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그것도 모를 용기

질문을 하건 말건 개인의 자유다. 성격의 차이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일'을 내는 건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더불어 세상도 점차 질문하는 사람을 중요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필요는 있다. 뉴스를 곰곰이 보라.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 혁신, 새로움 이런 키워드들은 결국 '질문'과 관련이 깊다. 질문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을까봐' 이 말은 사실 변명의 여지가 적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상당 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의 습관 탓이다. 특히 공부조차도 잘 보이기 위해 해야 했던 오랜 관습이 기여한 바가 크다.

  • 김민태
  • 입력 2015.03.10 06:01
  • 수정 2015.05.14 14:12
ⓒShutterstock / PromesaArtStudio

후배 피디 C가 찾아왔다. "프로그램에 협찬하겠다는 기업이 있는데 받아야 할까 해서요" 이 분야는 내 부전공이나 마찬가지다. 20분 만에 결론이 났다. "이득보다 손해가 크겠다!" 합의해서 도출한 결론이다.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결론을 냈을 거다. 가치 판단이 아닌, '정보'의 이해와 처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도 '단순'하다.

후배의 얼굴엔 '찾아오길 잘했다'는 표정이 보인다. "모르면 물어봐라. 물어보면 해결 된다" 일어서며 에필로그 같은 멘트를 날렸다. 나에겐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다.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체득한지는 얼마 안 된다. 그 말에 자신감이 붙어서였을까? C는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인다. "선배님, 제 프로그램 얘기 한번 들어주실래요?" "뭔데?" 이야기는 그가 준비 중인 신규 프로그램으로 튀었다.

이번엔 내가 질문을 던졌다. 이해가 안 되는 찜찜한 구석을 쿡쿡 찔러댔다. C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나를 원망하는 눈빛은 아니다. 피디들은 그 마음을 잘 안다. 아주 탁월한 기획이 아니라면 언제나 좌불안석이다. 주변엔 '뭐라 뭐라'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조언을 해주거나 비판을 해주는 사람 자체가 귀하다. 게다가 기획한다고 하면 그냥 노는 줄로 아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외로울 수밖에.

기획안은 뿌리 채 흔들리고 방송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화는 한 시간 가량 더 지속됐고, 다음날 약속까지 잡게 됐다. 결론은? 이 대답은 내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전환이 있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표정을 봤으니까!

질문을 하면 무언가 얻는다

질문의 힘은 강력하다. 어떠한 말이라도 끝에 가서 물음표가 붙는 순간 상대방의 마음은 흔들린다. 좋든 싫든 긴장감이 발생하고 자신이 뭐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부채의식마저 생긴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생겨먹었기도 하고 언어의 힘이기도 하다. 간단히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 길가는 사람을 잡고 간단한 퀴즈를 내봐라. 다큐에서 종종 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그는 뭐라도 대답을 할 것이다. 아기들이 그토록 질문을 퍼부어대는 것도 이 마법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기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배운다.

내가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대개 기우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다. 바로 인정 욕구 때문이다. 그에게 배우고 싶고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가 잘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좋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큰 성취를 해낸 사람들일수록 질문의 힘을 잘 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지닌 최고의 탁월함은 자신과 타인에게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질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만드는 그의 대화 스타일을 '산파술(산모를 도와주는 산파처럼)'이라고 칭하는데, 오늘날에도 최고의 교수법으로 통한다.

탈무드를 쓴 마빈 토케이어는 5천년 유대교육의 비밀을 한마디로 '질문하기'라고 했다. 이스라엘에서 교사의 제1 덕목은 학생들의 질문을 끌어내는 능력이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말없이 듣고만 있다면 이는 교사의 책임이다. 학급의 리더 역시 좋은 질문을 던지는 학생 중에서 나온다. 가정에서도 교육의 제1 덕목은 '질문'이다. 토케이어에 따르면 유대인 부모들은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라고 묻지 않고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 더불어 "무엇이든지 모르면 선생님께 물어봐라"라고 한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느낀다.

학습 부진아였던 아인슈타인을 세기의 과학자로 키운 것도 질문이었다. 이미 유명해진 후에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나한테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네. 다만 지독하게 호기심이 많을 뿐이지."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아이가 아무리 질문을 많이 해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의 있게 대답해줬다. 질문의 힘을 깨달은 아인슈타인은 훗날 "올바른 질문을 찾고 나면 정답을 찾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무식하거나 대들거나

배움에 있어 질문만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의 정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을까봐.

2. 그가 언짢아할까봐.

먼저 '그가 언짢아할까봐' 질문을 못한다? 다수의 직장인들은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조직문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나을 때가 많기 때문에, 작은 질문에도 신중해진다. 물론 자기를 합리화할 준비는 되어 있다. "난 물어보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선배도 싫어하고, 부장도 싫어하고, 사장도 싫어하고..." 실제 거침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소크라테스처럼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서 개인적 가설 하나. 어떤 회사의 미래를 보려면 조직 내 질문의 수를 보면 된다. 질문의 수는 말하기의 양과 관련이 깊다. 말없이 컴퓨터만 보는 직원이 많은 회사는 미래보다는 현재에만 충실한 회사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공식적인 이유는 불경죄였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의 존재를 의심한 점.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를 죽인 건 그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 당대의 지식인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던졌는데, 대부분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들을 죄다 적으로 만들었으니 무사했겠는가.

질문을 하건 말건 개인의 자유다. 성격의 차이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일'을 내는 건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더불어 세상도 점차 질문하는 사람을 중요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필요는 있다. 뉴스를 곰곰이 보라.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 혁신, 새로움 이런 키워드들은 결국 '질문'과 관련이 깊다.

질문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을까봐' 이 말은 사실 변명의 여지가 적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상당 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의 습관 탓이다. 특히 공부조차도 잘 보이기 위해 해야 했던 오랜 관습이 기여한 바가 크다.

「질문의 힘」을 쓴 제임스 파일은 기자들에게서 이런 유형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음에도 꽤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상대방에게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대개 길고, 논점이 잘 안 잡힌다.

질문 한번 하기

발달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한신대 이경숙 교수는 "질문하기는 인간의 본능이고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세대를 지나도 변치 않는 아기들의 모습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질문에 머뭇거리는 것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너무 수준 낮은 질문 아닐까?' '배경지식을 갖추고 질문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앨빈 토플러를 잇는 미래학자로 평가받는 다니엘 핑크가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젊은 나이에는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습니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해보세요." 계획보다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그의 말을 난 이렇게 변형하고 싶다.

1.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질문을 하는데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모르면 그냥 물어보세요. 원하는 걸 얻게 될 겁니다."

2. 장(長)이라고 불리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질문 한번 했다고 핀잔 주지 마세요. 상을 주어 보세요. 손쉽게 미래를 얻게 될 겁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