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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무협 영화의 탄생 [위플래쉬]

사실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무협 영화다. 제자를 고수로 만들기 위해 정신적인 압박은 물론 신체적 위협을 가할 정도로 악마적인 스승이 등장한다. 아버지 외에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버릴 정도로 달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찬 도전자가 주인공이다. 선생은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인지 혹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치사할 정도로 집요하게 제자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경쟁자들을 심어 과잉된 연습을 하게 만들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버리기까지 한다.

  • 조원희
  • 입력 2015.03.18 13:21
  • 수정 2015.05.18 14:12
ⓒSony Pictures Classics

'위플래쉬'를 시사회로 먼저 본 사람들이라면 예상할 수 있었다. 생소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액션이나 멜로 등의 장르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도 이미 잊었다. 영화를 관람하기만 하면 입소문을 금방 탈 것이라고. '비긴 어게인'처럼 박스 오피스 차트를 역주행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사실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무협 영화다. 제자를 고수로 만들기 위해 정신적인 압박은 물론 신체적 위협을 가할 정도로 악마적인 스승이 등장한다. 아버지 외에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버릴 정도로 달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찬 도전자가 주인공이다. 선생은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인지 혹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치사할 정도로 집요하게 제자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경쟁자들을 심어 과잉된 연습을 하게 만들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버리기까지 한다. 이런 온갖 상황들에서 '음악'을 빼고 무술, 혹은 각종 살상 기술을 집어넣는다면 당연히 '장르 영화'가 된다. 감독은 '전쟁영화 같은 음악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위플래쉬'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시나리오의 플롯 법칙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1막에서 외톨이로 등장하고, 2막에서 방랑자처럼 떠돌다 2막 후반부에는 상황과 맞서 싸우는 전사로 돌변한다. 그리고 3막의 클라이막스에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승리하는 일종의 순교자가 되는 것이 바로 그 할리우드 규범이다. '타이타닉'은 물론 '아메리칸 뷰티' 등 거의 모든 할리우드의 성공작들은 이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앤드류의 캐릭터 변화를 예의 원칙에 대입시켜 보면 비스포크 정장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플래쉬'는 결코 파격적인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위플래쉬'는 매력적인 영화다. 대중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미숙함과 능숙함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악기인 '드럼'을 소재로 배치해 극중 게임의 규칙에 쉽게 녹아들게 했다. 그러나 오랜 학습을 거친 음악 감상자가 아니라면 '극한의 고수'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이용해 '절대 고수의 리얼리티'를 어렵지 않게 구현해낼 수도 있었다. '드럼'이라는 악기의 양면성을 교묘히 잘 이용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들의 호연을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다. 플레처 선생 역을 맡은 JK 시몬스의 '완벽한 박자'의 연기는 물론 주인공 앤드류 역의 마일즈 텔러가 보여주는 '서서히 물들어가는 핏빛 광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하다.

음악 영화에 관심 있는 감독들이라면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라는 말을 할 법도 한 영화다. 당연히 이 생각을 못 할 수밖에. 감독인 다미엔 차젤은 드러머 출신이다. 이것은 "드럼의 강호"에서 떠돌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다.

*한겨레 신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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