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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표현' '나쁜 표현' 수용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국내외 몇 가지 사례들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보자. 1)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어묵에 비유하며 '인증샷'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인가? 2) GTA처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3)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인물을 희화하고 풍자하는 그림을 출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4) BDSM으로 분류되는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5) 선거기간 기업이나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TV 정치광고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 김선호
  • 입력 2015.03.11 10:43
  • 수정 2015.05.11 14:12
ⓒilbe

"수정헌법 제1조는 악당들의 제1차 도피처이다!"

미국 영문학자이자 법학자인 스탠리 피쉬가 언론의 자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1)고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언론의 자유(더 넓게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적 권리이며, UN '세계인권선언' 19조에 규정된 보편적 권리로서 당위론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다른 가치와 충돌을 일으킬 때 표현의 자유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자유와 억압' 프레임

국내외 몇 가지 사례들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보자. 1)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어묵에 비유하며 '인증샷'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인가? 2) GTA처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3)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인물을 희화하고 풍자하는 그림을 출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4) BDSM으로 분류되는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5) 선거기간 기업이나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TV 정치광고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이 질문들은 곤혹스럽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전적 프레임에 익숙해져 있는데, 고전적 프레임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고전적 프레임은 '자유와 억압'이라는 이분법을 사용한다. 표현의 자유를 개인의 권리 행사나 자아실현 과정으로 보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억압으로 설정한다.

고전적 프레임 속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진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이다. "종교 설립과 관련된 법이나 자유로운 종교 행사를 금지하는 법, 언론이나 출판의 자유를 축소하거나, 사람들이 평화로운 집회를 할 권리 및 정부에 탄원할 권리를 축소하는 법을 의회는 제정할 수 없다."2) 1791년 채택된 수정헌법 제1조는 미국 독립과정에서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사이 타협의 산물이다. 연방주의자들이 제안한 헌법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건설을 암시했기에, 반연방주의자들은 헌법 비준을 거부했다. 반연방주의자들은 연방정부가 수립될 경우 독재(특히, 의회 독재) 체제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고, 제임스 매디슨과 같은 연방주의자들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원래 있던 헌법 초안에 10개의 수정헌법 조항들을 추가함으로써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타협안을 내세운 것이다.3)

둘째, 표현의 자유는 의견의 다양성과 진리 발견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리와 허위가 서로 겨루게 하라. 자유롭고 열린 대결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라고 말했던 존 밀턴이나 "만약 모든 인류가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만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은 그 한 사람이 모든 인류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부당하다"고 갈파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허위 정보나 소수의 의견이라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이 될 수 있다"

셋째,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본질을 이성을 사용한 자율적 판단으로 보았고,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즉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된 자율적 인격이 실현된다고 말했다. 1948년 제정된 UN 세계인권선언은 칸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으로 규정한다.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고,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4)

한마디로, 고전적 프레임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① 민주주의 ② 진리 발견 ③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했던 문제들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가치들을 대입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묵 인증샷, GTA 게임, 종교적 풍자, 포르노 그래피, TV 정치광고 같은 것들이 민주주의, 진리발견, 자아실현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게다가 "표현의 자유는 원래 목적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스탠리 피쉬의 지적처럼, 그런 표현들이 표현의 자유가 내세운 가치들을 오히려 침식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자유와 억압'이라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전적 프레임을 넘어서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이 요구된다.

고전적 프레임의 근본적 맹점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표현의 주체(speaker)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표현의 주체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으면 자유로운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데 제한이나 통제가 따르면 억압된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문제와 결부된 표현은 고립된 개인 혼자서 벌이는 활동이 아니다. 그 표현은 타인, 특히 불특정 다수의 수용자를 동반하는 관계론적이며 커뮤니케이션적 현상이다. 독백은 이미 항상 자유로우며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상적 대화도 타인을 동반하지만 표현의 자유 문제와 거리가 멀다. 면전에서 상대방에게 욕하는 것은 모욕일지언정 명예훼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갖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제3자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표현하는 주체의 자유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도달하는 수용자와의 관계성, 달리 말해 수용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성(accountability)이 동전의 다른 한 면을 이루고 있다. 그런 관계적 프레임 속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를 검토해보자.

혐오 표현에 대한 상반된 판결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개념인 혐오 표현(hate speech)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혐오 표현이란 인종, 성별, 성적 정체성, 출신 지역, 종교 등 사회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차별적이고 인격 모독적인 언사를 행하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증거들은 유태인들이 조작했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는데, 이런 주장을 표현의 자유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규제가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1984년 캐나다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유태인들이 기독교를 박해했고, 경제공황이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이 있으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조작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형법에 사적인 대화를 제외한 혐오 표현을 유죄로 판단하는 조항이 이미 있었고, 그 교사는 기소됐다. 그리고 6년간에 걸쳐 법정 논란이 벌어졌는데 논란의 핵심은 그 형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배치되는 위헌 조항인지 여부였다. 마침내, 1990년 캐나다 대법원(R. v. Keegstra)은 혐오 표현이 "진리의 추구, 개인의 자아 발전,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달랐다. 1975년 신나치주의자들이 만든 미국 국가사회주의당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많이 사는 스코키시에서 나치 복장을 입고 행진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스코키시는 인종이나 종교 때문에 혐오를 선동하는 어떤 것도 금지하며, 나치 복장이나 휘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조례를 발표했다. 그러자 국가사회주의당을 대신하여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그 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효력을 중지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리노이 대법원의 최종 판결5)은 나치 휘장도 메시지를 담고 있는 표현에 속하기 때문에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휘장 자체는 어떤 공격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코키시의 조례는 무효라는 것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두 가지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판결이지만,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는 고전적 이론이 중요시하는 가치들만 가지고 충분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캐나다 대법원은 혐오 표현이 민주주의, 진리발견, 자아실현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 곧 혐오 표현이 규제나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스코키시의 담당 검사는 혐오 표현이 일차적으로 유태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혐오 표현으로 말미암아 유태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만약, 혐오 표현이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차별을 불러일으킬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혐오 표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동일한 내용의 혐오 표현이라도 고통과 차별을 불러일으킬 현실적 가능성이 없다면, 규제의 근거가 미약하다.

수용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

표현의 자유 문제는 관계론적 관점에서 수용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성을 고려해야 하며, 이는 혐오 표현 이외에도 음란물, 상업광고, 정치광고에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외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음란물로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매우 애매하다. 그런데 표현이 수용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예를 들어 성인영화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인식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확대시킬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음란물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GTA 게임 판매나 담배 상표에서 '마일드'나 '라이트' 같은 표현의 사용 가능 여부는 소비자에 대한 책임성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가 독자적으로 선거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도 법인격체의 정치적 표현이 자연인인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고전적 프레임 속에서 이념화된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진리,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이해됐고 진보를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발전,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 세계화, 다문화 사회로 이행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고전적 프레임에만 의존해서 해석하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그 자체가 '선'이라고만 볼 수 없고 좋은 표현과 나쁜 표현, 유익한 표현과 해로운 표현에 대한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가치 기준들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수용자에 대한 책임성이 가장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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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anley Fish.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Speech: And It's a Good Thing, Too".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2)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3) 수정헌법 제2조는 정부가 무력으로 시민적 권리를 억압할 때 시민들이 저항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총기 소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4) "Everyone has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this right includes freedom to hold opinions without interference and to seek, receive and impart information and ideas through any media and regardless of frontiers."

5) 중간에 다소 복잡한 과정이 있는데, 그 부분은 생략한다.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신문과 방송>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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