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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 ‘발암성 위험도'가 커피·김치와 동급?

  • 박세회
  • 입력 2015.03.08 13:51
  • 수정 2015.03.08 13:52
Visitors use their mobile phones' cameras during the 2015 Mobile World Congress (MWC) in Barcelona on March 5, 2015. Tech companies showcased countless connected gadgets at the world's biggest wireless telecom fair, the Mobile World Congress in Barcelona, which wrapped up today.  AFP PHOTO / JOSEP LAGO        (Photo credit should read JOSEP LAGO/AFP/Getty Images)
Visitors use their mobile phones' cameras during the 2015 Mobile World Congress (MWC) in Barcelona on March 5, 2015. Tech companies showcased countless connected gadgets at the world's biggest wireless telecom fair, the Mobile World Congress in Barcelona, which wrapped up today. AFP PHOTO / JOSEP LAGO (Photo credit should read JOSEP LAGO/AFP/Getty Images) ⓒJOSEP LAGO via Getty Images

전자파, 알고 두려워하자

10년 동안 노르웨이 여성 총리를 지낸 그로 할렘 브룬틀란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 재직할(1998~2003년) 때 자신의 사무실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시켰다.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두통을 일으켰다고 믿어서다. 전자파에 대한 과도한 반응으로 판명돼 브룬틀란은 현재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온갖 전파가 송수신되는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전자파 과민증’을 불러오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인구의 10분의 1 정도인 50만명이 전자파 과민증 징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3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생활 가전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4.5%(매우 유해 28.5%, 조금 유해 66.0%)나 됐다. 전자파 방지용품이나 식물 등이 전자파 차단에 효과가 없음에도 이들 용품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10명 중 7명이 넘고, 그중 2명은 지금도 사용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70% 이상이 “조금이라도 전자파를 차단해줄 것으로 기대해서”라고 응답해 전자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 어린이가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에 전자파 차단장치가 돼 있어 전자파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머리에서 되도록 멀게, 통화는 짧게, 왼쪽과 오른쪽 귀를 번갈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전자파는 세포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전자파의 본명은 전기자기파다. 전자기장에 의해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전자기 에너지를 뜻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반복하면서 파도처럼 퍼져나가기 때문에 전자파라고 부른다. 전자파도 방사선의 일종이지만 물질을 이온화시켜 기본 성분을 바꾸는 엑스선, 감마선 등의 전리방사선과 달리 이온화 능력이 없어 비전리방사선에 속한다. 하지만 인체에는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크게 열작용과 자극작용을 일으킨다. 전기(우리나라는 60㎐)나 가전제품 등에서 나오는 낮은 주파수(단위시간당 파동수)의 전자파는 유도된 전류에 의해 신경이나 근육에 자극을 가하는 반면, 휴대폰이나 전자레인지처럼 주파수가 높은 전자파는 조직세포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한 국내 연구팀이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뇌의 온도 변화에 끼치는 영향을 컴퓨터로 모의실험한 결과 0.04도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구팀은 휴대전화를 사용 중인 사람의 얼굴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보니 1.7~4.5도 정도의 체온 상승이 일어났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전자파는 '사전주의'차원에서 예방 해야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자파의 세기는 보통 전자파흡수율(SAR)로 표시한다. 1998년 스웨덴 연구진이 휴대전화 사용자의 뇌종양 발생률이 미사용자보다 2.5배나 높다는 연구를 발표하는 등 전자파 유해성에 관련한 연구 보고가 잇따르자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ICNIRP) 등은 전자파의 인체 흡수율 기준을 정해 규제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이듬해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극저주파(ELF)를 발암인자 2B등급으로 분류해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규정했다. 2011년에는 휴대전화 등에서 사용하는 통신주파(RF)도 2B등급에 포함시켰다. 2B등급에는 커피와 김치(절인 채소) 등도 포함돼 있다. 동물실험에서 발암성 증거가 충분히 제기되는 2A등급(배기가스나 적외선 등 암 유발 후보 물질)과 달리 발암성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전주의’ 차원에서 예방할 필요가 있는 물질이다.

전자파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

우리나라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태블릿 피시 등 사람 몸 가까이(20㎝ 이내)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에 대해서는 전자파흡수율을 제한하고 있다.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가 권고하는 기준(2W/㎏)보다 좀더 강화된 1.6W/㎏이 기준이다. 우리는 2013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 전자파등급제를 도입했다. 0.8W/㎏ 이하면 1등급으로 표시된다. 자신의 휴대전화 전자파 등급이나 전자파흡수율은 국립전파연구원(rra.go.kr)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초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모델명 4SM-N916S)의 경우 0.506W/㎏, 애플의 아이폰6플러스(A1524)는 1.17W/㎏으로 등록돼 있다. 국회는 지난해 말 전자파 보호 기준 대상에 전기·전자기기까지 포함하는 전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관들은 노인·어린이·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전자파 영향 연구와 기준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16개국이 참여해 2009년부터 내년까지 8년 동안 진행하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어린이와 청소년(10~24살)의 중추신경계 발암(뇌암)에 미치는 영향 평가 연구’(Mobi-Kids)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트리)이 참여하고 있다.

오히려 의료기기 개발에 쓰이기도

에트리는 임신부의 휴대폰 사용이 어린이 신경행동 발달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2006년부터 5년 동안 임신부 1500명의 휴대폰 사용을 추적조사한 뒤 출생한 어린이들의 행동을 4년째 조사해오고 있다. 내년에 60개월 연구의 종합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어린이의 행동과 임신 중 휴대전화 사용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에트리는 또 전자파 숲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자파 다중 노출 환경에서 전자파가 동물이나 세포의 호르몬 분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실험쥐에게 하루 45분씩 8주 동안 4W/㎏의 전자파를 쬔 뒤 부검을 한 결과 멜라토닌, 갑상선호르몬, 성호르몬 분비 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최형도 에트리 전파기술연구부장은 “전자파 허용 기준을 더 엄격하게 강화해도 과도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요소가 생겼을 때 이해 당사자가 모여 어떻게 극복할지 소통해 문화적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전자파를 불안해하지만 오히려 의료기기 개발에도 쓰이고 있다. 에트리는 전자파를 이용한 유방암 진단장치를 개발해 서울대 의대와 공동으로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 암이 발생하면 물이 많아져 전자파흡수율이 높아지는 점에 착안해 만든 이 장치는 방사선 진단기기와 달리 전자파 누적 위험 요인이 없고 유방을 압착하는 불편이 없어 유용한 진단기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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