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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논란으로 본 '정치의 실패'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 고나무
  • 입력 2015.03.19 07:43
  • 수정 2015.05.19 14:12
ⓒ연합뉴스

지금 김영란법 논란은 정치의 실패다. 더 좁게는 정당정치와 입법부의 실패다. 야당의 실패도, 새삼스럽지만, 또 보인다.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 민간인을 포함한 것이 헌법소원까지 불렀다. 일단 '나'로부터 시작해보자.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을 본다. 2003년부터 <한겨레>에서 12년째 글 쓰고 있다. 어렵게 기억을 쥐어짜도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은 경우'(김영란법 8조)가 내겐 없다. '금품'은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돈, 유가증권, 회원권, 음식·술·골프 등의 접대·향응, 교통·숙박 제공, 취업 제공, 이권 부여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이 다 금품이다. 내가 받은 최고액의 금품은 수십만원 정도로 추정되는 '양폭(양주폭탄)' 술자리였음을 고백한다. 그마저 일년에 3회는커녕, 통틀어 한자릿수다. 십만원대 식사도 가끔 얻어먹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겨레>가 유독 깨끗해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취재하고 글 쓰는 대부분의 평기자들이 그럴 게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이유 없이 100만원어치 금품'을 받을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과도한 위헌논리, 그러나 문제는 있다

김영란법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문구가 하나 있다. '교통·숙박 제공' 부분이다. 과거 주류업체가 교통, 숙박을 제공한 해외출장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른 매체 기자도 여럿 있었다. 그런 출장이 가끔 있다. 출장지가 유럽이었으므로 1인당 100만원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 출장은 '출장기회와 일방적 홍보기사를 맞바꾼 것'이 아니었다. 업체가 기사의 방향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한겨레> 편집국 내부의 보고절차를 밟아 다녀왔다. 김영란법이 '기업 제공 출장 전면금지법'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기회를 제공하는 출장이 죄다 악도 아닐뿐더러, 언론사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등 취재 목적과 상황에 따라 미디어는 내부의 윤리강령 제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정당한 출장을 문제 삼지 않는 한 김영란법이 '언론탄압'의 빌미가 되리라는 우려에 쉽게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있다.

위헌논리 상당수도 수긍이 안된다. 김영란법의 법적 상상력은 별안간 튀어나온 게 아니다. 공직자의 사익추구를 금지하는 이해충돌 금지 조항이 결국 원안에서 빠진 채 통과됐지만 이 규정은 이미 다른 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이해충돌 방지 의무) 제1항.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직자가 수행하는 직무가 공직자의 재산상 이해와 관련되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야기되지 아니하도록 이해충돌의 방지에 노력하여야 한다." 김영란법과 공직자윤리법의 차이는 오직 '강한 처벌의 존재유무'다. 김영란법의 이해충돌 금지가 위헌이면 이미 존재하는 공직자윤리법도 위헌이란 말인가.

내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을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치의 실패'라는 점이다. 입법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씨나리오 쓰기에 가깝다. 텍스트에 그치면 안된다. 예상되는 처벌 대상, 필요한 수사인력, 우려되는 부작용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법시행에서 예상되는 저항과 그것의 극복법 등 '결과 만들어내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여러차례 이야기한, 결과를 만들어내자는 마키아벨리즘의 교훈을 되새겼어야 했다.

속기록을 보면 여야 의원 모두 그 고민이 얕아 보인다. "왜냐하면 하늘에 대고 법 지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보고 법을 지키라고 하는 일이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 사람을 정하는 기준이 누가 봐도 명실상부해야 되잖아요. 그것을 제가 물어보는 거예요."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 김용태 의원은 2014년 4월 25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3차회의에서 곽진영 국민권익위원회부위원장을 상대로 이렇게 물었다.

지금 신문의 공공성을 해치는 것은 기업의 광고에 기대는 불안한 매출구조다. 누구나 안다. 김영란법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이 다루고자 하는 언론인은 누구인가? 가끔 형사처벌되는, 돈을 받는 일부 지역언론인인가?

철학 없는 제도 도입의 한계

다시 위 회의 속기록을 보면, 박재영 국민권익위원회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이 자리에서 "(법률상) 공직유관단체에 KBS하고 EBS는 포함이 돼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기존 법에 규정한 '공직유관단체'에 포함돼 있으니 일단 김영란법 초안에도 법 적용 대상에 KBS와 EBS를 넣었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법 기술자'의 태도다. 이에 대해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조차 '논리·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냉소주의'와 '과거 법의 실패'와 싸워야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가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 그 법은 2005년 제정됐다. '국민권익위원회 행동강령 법령집 공무원 행동강령'을 보면, 공무원·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금품 등은 3만원' '경조금품은 5만원'이다. 그러나 이 액수 기준에 대한 찬반을 넘어, 실제로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김영란법 시행은 '공직자윤리법과 행동강령에 대한 냉소'와 싸워야 한다. 냉소의 벽을 뚫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 만들어내기'다. 적용 대상을 줄였어야 했고, 예상되는 반론과 저항마저 고려했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입법 하루 만에 입법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정당정치의 실패를 보고 있다.

논쟁은 '막 제정된 법에 오류가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입법부의 깨진 신뢰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지금 김영란법을 공격하는 언론은 통과 전에 검증보도의 의무를 다했는가'라는 쟁점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좋은 결과 만들기'라는 마키아벨리즘의 교훈을 떠올려도 내 머릿속에 딱히 해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수사를 그나마 가능케 한 것은, 1993년의 금융실명제였다. 그 법의 본질은 처벌이 아니라 '정보의 해방'이었다. 정보의 해방이 결과적으로 부패를 어느정도 제어했다. 지금 김영란법은 1993년 금융실명제가 한국을 바꾼 것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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