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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 인터뷰] 자하 하디드 "건축계에서 아랍 여성으로 사는 건 힘들다"

  • 김도훈
  • 입력 2015.03.13 07:35
  • 수정 2015.03.13 10:22
Pritzker Architecture Prize winner for 2004 Zaha Hadid poses Sunday, March 14, 2004, in West Hollywood, Calif. Hadid, an Iraqi-born architect who struggled for years to get her audacious and unconventional designs built, was named winner Sunday March 21, 2004. She is the first woman to the win architecture's most prestigious prize in its 26-year history. (AP Photo/Kevork Djansezian)
Pritzker Architecture Prize winner for 2004 Zaha Hadid poses Sunday, March 14, 2004, in West Hollywood, Calif. Hadid, an Iraqi-born architect who struggled for years to get her audacious and unconventional designs built, was named winner Sunday March 21, 2004. She is the first woman to the win architecture's most prestigious prize in its 26-year history. (AP Photo/Kevork Djansezian) ⓒASSOCIATED PRESS

*이 인터뷰는 허핑턴포스트US의 Zaha Hadid: It's Tough Being an Arab Woman in the Architecture Busi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자하 하디드와의 인터뷰는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왕립 미술관 키퍼스 하우스에서 진행됐다. 왕립 미술관의 대표인 찰스 사우나 레즈 스미스가 관중을 대표해 환영 인사를 마친 후, 나는 하디드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순탄한 삶을 추구하는 이에겐 건축이 안 맞는다고 이전에 발언했는데 무슨 업종이건 최고를 추구하는 이에게 공통된 사항이 아닌가?

=고난스러운 다른 직종도 물론 있다. 하지만 건축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의지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어려움은 고객이다. 건축가는 개발자나 경제에 영향력을 전혀 끼칠 수 없다.

-카디프 프로젝트를 뜻하는 건가?

=오늘은 카디프 오페라 하우스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나에게 들어온 지 20년 되는 날이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은 기억 못한다. 매우 어려운 경험이었지만 난 그 과정을 통해 훨씬 더 강해졌다. 카디프 오페라 하우스가 건축 안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Cardiff Bay Opera House)

-당신이 특히 고충을 겪은 이유는 당신의 작품이 워낙 야심적이어서인가?

=내 작품은 일반적으로 용납되는 범위에서 벗어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 내가 여자라서, 아랍인이라서 그런 체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편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신은 세계 유명 대학에서 교수 활동을 했다. 건축 협회, 하버드 대학, 그리고 지금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난 가르치는 것을 늘 중요하게 여겼다. 또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기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꿈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뭘 가르치는가?

=건축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줄 뿐이다. 빈에서는 마스터 클래스라고 불리는 과정을 맡았는데, 내가 마스터로서 5년에서 6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한다. 과정을 마치면 학생은 나의 전체 총람을 이해하고 기술을 배워간다.

-그들이 당신의 일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나?

=최고로 꼽는 회사 직원 중에 상당 수가 빈 프로그램 졸업생이다. 또 건축 협회 졸업자들도 있다. 그렇게 난 내 스튜디오에 투자하고 있다.

-당신은 레바논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건축가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림, 공학, 외교, 등?

=외교? 난 외교적이지 못한 게 문제다.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것은 빵점이다.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세계적인 건축사 OMA가 나를 채용하려고 해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면 안 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왜냐면 그때 학교를 갓 졸업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OMA에서 '말 잘 듣겠다고 약속하면 파트너로 인정하겠다"고 한 거다. 그래서 "싫다. 난 고분고분한 파트너는 되기 싫다."고 했고, 그게 끝이었다.

-오랫동안 당신은 이론적 건축가였다. 그러다가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매우 적극적인 세계의 건축가로 변신했다. 그 이유는?

=난 늘 이론적인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종이에 그린 작품도 언젠가는 실제로 적용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했다. 68년 이후 70년대 중반에 건축협회 내에서도 건축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고 모더니즘의 신조가 지배적이었다. 그 외에는 역사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신합리주의가 있었는데 난 그런 것과 다른 대책을 추구했다. 그러다가 모더니즘 건축을 설계하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줄은 몰랐다.

-결국 당신이 묘사한 건축들은 예술 아닌가?

=건축은 상당 부분 예술적이다. 그러나 자연과 풍경, 생물과 모든 생명체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야심적인 공간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바뀌지 않은 점은, 누구나 중력을 고려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피터 라이스라는 훌륭한 엔지니어에게 건축의 원리를 배웠다.

-건축가로서 환경뿐 아니라 현실적인 면, 예를 들어 운동 경기장 경우 보안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어떤가?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완전한 지식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미켈란젤로, 알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보로미니 같은 건축가의 작품은 기존 세대까지 보존되고 있는데 당신의 건축물도 여러 세기가 지나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것 같다. 세상은 훨씬 더 빨리 돌아가고 있고 한 세기의 중점에서 갑자기 모든 게 바뀌기도 한다. 20년 후에 또는 200년 후에 계속 존재할지 예측할 수 없다.

-다양한 건축물이 수백 년 넘게 존재하는 '영원한 도시' 로마를 고려할 때 MAXXI 현대 미술관 건축 프로젝트는 얼마나 어려웠나?

=로마는 그 역사 때문에 경직된 도시다. 그래서 도와줘야 한다. 난 로마의 MAXXI 프로젝트를 매우 좋아했다. 선 하나하나를 다 기억한다. 내 건축 인생 초기의 세미-텍토닉 건축물과 이후 세미-플루이드 시대 사이의 프로젝트였다.

-특히 좋아하는 또 후회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난 설계를 아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별로 후회 할 것도 없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서 매우 운이 좋았었다. 아부다비 다리, 런던 수영장 스타디움, 브릭스턴 학교, 스코틀랜드의 의료시설 등, 거의 다 대형 프로젝트였다.

-가구 디자인도 하는 걸로 아는데, 그 일은 즐기는가?

=재밌다. 무슨 모형을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건축과는 달리 디자인 후 몇 달이면 결과가 나온다. 의자가 가장 중요한 가구인데 아직 회사 차원에선 도전해보지 못 했다.

(Serpentine Sackler Gallery, London)

-왜 회사를 런던에 세웠나.

=첫째, 난 런던을 좋아한다. 이 대단한 이 도시는 지난 2~30년 사이에 더 멋진 도시로 변했다. 난 런던이라는 도시에 건축적 가능성이 높다고 늘 생각했다. 이제 그런 생각이 입증됐는데, 개인적인 성과와는 연관이 없었다.

-런던이 당신의 본거지다. 여기서 얼마나 머무는가?

=출장을 덜 다니려고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런던에서 보낸다. 나 대신 출장을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많아서 참 다행이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매우 피곤할 수도 있다.

-로마는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중국, 일본, 아제르바이잔, 북경 등은 더 쉬웠는가?

=쉽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고객에 따라 다르다. 중국에선 일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순조롭게 일할 수 있었다.

-당신 작업의 과정은 뭔가? 어떻게 프로젝트가 시작되는가?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스케치를 하고 모델을 만들고 또 페인팅이나 모델의 단면도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젠 디지털과 시각 테크놀로지 덕분에 작업의 기반이 바뀌고 있다. 물론 작업이 시작되면 3차원 모델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젠 직선적이 아니라 원형적인 과정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이전에 가능하지 못 했던 것을 가능케하고 있는가?

=정확도가 높아졌고 따라서 디자인뿐 아니라 여러 단계에서의 연결이 매끄럽다. 즉, 디자인에서 엔지니어링, 제조와 건축까지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매우 익사이팅 한 부분이다.

-일을 따내기 위해 대회에서 입상을 해야 하는가?

=대회 참여에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낭비일 때도 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고객의 간섭 없이 새로운 마음으로 뭘 창의해야 한다는 것은 긍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그런 때에 나왔던 것 같다.

-건축가에게 건축 비용이 가장 큰 관건인가? 경제적인 면에도 달인이어야 하는가?

=난 어떤 프로젝트가 비싸고 어떤 프로젝트를 저렴하게 할 수 있는지 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프로젝트든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비용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일에 성공하려면 상식이 중요한가?

=한계가 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 도시에서 멋진 건축물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싸구려 건물을 잔뜩 짓는 것보다 도시계획을 잘하여 공간을 잘 구성해야 한다.

-설계를 할 때 어떤 길잡이 같은 것이 있는가?

=이전엔 '추상'이었다면 지금은 '컴플렉시티'다. 30년 전엔 대량 생산이 가능한 모더니스트적 이념에 의존했었다. 그런 이념에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지형학적인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20세기가 되면서 공공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Heydar Aliyev Center, Baku, Azerbaijan)

-무엇이 공공 영역인가?

=도시의 중요한 장소에 건물을 올리면 그 장소와 전체 도시가 관계를 형성한다. 로마의 광장처럼 말이다. 영국에선 그런 광장이 사유지다. 그런데 그런 공공 영역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기념물과 공공 건물을 많이 짓는다. 어떤 것이 당신의 취향과 판타지에 영향을 미쳤는가?

=난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구성주의도 내게 영향을 미쳤고 또 러시아의 실험도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위치가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병원이나 학교, 교회 설계를 부탁받으면 그 순간 프로젝트가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에 대한 영감 같은 것이 있는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모여야 프로젝트가 성립된다. 다음에는 어떤 공간을 어떤 탑을 설계할지 늘 고민한다. 그리고 어느 장소에 대해서 그런 아이디어 적응이 가능한지 시험해 본다.

-런던 수영장 스타디움은 공모전에 입상해 건축하게 됐다. 어떤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접근했는가?

=수영장이니까 물이 있다. 따라서 파도에 대한 아이디어는 당연했다. 지형을 어떻게 형용할지, 또 파도를 어떻게 계산해서 나타낼지 고민했다.

(The 2012 London Aquatics Center)

-아랍인에다 여성에다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힘든 부분이라고 했는데, 어떤 이유인가.

=난 이라크에서 왔다. 이라크에는 크리스천도 많고 유대인도 많고 무슬림도 많았다. 난 6년 동안 가톨릭 학교를 다니면서 가슴에 십자가를 그린 무슬림이었다. 크리스천과 무슬림에 대한 차이가 없었다.

-때로는 전쟁이 건축에 매우 큰 타격을 입힌다. 재앙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난 한때 베이루트에서 살았다. 지금 그 도시는 거의 붕괴 상태다.

-시리아 알레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끔찍하다. 건축물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지역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볼 때 내가 그 지역인이 아니라도 그들의 고충을 느낀다. 이 시대에 전쟁이란 터무니없는 행위다. 너무 슬프다.

-지금이 건축계의 호기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10년에서 15년 동안은 그랬다. 난 늘 걱정이 앞서는데 왜냐면 합리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이 근처에서 호시탐탐 노리다가 흥미로운 일이 있으면 방해하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영국에 사는 것이 편한가?

=아니다. 그렇게 편하지 않다. 난 런던은 좋아한다. 굳이 밝히자면 "영국에선 일이 없다"라는 게 문제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건축물을 정말로 좋아하는 미국은 어떤가?

=마이애미에서는 타워를 뉴욕에서는 빌딩을 준비하고 있다. 이전에는 신시내티에서 건물을 지었고 미시건에서는 미술관을 지었다.

-영국과 미국의 차이는?

=미국에선 쇠 골자를 이용하고 층마다 같은 모양의 건축물을 선호한다. 런던에서처럼 내 작업의 대부분은 기업이 위임한 사무실이나 주거용 공간이다. 그러나 예전의 런던과 달리 문화적 건축에 투자하지는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경제가 좋으면 건축을 좋아한다. 그러나 경제가 하락세면 건축은 뒷전이 된다. 그래서 건축가는 운명에 따라야 한다고 한 거다.

-짜증 나는 부분은?

=짜증 나는 건 없다. 순탄한 삶을 추구한다면 건축가가 되면 안 된다. 우리 회사에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9시에 출근했다가 6시에 퇴근하는 그런 직업을 바라면 집에 가라. 건축가는 아니다.

-어느 예술인이나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는 계획을 짜야 한다. 여기로 출입하고, 이 통로를 거치고, 여기에 계단을 배치하고, 여기에 방을 만든다. 사이즈는 다 맞나? 아무튼 글 쓰는 것과 흡사하다. 글을 작성하고 편집도 해야 한다. 끊임없이 말이다. 그래야만 아무 문제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과 인내심을 자극하는 것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 가장 짜증 난다. 정말로.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교육을 잘 시키면 이해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에게 뭘 설명하긴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회사의 고령층만 해도 자기들이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젊은이들은 훨씬 더 유연성이 높고 잘 적응한다. 또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보면 짜증 난다.

-오늘의 세상은?

=완전히 돌아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좀 더 제대로 돌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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