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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피아노맨은 전쟁을 노래한다(동영상)

  • 남현지
  • 입력 2015.03.19 14:32
  • 수정 2015.03.19 14:47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거리. 아이함 아마드(Ayham Ahmad)는 낡은 피아노로 시리아 전쟁에 대해 노래한다.

지난 4년간의 내전으로 아마드가 사는 야르무크(다마스쿠스 외곽에 위치한 난민 피난처)는 거의 파괴됐다.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 지역처럼 빈부격차가 중요하지 않은 거주지로 이곳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곳이었다. 그러나 반역군과 정부 세력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이젠 거의 온 지역이 흙더미가 되었다. 정부 세력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야르무쿠에 남은 주민이 기대할 수 있는 건 굶주림과 질병뿐이다.

아마드는 이런 비통한 상황에서도 1년을 넘게 피아노를 쳐왔다. 그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더는 없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거리로 끌고 나가 연주를 통해 희망을 주고자 했다."라고 허핑턴포스트 국제판 월드포스트에 설명했다.

Ayham Ahmad plays in Yarmouk. (Photographer: Niraz Saied)

사람들은 전쟁의 고충에 대해 읊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의아해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난민 캠프의 청년들이 함께 노래하겠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야르무크의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즉, 질병 감염, 의약품과 식량 부족, 때로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상황까지 말이다."라고 아마드는 말했다.

이젠 다양한 연령의 아마추어 가수들이 아마드와 함께 야르무크 상황에 대해 노래한다. 벌써 수십 개의 작품이 온라인에 올라왔는데, 시리아의 내전과 그 끔찍한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 노래는 야르무크의 상황을 버리고 떠난 수천 명의 난민에 대한 내용이다.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시리아인이 이 지역에 살았다고 팔레스타인계 시리아 작가인 니달 비타리(Nidal Bitari)는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18,000명만 남아있는 상태인데 대부분 너무 허약하거나 빈곤해서 도망치지 못했다. "피난처를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이 음악이 위로가 될 거다."라고 아마드는 말했다.

제목: 집 잃은 이들이여, 돌아오세요.

가사: 집 잃은 이들이여, 돌아오세요.

여정이 너무 길었습니다.

당신의 일부인 야르무크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야르무크에서 만연한 버려진 건물, 흩어진 가족은 시리아 전역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시리아 인구의 반 정도가 자신의 고향을 포기해야 했는데, 4년의 긴 내전 동안 여러 차례 안식처를 바꾸며 도망 다녀야 하는 것은 보통의 일이 됐다.

시리아에 피난 온 팔레스타인인들은 - 내전 초기에는 약 50만 명 - 도망갈 장소의 선택도 없다. 유엔에 의하면 시리아 접경국인 레바논과 요르단이 시리아에서 피난 오려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입국을 방지하려고 국경을 닫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시리아인도 시리아를 떠나려고 엄청남 위험을 감수하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밀수꾼의 형편없는 돛단배를 타고 대서양 횡단을 감수하는 이들도 있다. "도망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을 금할 수 없어요. 바다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라고 아마드는 난민들에 대해 노래했다. "그중에는 죽은 사람들도 있어요. 영원히 안전한 피난처에 가지 못하는 거죠."

제목: 야르무크가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가사: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돌아오세요.

그리고 당신의 부드러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세요.

엄마, 이미 떠난 지 오래군요. 당신의 웃음이 그립습니다.

모두 집에 돌아와 어려서 지붕 위에 또 벽 뒤에 숨어서 놀던 시절을 기억해봐요.

야르무크는 울고 있습니다. 왜 자기를 떠났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있지요.

야르무크는 이스라엘을 피해 도망 온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1957년에 형성된 피난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마스쿠스의 번화한 외곽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팔레스타인인이 가장 많이 사는 시리아 지역이었지만 또 시리아인도 수십만 명이나 함께 거주하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차별은 다른 국가보다 시리아가 덜 했다. 그래도 팔레스타인인은 자신들의 생존이 국가의 결정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늘 인지하고 있었다고 비타리는 설명했다. 2011년 바샤르 알 아사드(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항의가 강해지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압력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정부 세력은 난민의 지지를 확정하려고 했고 반역군은 다마스쿠스 공격에 야르무크가 전략적인 발판으로 적합하다고 느꼈다.

2012년 12월에 전쟁이 드디어 피난처에까지 도착했다. 시리아 정부는 처음으로 야르무크를 폭격했는데, 사원으로 피신한 수십 명의 난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에 반역군은 도시를 점령했고 정부 세력과의 전면 대립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알-아사드 반대 세력의 본거지인 서 시리아의 홈스라는 도시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아마드는 할 수 없이 공부를 포기하고 2012년에 야르무크 피난처로 돌아왔다. 그런데 전쟁은 야르무크까지 따라왔다. 아마드는 야르무크에 남아서 피아노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카타르 신문 알-샤크에 밝혔다.

아마드는 "야르무크 내의 상황은 정말로 암울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느 쪽이 됐던 분쟁 세력에 가담하든지 아니면 죽는 날을 기다리는 거다. 어차피 죽을 거면 노래하면서 기다리자는 게 더 낫다."라고 아마드는 시리아 뉴스 사이트 시리아 디플리(Syria Deeply)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야르무크 난민들이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고 노래를 즐기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외부에서 깨닫는 거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 속에서 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가사: 야르무크 피해자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팔레스타인 혁명의 피해자에게도요.

시리아의 모든 피해자에게도요.

야르무크 청년들이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제 그만 서로를 죽이세요.

2013년 반역군은 물론 정부 세력의 공격이 더 심해지면서 야로무크를 도망치지 못한 난민들은 완전히 포위상태가 됐다. 식량과 의약품은 바닥이 났다. 2013년 7월엔 정부 세력에 완전히 둘러싸였다. 정부 세력은 물론 반역군은 이런 전략을 시리아 전역에서 활용했는데, 야르무크 주민들은 갇힌 상태에서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그해 11월에 4살짜리 어린이가 처음으로 굶주려 죽었다고 한 운동가는 밝혔다. 유엔은 현재까지 100명이 굶주림 또는 관련된 이유로 야르무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식물을 식량 대신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야르무크의 한 무슬림 성직자는 고양이, 개, 당나귀를 먹어도 종교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2013년에 허락한 바 있다.

제목: 식량 포대를 나눠주는 도중 나를 잊었어요.

가사: 정말로 정말로 배고파요. 작은 샌드위치, 아니 식량 포대를 주면 좋겠군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외면했어요. 형제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작 토마토에요.

2014년 1월에 야르무크 피난처에 유엔의 식량 배달을 어렵게 협상할 수 있었다. 식량에 대한 소문으로 허기에 지친 수많은 난민이 도로로 나왔는데 이번 분쟁으로 인한 고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너무 허기져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사망한 여인을 직접 목격한 국제 구호원도 있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보도했다.

유엔은 2014년 내내 이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자 노력했는데 그들의 그런 노력은 정부에 의해 취소되거나 방해되기 일쑤였다. 열흘 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식량과 의료지원이 야르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량과 의약품이 모자란 상황에서 보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2014년에는 장티푸스가 대대적으로 피난처에서 번졌다고 유엔은 보고했다. 또 위생병들은 최근 100건이 넘는 황달 상태를 피난처에서 발견했다고 알렸다.

Residents of Yarmouk wait to receive food supplies, Jan. 31, 2014. (AP Photo/UNRWA, File)

이때 즈음, 그러니까 2014년 초에, 아마드가 거리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는 고귀한 문화를 상징한다... 거리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대단함과 동시에 어려움을 뜻한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피아노의 다른 장점은 전기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정부 세력의 포위와 함께 전력은 끊어졌었다.

피아노를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는 아마드의 밴드. 2014.02.02.

아마드는 만 6세부터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 아마드 아마드(Ahmad Ahmad)는 유명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악기 장인이며 맹인이다. 아마드는 "내게 음악을 가르쳐 주시고 지금의 내가 가능하게 해 주신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월드포스트에 말했다. 또한 그는 "그렇게 연로하셔도 질병과 허기를 참고 우리 리사이틀에 바이올린 연주로 참여하실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음악은 영혼의 언어다. 통역이 필요 없으며 모든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아마드 아마드는 팔레스타인 뉴스인 알-쿠즈(Al Quds)에 설명했다. "세계의 양심을 깨우고자 우리는 노래한다. 굶주림으로 100명이나 죽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통계로 여기면 안 된다."

평생 포위당한 삶 속에서 살아온 아마드의 꼬마 아들도 다른 피난처 아이들과 함께 리사이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물이 모자라다는 내용이라고 아마드는 시리아 디플리에 전했다. 전투로 인해 배관이 깨지면서 2014년 9월부터 야르무크의 물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이 노래 가사는 어려운 상황을 매일 버티고 있는 야르무크 어린이들을 상징한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매일 멀리까지 무거운 물을 길으러 따라나선다."

제목: 물이 늘 없어요.

가사: 물이 늘 없어요. 물은 아직도 없어요. 도로는 아직도 파괴된 상태고요. 우린 아직도 포위되어 있지요.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갈까요?

아마드는 최근 몇 달 동안은 야외에서 연주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전쟁이 빚은 부정적인 요소를 야르무크라고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즉, 공공 시위, 무장반란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외국인이 주축인 내전. 알카에다의 시리아 조직인 누스라(Nusra) 전선이 피난처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를 들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있다고 한 운동가는 말했다.

"이슬람 무력 단체들이 음악을 자꾸 금지하려고 든다. 음악이 터부시 된다고 하며 종교와 전통에도 어긋나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아마드는 월드 포스트에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우린 계속 노래할 거다. 그리고 목소리를 더 크게 내서 어디서든 또 누구든 우리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주로 자신의 집 지붕에서 노래한다고 한다.

야르무크는 시리아 정부의 폭력도 감수해야 한다. 지난주에만 해도 아마드의 밴드, 마흐무드 타밈(Mahmoud Tamim)이 정부 세력에 체포됐다. 아마드의 형제 알라(Alaa)는 현재 수감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드는 음악을 계속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굶주린 사람들을 대신해서 노래한다. 난민에 대한 노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매일 겪고 있는 피난처에 고충을 전달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라며 "알-야르무크 청소년 밴드는 노래할 거다. 계속, 또 끊임없이."라고 덧붙였다.

제목: 도대체 요즘 왜 이럴까요?

가사: 세계는 대표단을 보내왔죠.

그러나 그들은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모두 원을 돌며 제자리 걸음을 하죠.

대표단 수가 느는 만큼 약속도 늘어납니다.

약속, 약속, 약속은 계속되고 여기 사람들은 그와 중에 죽어갑니다.

이 기사는 살람 유세프(Salam Yousef)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 'Syria's Piano Man Sings The Stories Of The Wa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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