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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의 가사분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증거

  • 허완
  • 입력 2015.03.16 10:40

요즘도 ‘남자가 어디 주방에 들어가느냐’, ‘나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한다’ 같은 말을 부끄럼도 없이 함부로 내뱉는 남성들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시대가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늦은 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무장갑을 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음식물쓰레기통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우리는 이제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일보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다운로드)를 인용해 16일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자.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으로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1999~2009년 10년 사이 남성의 가사노동과 자녀돌봄 시간은 각각 하루 7분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204분으로 남성의 7.8배에 달했다. (한국일보 3월16일)

이 조사는 자녀가 있는 20~59세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삼은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보고서에서 정의한 가사노동과 자녀돌봄은 각각 다음과 같은 활동들이다.

  • 가사노동 : 음식준비 및 정리, 의류 관리, 청소 및 정리, 가정 관련 물품구입, 집 관리, 가정경영, 기타
  • 자녀돌봄 : 신체적 돌보기, 공부 봐주기(놀아주기), 기타 돌보기

1999년과 2009년 여성과 남성이 각 부분에 투입한 시간(하루 평균)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가사노동

여성

1999년 : 231분

2009년 : 204분

남성

1999년 : 19분

2009년 : 26분

자녀돌봄

여성

1999년 : 84분

2009년 : 93분

남성

1999년 : 13분

2009년 : 20분

보고서를 작성한 신윤정 연구위원은 “여전히 남성의 전체 시간 중 가사 및 양육에 사용하는 시간은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여성이 가사 및 양육에 투입한 시간(합계)은 하루 평균 4시간57분이었다. 남성은 46분에 불과했다.

긍정적인 신호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지난 10년 사이 두 영역 모두에서 남성들의 투입 시간은 늘어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 7분씩 늘었다.

또 “현격한 양성 격차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세부 활동 측면에서 엄격한 성역할 구분의 약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례로 1999년 남성의 가사노동 활동 중에서는 ‘청소 및 정리(6분)’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10년 후인 2009년에는 ‘음식준비 및 정리(7분)’가 청소 및 정리와 같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지못해 쓰레기만 버리던 남성들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자녀돌봄 부분에서도 변화가 목격된다. 남성들의 자녀돌봄 활동 중 대부분이 ‘놀아주기(9분)’였던 1999년과는 달리, 2009년에는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신체돌보기 활동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 잠깐씩 자녀와 놀아주던 소극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직접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는 남성이 늘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들의 가사노동 및 자녀돌봄 시간이 늘어난 건 관습이나 인식 등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의식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반면 구조적인 차원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더딘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일과 가정 양립에 영향을 주는 노동 시장 구조 및 관행이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나 빈번한 야근·회식 등의 요인들이 남성들의 가사·돌봄노동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 연구위원은 “남성들의 자녀 양육 및 가사 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 사업과 더불어 안정적인 근로 환경 제공 등을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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