집중시켜 1-2년 후에 도축된다.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대규모의 밀집사육방식으로 닭들을 가두어 키우다 보니 닭들의 분뇨 등으로 인한 위생문제, 악취가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닭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닭들의 깃털을 쪼거나 카니발리즘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닭들은 병아리 때 마취 없이 부리가 잘린다.

SBS 스페셜 295회 (2012.6.10. 방송) '동물, 행복의 조건 1부 -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방송화면

유럽연합(EU)은 이러한 잔인성 때문에 2012년부터 폐쇄형 케이지(Battery Cage)의 사육 방식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였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에서 닭들은 폐쇄형 케이지가 아닌 평사형이나 방사형으로 사육되고 있었다. 동물보호법은 '모든 닭이 최소한 일어서고 돌아다니고, 날개를 뻗을 수 있고, 홰에 올라타거나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사육시설, 사육밀도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로 동물복지 축산농장에는 산란장소가 별도로 있고, 닭들이 앉을 수 있는 횃대와 깔짚을 깔아 놓고 있어서 닭들이 횃대에 앉아있는 모습과 모래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살아있는' 닭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닭들도 감각이 있고 고통을 느끼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병아리에서 산란계 닭으로 키우는 '동물복지 농장' 모습

"동물복지 축산농장" 홍보 및 사육방식 표시제도 도입 필요

2010년 구제역으로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생매장을 당하였다. 2013년 공감은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함께, 구제역, 조류독감의 확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공장식 밀집축산'을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나는 헌법소원을 준비하면서 공장식 밀집축산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농장동물의 실태와 그 문제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는 육식의 소비를 줄이거나 채식을 권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단계적으로는 잔인한 축산환경을 점차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오히려 가격경쟁을 위하여 축산업의 대형화를 장려해왔다. 1990년대에 비하여 한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 수가 급격하게 늘었고 단위면적당 사육두수도 현격히 증가하였다. 산란계 농장의 경우 한 농가에서 사육하는 닭 수가 적게는 10만 마리 많게는 100만 마리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동물복지를 고려해 생산한 축산물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설문조사결과도 있지만, 정부 차원의 홍보가 부족해서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물복지 인증마크와 무항생제 인증, HACCP 인증 마크가 비슷해 잘 구별되지 않고 혼동하기 쉽다. '무항생제', 'HACCP' 인증은 동물의 사육밀도 제한이 없어서 동물복지 개념과 차이가 있다. '무항생제', 'HACCP' 인증을 받더라도 폐쇄형 케이지 밀집사육 방식으로 생산한 계란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어떻게 생산된 계란인지 그 사육방식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동물복지', '무항생제', 'HACCP' 혼동하기 쉬운 인증제 마크

축산농장들을 둘러보고 나니, 인간이 동물을 이용함에 있어서 지켜야 하는 한계, 그 윤리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정책적으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의 구체적 기준을 어느 수준에서 정해야 하는지, 그보다 앞서서 모든 농가들이 의무적으로 준수해야하는 사육시설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지 고민이 더 복잡해졌다.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먹고 있는 계란, 그리고 다른 축산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육되는지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앎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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