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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은 주고받는 것

처음에는 도움 받는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은 도움은 훌륭한 사람이 부족한 이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형, 누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줄 때는 값싼 위로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살면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받을 수 있고 또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줄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물론 어떤 이는 많이 주고 적게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함께 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눈다는 것일 것이다.

  • 안승준
  • 입력 2015.03.13 05:37
  • 수정 2015.05.13 14:12
ⓒShutterstock / Robert Kneschke

살면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많이도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재활교육도 받고 나름의 자립심도 기르고 첨단보조기기들의 힘도 빌려보지만 시각장애라는 녀석은 종종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낯선 장소를 찾다보면 나름의 방향감각이 항복신호를 보내오기도 하고 업무 중에도 읽을 수 없는 종이서류들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정 많은 국민정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의 나쁘지 않은 인복 덕분인지 누군가의 적절하고도 친절한 봉사정신으로 대부분의 상황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나가고는 한다.

특수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각장애 고등학교는 시간표의 대부분의 시간을 안마, 침, 해부생리 같은 이료과목으로 채워넣고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교육과정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환경이기도 했다.

정규수업시간 동안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수능 관련 과목들은 방과 후 시간을 쪼개 메워야 했는데 부족한 것은 단지 시간만이 아니었다.

장애를 이유로 등록을 거부하는 학원들과 부족한 점자문제지들은 안 그래도 좁아 보이는 대학진학의 통로를 바늘구멍으로 만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나타난 구세주들이 있었으니 바로 대학생 학습 봉사자들이었다.

마음씨뿐만 아니라 학벌까지 좋았던 형, 누나들은 우리의 무료과외 선생님을 자청해 주었다.

문제지를 읽어주고 풀이과정을 설명해 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쉽게 성적이 오르지 않던 우리들을 위해 방학특강도 개설되고 점자로 된 모의고사 시험지까지 제작해 주었다.

'참우리'라는 동아리 이름처럼 그들은 우리에게 참된 우리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었다.

1박2일의 짧은 MT 속에서 거리낌 없는 하나가 되어 즐겼고 힘들어 하는 동생들의 인생멘토가 되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로 했던 동아리의 룰은 별 의미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는 의지들은 대학생활 전부를 우리에게 쏟으려는 듯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로 달려오는 바람에 교실이 모자랄 정도였다.

치료의 시간 때문에 학년기가 지체되었던 나에겐 어느 때부턴가 나이가 같은 봉사자들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봉사자와 수혜자가 아니라 진정한 인생친구가 되어 있었다.

축제를 공유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었다.

친구들 덕분에 대학에 들어가고 먼저 취직한 내가 그들에게 맛난 밥을 사주기도 했다.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연애를 조언해주던 우리의 인연은 10년이 넘게 이어져 이제는 서로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시간까지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도움 받는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은 도움은 훌륭한 사람이 부족한 이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형, 누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줄 때는 값싼 위로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살면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받을 수 있고 또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줄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물론 어떤 이는 많이 주고 적게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함께 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눈다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이 한 명도 똑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면서 함께 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힘이 있어도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에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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