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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10위 셰프 임정식, "이번엔 국물 만들려고요"(사진)

  • 박세회
  • 입력 2015.03.18 11:47
  • 수정 2015.03.18 12:33

2013년 뉴욕에서 미슐랭 2 스타를 땄고, 작년엔 이 별을 지켜냈다. 올해는 '아시안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자신의 레스토랑 '정식'을 10위에 올렸다. 요리하는 남자가 그 어느 때보다 인기인 지금, 막상 정상에 선 이 남자는 조용하다. 매스컴과 안 친하다는 그는 지금 뭘 할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찾아갔다. 예상보다 큰 수확이 있었다.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이하 ‘AB 50’)중 10위에 올랐죠. 축하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첫 페이지에 떠 있어서 기분 좋더라고요.

시상식에 갔다가 어제 귀국했는데, ‘AB 50’이 50위부터 순서대로 발표하거든요. 초반에는 그냥 즐기는 분위기였는데 11위까지 우리 이름이 안 나오니까 욕심이 나긴 하더라고요. 순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예 신경이 안 쓰이는 건 또 아니었나봐요.

이번에 리스트를 쭉 보니까 미식계의 흐름 같은 게 보이던가요?

방콕에서 많은 레스토랑이 선정됐어요. 뉴욕, 도쿄, 홍콩, 싱가포르, 상해만큼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니었거든요. 올해 1등을 한 인도 레스토랑 '가간'(Gaggan)이나 작년 1등인 ‘남’ 모두 방콕에 있지요. 또 하나, 이번 리스트에 중국에 근거지를 둔 식당이 꽤 늘었어요. 50개 중에 총 16개가 중국이니까요.

대도시가 많은 나라가 유리한 구조는 아닌가요?

뽑는 방식을 좀 알아야 이해가 쉬울 것 같은데요. 지역마다 패널들이 있고, 그 패널들이 7개 레스토랑을 뽑아요. 4개는 자기 지역, 다른 3개는 다른 지역을 뽑는 거죠. (편집자 주 : 총 6개 지역으로 나뉘어 300여 명의 미식 관계자들이 패널로 선정된다) 우리나라는 지역 구분으로는 중국과 같이 묶입니다. 해마다 25%씩 패널을 바꾸는데 올해에는 한국 패널 수 자체가 늘어났죠. 순위 변동에는 그런 영향도 있을 거예요.

한우 카르파쵸. 한우와 유정란 노른자의 만남은 진리였다.

패널은 비밀인가요?

셰프, 기자 등등 다양한 음식 관련 종사자들이 패널이에요. 서로 투표 내용이나 지역 구분은 함구하는 편이고요.

작년에도 뉴욕 ‘정식’의 미슐랭 2 스타를 지키는 데 성공했죠. 처음 2 스타를 땄을 때 느낌이랑 이번 수상을 비교하면 어때요?

‘AB 50’도 무척 영광이지만, 아무래도 미슐랭 땄을 때가 기분이 더 좋죠. 미슐랭은 제가 셰프를 꿈꿀 때부터 선망하던 별이고 이 AB 50는 사실 활성화 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미슐랭은 언제 다녀갔는지도 몰라요. 잠행 평가라서요.

이번에 확장 이전을 한 거죠?

그렇죠. 작년 10월에 이사를 하고 2~3층 공사를 끝내고 영업을 시작한 게 작년 말쯤이에요. 아직 1층의 와인바는 공사 중이에요. 2개월 안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여긴 처음 와보는데 엄청나게 크네요.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수셰프 2명에 라인 셰프 4명을 두고 계셨더군요.

그때만 해도 이미 조금 사업이 자리를 잡은 후일 거예요. 처음에는 3명인가 4명부터 시작했어요. 지금은 주방에 20명 전체 직원은 30명입니다.

주방 직원들의 창의성을 중시한다고 들었어요.

아, 사실 약간 엄하긴 한데, 그래도 주방에서는 자유롭게 뭔가를 만들게 시켜요. 작년에는 상품 걸고 직원들끼리 메뉴 짜는 대회를 하기도 했고요. 라인 스태프(맡은 분야만 만드는 주방의 말단)도 맡은 분야 말고 다른 범위까지 아주 자유롭게 제출하라고 권하죠. 요리사가 아닌 사람들의 의견과 취향도 중요하니까 서비스팀 근무 직원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해서 투표도 같이 해요. 괜찮다 싶으면 바로 메뉴에 올리는 거죠. 올해도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창의성보다는 성실함에 더 비중을 많이 두는 편입니다.

[이때 시식을 위한 성게 알 비빔밥과 토칭한 황새치가 나왔다.]

요리 설명 좀 해주세요.

이건 황새치를 토치로 겉면만 바삭하게 익혀서 아래 깔린 김치 슬라이스와 같이 먹는 요리예요. 황새치의 기름진 맛과 김치의 상큼한 맛이 포인트죠.

황새치 식감이 대단하네요. 거대한 광어 지느러미를 사각형으로 잘라서 먹는 것 같아요. 생선이 굉장히 달아요. 그런데 이 성게 비빔밥은 좀 반칙 아닌가요? 성게알 이만큼 넣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가요? (웃음) 그 요리는 뉴욕 정식에서도 우리 식당의 시그니처 같은 건데 미국 뉴욕타임즈의 한 평론가가 이 요리를 맛보더니 이렇게 썼더군요. ‘시 울친(Sea Urchin, 성게 알)은 어른들의 케첩이다.’ 어른들은 누구나 성게 알을 좋아한다는거죠. 일본의 한 미식 평론가는 혹평하기도 했어요. “이건 너무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맛이다.”라고요. 아무래도 일본에서 더 많이 쓰이긴 하니까요.

근데 이렇게 훌륭한 성게 알은 어디서 구하나요? 집에서 종종 먹고 싶을 땐 비싸게 주고 한판을 사다 먹는데, 그것도 이렇게 안 커요.

캘리포니아에서 냉동돼서 오는 걸 쓰는데 저도 이걸 먹어보고 매우 맛있어서 중간 거래상을 찾았죠. 일반 소매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요. 성게 알을 워낙 잘 녹아서 이렇게 좋은 모양을 갖추게 하려면 백반 처리를 해야 하거든요. 그때 약품 처리를 얼마만큼 하느냐와 애초의 선도에 따라 뒤에 올라오는 쓴맛이 달라져요.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서 일 년에 딱 3개월 정도 성게 알이 나오는데, 알이 작고 모양이 예쁜 경우가 별로 없어요. 게다가 상급 품은 전부 일본으로 간다더군요. 해산물들은 그게 문제죠.

이것 말고도 재료 수급이 어려운 게 있나요?

예전에 정말 맛있는 제주도 옥돔을 메뉴에 올리고 싶어서 제주에 찾아가서 한 두 주를 돌아다니면서 옥돔 잡으시는 할머님하고 계약까지 하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잡자마자 급속 냉동시켜서 보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막상 물건 받기로 한 날에 날씨 때문에 배가 못들어온 경우가 많았어요. 옥돔을 너무 쓰고 싶은데 시중에 있는 중국산 옥돔은 질이 떨어지고 맘에 드는 제주 옥돔은 가져올 수가 없고. 이럴 땐 참 갑갑하죠.

이 성게 알 비빔밥 안에 있는 건 조를 튀긴 거죠?

그렇죠. 우리나라 요리에서 찾기 힘든 게 바삭한 식감을 포인트로 주는 거예요. 그런데 서양은 입안에서 혀에 부딪히는 맛이 다양한 걸 좋아해요. 그래서 넣어봤는데 뉴욕은 물론 한국 분들도 좋아하더군요.

정식을 찾는 고개 층은 좀 어떤 분들인가요?

낮에는 주로 30~40대 여성분들 위주예요. 저녁때도 마찬가지 연령대인데 남성 전문직 종사자들께서 많이 오시구요. 한국의 미식을 경험하고자 하는 외국인 손님들도 30% 정도 됩니다.

오늘은 화이트데인데 예약은 좀 어떤가요?

저희는 오히려 이런 날 매상이 떨어져요. 일단 평상시에 오시던 손님들은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크리스마스는 번잡할까봐 피하는 경향이 있고, 특별한 날 마음먹고 왔다가도 음식은 시켜도 와인까지 감당하기엔 부담스럽기도 하죠. 게다가 대부분 커플손님이라 이런 큰 룸을 두 분을 위해서 비워드려야 하니까 전체 매출은 떨어져요. (우리는 8인 룸에 있었다)

평일에는 술이 좀 나가나 봐요.

그렇죠. 관광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놀러 온 사람들은 확 지르잖아요.(웃음)

어디서 들었는데, 커틀러리 도둑이 참 많다 던대요. 정식당은 그래도 연령대가 있어서 손님들이 격식이 좀 있겠어요.

정치인이나 사업가 등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이 오는 편이긴 한데, 본격적으로 훔친다는 표현보다는 이거 어디서 샀냐, 하나 가지고 싶다 정도로 애교섞인 부탁을 하시곤 해요.

첩보에 의하면 요새 곰탕을 그렇게 먹으러 다니신다고요?

외국으로 가져갈 한식 사업을 하나 더 구상 중인데, 생각을 좀 해봤더니 국밥 문화가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뉴욕 정식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일을 하니까 스태프 밀(직원들 막간 식사)로 여러 가지를 해주면서 반응을 좀 봤거든요. 근데 소고기 뭇국이 가장 인기가 있더라고요. 아, 이건 되겠다 싶었어요.

[이때 디저트가 나왔다. ‘베르사유의 장미’ 장미 모양의 젤리 밑에 블루베리 셔베트와 머랭이 켜켜이 쌓여있다. 스푼으로 아래까지 푹 떠서 먹으니 젤리의 부드러움부터 머랭의 바삭함까지 한데 어우러져 멋진 마무리를 선사한다.

그럼 곰탕으로 결정한 건가요?

아직 모르겠어요. 일단은 국물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해외에 나가서 다양한 국물을 먹어보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국밥집은 다 돌아다니고 있어요.

감칠맛 내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소 반 마리로 다양한 육수를 다 끓여보고 있어요. 고기로만 감칠맛를 내려고 갖은 부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끓여보고 있습니다. 배추와 같은 채소를 넣었다 뺐다 하기도 하구요.

저도 집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 부위로 국물을 내야 맛있던가요?

사실 저도 처음엔 유명한 곰탕집들이 조미료를 쓴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아롱사태, 치마살, 등심, 양지 등 거의 소의 모든 부위를 다양하게 넣어서 조합했더니 조미료를 넣은 것보다 더 훌륭한 감미가 나와요. 깜짝 놀랐어요. ‘아, 이런 엄청난 감칠맛이 조미료 없이도 가능하구나!’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소금, 후추를 제외하고 가장 아끼는 양념은 뭔가요?

일단은 간장이죠. 김칫국물. 참기름 이렇게 인 것 같아요.

간장은 어떤 거 쓰세요?

전 시중에 파는 국간장을 소금보다 더 많이 써요. 양조간장도 써요.

가장 아끼는 음식재료 세 개를 꼽는다면요?

일단 배추를 굉장히 좋아해요. 국물 끓일 때 배추 꼭 넣습니다. 고기 중엔 요즘 같아서 소 양지 부위와 가장 친해요. 마지막으로는 김을 좋아합니다.

작년에 결혼도 하셨죠? 아내에게 요리는 많이 해주나요?

거의 매일 해줘요.

주로 어떤 요리를 해주나요?

중식 좋아해요. 볶음 요리를 좋아해서 온종일 웍들고 지지고 볶아요.

우리는 먹을 수 없는 셰프의 요리네요.

우리 집에 오면 먹을 수 있죠. 지금까진 아내의 뱃속으로 다 들어갔지만요.

술 좋아하는 셰프로 유명하더니, 술집 사장님과 결혼하셨어요(아내인 이여영 씨는 막걸리 전문점 ‘월향’의 사장이다)

그렇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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