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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반죽에서 찾은 의미

'한민족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TV의 대담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날 프로에 참여한 한 한국여성은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들은 말소리 톤이 높고 상냥하지 못하고 웃지 않는 얼굴들이라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 말소리가 높은 한족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톤이 높다는 것, 하루 12시간 일해야 하고 돈 때문에 한 달에 겨우 이틀 혹은 삼일밖에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에 여유가 없고 웃음기도 없고 상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 박연희
  • 입력 2015.03.13 10:56
  • 수정 2015.05.13 14:12
ⓒ한겨레

중국에서 살 때부터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휴무날 아침 일찍 밀가루 반죽을 해서 전기담요 위에 이불까지 덮어놓고 외출했다가 몇 시간 후에 돌아와 보니 밀가루 반죽이 부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이전에도 밀가루 반죽을 몇 번 실패한 적이 있다. 다목적 밀가루에 중국의 효모균을 넣어 반죽을 했더니 하루 밤이 지나도 부풀지 않았고, 다음번에는 막걸리를 사다가 반죽을 해도 여전히 부풀지 않았다. 밀가루 탓인 줄 알고 강력밀가루와 빵을 만드는 밀가루도 써봤지만 반죽이 되지 않아서 슈퍼에 가서 베이킹파우더(소다)를 사왔다. 설명서를 보았더니 베이킹파우더를 소맥분에 섞으라는 것이었다. 소맥분이 무엇인지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 이스트였다.

이스트를 사다가 물에 풀어보니 바로 효모균이었고 베이킹파우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다 비슷한 것이었다. 원래 반죽에 베이킹파우더와 이스트를 넣어서 반죽을 했더니 겨우 반죽이 약간 부풀기 시작했다. 찜통에 만두를 쪘더니 부풀기는 했지만 원래 넣었던 중국 효모균이 섞여서인지 여기저기에 얼룩이 생겼다.

중국 밀가루에 중국 효모균을 넣어서 반죽하면 웬만하면 잘 부푸는데 왜 한국 밀가루는 중국 효모균을 거절하고 한국 효모균과 베이킹파우더만 고집할까? 중국 효모균은 왜 한국의 밀가루를 부풀게 하지 못할까? 모양새도 예쁘지 않고 부풀다가 만 만두를 맛없게 먹으면서, 이루어지기 힘든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연상해 보았다.

'한민족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TV의 대담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첫 화면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중국조선족에 대해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더니 한 학생이 머리를 흔들면서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한국인 대부분이 중국동포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그날 프로에 조선족 대학생 남녀가 참가했는데 6.25전쟁이 거론되자 여학생은 자기는 오늘 처음 6.25전쟁이 중국에서 말하는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고, 남학생은 자기는 아직도 전쟁의 도발자가 북한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에 있을 때 방송매체에서 일했던 나도 한국에 와서야 6.25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조선족이 많이 희생되고, 한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슴 아픈 민족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역사를 배우면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온 중국동포들과 한국인들의 소통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해하기 쉬운 점도 많았다.

그날 프로에 참여한 한 한국 여성은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들은 말소리 톤이 높고 상냥하지 못하고 웃지 않는 얼굴들이라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 말소리가 높은 한족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톤이 높다는 것, 하루 12시간 일해야 하고 돈 때문에 한 달에 겨우 이틀 혹은 삼일밖에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에 여유가 없고 웃음기도 없고 상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방송 프로를 마치고 가진 뒤풀이에서도 한국인들과 중국동포들이 서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서로 소통을 자주 한다면 오해도 풀리고 화합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쉽게 헤어졌다.

또 언젠가 한 모임에서 알고 지낸 한 탈북자 언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난 중국동포가 별로예요. 중국동포를 믿고 찾아갔는데 그 사람이 나를 중국 내륙의 나이 많은 한족 영감한테 3천위안에 팔아버리는 바람에 그곳에서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겨우 마귀굴에서 빠져 나와 한국에 왔어요. 지금도 중국에 두고 온 딸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리도록 그 동포가 미워요."

지금까지 중국동포들이 북한인들을 많이 도와줬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측면이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내가 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언니를 볼 때마다 죄송했다. 지금은 서로 마음을 터 놓고 대화를 하다 보니 오해가 풀려가고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중국 밀가루에 이스트와 베이킹파우더를 섞어도, 한국 밀가루에 중국의 효모균을 넣어도 밀가루 반죽이 잘 될 수 있게 하려면 적당한 온도조절,적절한 재료의 배합 그리고 밀가루가 숙성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좀 더 큰 틀에서 힘을 합치고 신뢰를 쌓아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열린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과 중국동포, 탈북인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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