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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울린 '그날' 15살 소녀의 슬픔

  • 원성윤
  • 입력 2015.03.13 06:09
  • 수정 2015.03.13 06:12
ⓒgettyimageskorea

“못과 나무에 찔리고, 다리가 부러진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엄마는 ‘가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로 헤엄쳐 건넜습니다.”

11일 일본 정부가 주최한 ‘동일본 대지진 4년 추도식’이 열린 도쿄 지요다구 국립극장. 스가와라 사야카(19)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리면서 추도식장은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4년 전 ‘그날’ 스가와라는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오카와 지구에 살고 있었다. 이제는 폐허로 변한 작은 마을이지만, 아침 등교 길에 ‘사야카짱, 건강히 다녀와’라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웃들이 많았다. 그날은 스가와라의 중학교 졸업식날이기도 했다. 3월인데도 옅은 진눈깨비가 내렸다.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우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진동을 이기지 못해 막 구입한 텔레비전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후 10m가 넘는 쓰나미가 덮친다는 경보가 전해졌다. 대피할 시간도 없이 거대 쓰나미가 스가와라의 다섯 가족을 덮쳤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섞여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로 발밑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사망 당시 35)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가와라 사야카

어머니는 쓰나미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건물 잔해에 끼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엄마가 깔린) 잔해를 옆으로 치우려 최선을 다했지만, 나 혼자 힘으로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무게와 크기였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던 스가와라는 15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결단을 내리게 된다. “엄마를 너무나 구하고 싶었지만, 여기 있다간 나까지 휩쓸려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지 말라”는 엄마에게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건너편의 초등학교까지 헤엄을 쳐 건넜다. 학교에서 그날 밤을 넘긴 스가와라는 구조대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당시 참사로 어머니와 할머니(64), 증조할머니(83) 등 세 가족을 잃었다.

그날 이후 스가와라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그는 11일 추도사에서 “가족들 생각에 울었던 날이 셀 수 없고, 열다섯이었던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에 이따금 떠오르는 엄마는 ‘그날’의 처참한 모습이 아닌, 정리를 하지 않았다고 혼을 내거나 함께 옷을 고르며 기뻐했던 평소의 모습이다. 현재 가설주택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히데유키(64)는 12일치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녀가 불쌍해 이따금 말을 걸면 ‘나는 불행하지 않다’며 울며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스가와라는 “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다”면서도 “재해로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도 사라지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을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숨진 가족의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겠다”고 말을 마쳤다. 스가와라가 추모사를 할 때 추도식장 곳곳에서는 애써 눈물을 눌러 참는 훌쩍거림이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맞서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60번이 넘게 자신의 체험을 여러 사람 앞에서 증언한 바 있다. <아사히신문>은 그가 4월부터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한 대학에 진학해 방재학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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