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종북? 극우? 김기종을 바라보는 5가지 시선

  • 허완
  • 입력 2015.03.09 14:15
  • 수정 2015.03.09 14:38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대체 누구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의 과거, 발언, 행동, 그가 소유하고 있던 책들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선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그를 ‘종북주의자’이라 부르고, 새정치연합은 ‘극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민족주의자’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정신병자’라고 지칭한다. 그가 ‘외톨이’였다는 증언도 소개되고 있다.

분명한 건, 그에게 단 하나의 ‘딱지’를 붙이는 건 허망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김기종씨를 바라보는 5가지 시선을 모아봤다. 어쩌면 김씨의 ‘정체’는 엇갈리고 겹치는 이 시선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김기종씨가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 '종북주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6일 "김기종씨 개인은 종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가지 전력, 현장에서의 활동 및 구호 등을 보면 종북주의자임은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뉴시스 3월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9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를 '종북 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슨 관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3월9일)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익명으로 인용한 김씨의 한 대학동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한 대학 동문은 “(김씨는) 20년 전부터 반미·반일·친북 성향이 강했던 주사파”라며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할 때 본적을 독도로 옮기며 일본 규탄 운동을 하더니 북한에 다녀온 뒤부턴 본격적으로 반미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조선일보 3월6일)

통일부는 김씨가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8차례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와 함께 ‘나무심기’ 활동을 목적으로 방북했다는 것.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극단주의자

김씨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물론 ‘테러’다.

진중권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1 3월5일)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 3월6일)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3월7일)

3. 민족주의자

김씨가 독도수호운동 등을 하는 문화단체를 운영해왔으며, 그가 반미시위에 참가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언급하거나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민족주의의 혐의를 찾는 시선도 있다.

외신들 중에는 김씨를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 민족주의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김씨를 “민족주의 활동가(nationalist activist)”라고 표현했으며, CNN은민족주의 반미 활동가(nationalist and anti-U.S. protests)”로 그를 묘사했다.

지난 2010년 7월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진 뒤 강연장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종씨. ⓒ연합뉴스

해외에서 민족주의는 흔히 ‘극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유럽연합 탈퇴와 이민자 배척 등을 주장하는 유럽 정당들은 예외 없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극우 민족주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는 어떨까. 김씨의 민족주의는 극단주의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경찰이 수사중이지만, 그가 이날 피습 현장에 들고 간 유인물, 검거 뒤 발언,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적 범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씨는 강연장에 가져간 유인물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해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한다’ ‘광복 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3월5일)

BBC 역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김씨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행동을 벌여 온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4. 정신병자

보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에는 김씨가 평소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저렇게 일낼 줄 알았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데일리안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용의자 김기종씨(55)에 대해 이웃과 지인들은 김씨가 “평소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90년대 초부터 전통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복원 작업을 함께 했다는 A씨는 김씨에 대해 “몸과 정신이 많이 아프다”며 “특히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6일)

김씨가 지난 1월말 아이돌그룹 ‘엑소(EXO)’ 공연장에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당시 그를 조사했던 수사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수사 관계자는 “김씨는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홍보 책자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나눠주고,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며 “명문대를 졸업했다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3월6일)

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휠체어에 탄 채 진료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김씨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우리마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8년 8월17일 새벽, 김씨가 운영하던 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다. 괴한들은 이 단체 회원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보도에 따르면, 괴한들은 여학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같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한편 당시 사건을 취재하며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김창균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선일보 3월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인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 외톨이

김씨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외톨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사건 직후 SBS가 독도향우회 박남근 수석부회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2006년 김씨와 함께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인물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김 씨가 ‘내 생활을 내려놓고 시민운동에 몸을 바쳤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언론에는 정치나 명예를 좇는 사람만 나오고 나처럼 순수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관심을 못 받는다’고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졌을 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을 오히려 기분 좋아하면서 ‘처벌을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듯이 국가를 위해 일한 것인 만큼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SBS 3월5일)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가 대표로 활동하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진보 성향 문화운동 단체 우리마당. ⓒ연합뉴스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벌여왔던 활동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김씨의 활동은 그의 궁핍한 처지와 맞물려 극단적인 폭력 행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전쟁훈련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면에는 실패한 시민운동가의 ‘악심(惡心)’이 놓여 있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최근엔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 독도지킴이 등의 활동은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민일보 3월6일)

공정식 KOVA 범죄연구소장은 “김씨가 키리졸브 훈련 중단, 전쟁 중단 같은 사상적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반일과 반미를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자신을 탄압의 피해자로 합리화하고,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과격하게 발현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3월7일)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3월6일)

8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열린 김기종 수사관련 브리핑에서 경찰관계자가 압수서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런 다양한 시선과는 무관하게 김기종씨에 대한 수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방북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 개최 사실 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