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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 언론의 역할

자기중심적 보도는 국제관계 보도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보도와 거의 비슷한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의 국익에 맞으면 호의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비판적으로 쓰는 것이다. 보도에서 사실의 중요성은 그리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그러니 상대방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갈등만 유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 오태규
  • 입력 2015.03.05 12:18
  • 수정 2015.05.05 14:12

3월 2일 열린 '2015년 세계언론인회의'의 주제는 <21세기 동북아시아의 평화 전망-미디어의 역할>이었다. 이런 주제로 한 것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미디어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으며, 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발표를 맡은 부분이 한국을 중심으로 한 것이니, 그것은 한국의 언론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따져보고 더 좋은 역할을 하도록 제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언론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언론이 지금 어느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언론의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역할을 논의하는 데에도 큰 이해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언론은 지금 안팎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것이 양적으로는 급격한 열독률의 저하로, 질적으로는 신뢰의 위기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월30일 발표한 <2014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보면, 종이 신문의 열독률은 2013년 33.8%에서 30.7%로 떨어졌다. 같은 조사에서 2002년 열독률이 82.1%, 2008년 58.5%, 2011년 44.6%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가히 수직 낙하중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적으로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용자의식 조사에서 미디어가 제공하는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5점 척도로 물은 '미디어 신뢰도'도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포함한 전 매체 평균이 2013년 3.40점에서 2014년 3.28점으로 떨어졌다. 국제언론단체에서 보는 한국언론의 자유도도 점점 악화일로에 있다.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최근 발표한 2015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대상국 180국 중 60위로 나타났다. 2013년 50위, 2014년 57위에 이은 연속 추락이다. 또 다른 국제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2011년 이래 자유국에서 부분적 자유국으로 위상이 추락한 뒤 자유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나라들 중 대만이나 파푸아뉴기니보다도 순위가 처져 있다. 한마디로, 나라 안팎에서 한국 언론은 신뢰를 잃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언론이 이런 위기에서 쉽게 벗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미디어의 열독률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진단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터넷과 모바일, 에스앤에스(SNS) 등 전통매체를 대체하는 온라인 매체의 급부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신문과 방송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정형·이동형 인터넷을 포함해 다양한 경로로 신문 기사를 보는 '결합 열독률'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1.6%포인트 늘어난 78%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신문사의 영향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한국 언론은 경영 환경의 악화를 저널리즘 원칙의 훼손으로 보완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편집국의 고위 간부를 광고국의 책임자로 보임하는 등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고, 기자도 회사 경영에 직간접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식의 압력이 강해지다 보니, 매체 안에서부터 저널리즘의 원칙이 흔들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는 눈썰미 있는 독자들이 미디어의 독립성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떨어져 가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보도의 경향이 더욱 선정적이고 정파적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16일 서해바다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선정적 보도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치적·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한 정파적, 편파적 보도가 많아지는 것도 떨어지는 독자와 수익을 방어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외에도 연속되는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정권의 인터넷 감시 강화,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 남발 등 권위주의적 언론정책도 한국 미디어의 자유로운 활동을 옥죄고 있다. 청와대가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의혹을 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서를 특종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를 검찰에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북아 보도와 관련한 한국언론의 문제

한국 언론의 열악한 환경은 동북아 관련 보도에도 그림자를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영향력과 신뢰를 잃은 미디어의 한계가 각 분야에 고루 투영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보도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건설적인 역할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반적인 작업과 함께 병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한국언론의 동북아 보도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동북아라고 함은 나라로 치면 중국, 일본, 북한 세 나라로 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관계가 매우 좋아진 탓인지 '문제의 보도'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중국을 제외한다면, 동북아 보도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문제는 대부분 일본과 북한 관련한 보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먼저 최근에 문제가 된 일본 관련 보도 2개와 북한 관련 보도 1개를 사례로 들어 살펴 보자.

사례1)

<동아일보>는 지난해 7월10일 한일관계가 악화한 와중에서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한일본대사관이 자위대 창립 60주년 기념 리셉션을 대대적으로 연다는 내용의 보도를 1면 기사로 내보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시민단체가 호텔에 항의하자, 호텔 쪽은 호텔 대관을 취소하고 일본대사관은 리셉션 장소를 대사관저로 옮겨 열었다. 초청된 한국 참석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유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호텔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 관리들의 롯데호텔 이용을 금지했다. <동아일보>는 12월4일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천황의 생일축하 행사를 한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초청을 받은 한국의 인사들이 대거 행사장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이 행사는 특별히 이해에만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일본 대사관이 매년 연례적으로 열어온 행사였다. 언론의 감정적 보도가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이것이 외교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방해하고, 양국 외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사례2)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이 지난해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인터넷판에 게재하자, 청와대가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보수 단체의 고발을 받은 검찰이 그를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지국장 임기를 마친 가토 전 지국장은 출국금지 상태에서 계속 재판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의 찌라시를 참고삼아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만났을 가능성이 있고, 이 둘의 관계가 남녀관계인 것처럼 묘사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기소 이유인데, 일본 언론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주요언론이 한국 정부의 처사를 비판하는 보도를 냈고,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의와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은 대체로 가토 지국장의 보도는 취재의 엄밀성과 윤리적 태도 등에 문제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언론 보도를 이유로 기자를 기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수준의 절충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쪽은 산케이를 포함해 거의 모든 매체가 한국 정부의 처사를 특파원의 취재 활동을 방해하고 탄압하는 야만적 조치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나쁜 상태에서 나온 한 신문사의 보도가 양국 정부뿐 아니라 언론과 민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례이다.

사례3)

북한을 다녀온 뒤 지난해 말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콘서트'라는 강연회를 열어온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일부 종합편성(종편) 방송과 신문이 그가 강연회에서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한 뒤 수난을 겪은 일이 있다. 그는 이 보도 뒤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로 경찰과 검찰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1월10일 강제추방 당했다. 이와 함께 그가 2012년 11월에 출간한 북한 방문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실제 그는 강연회에서 '북한이 지상낙원'이란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일부 미디어의 사실과 다른 선정적 보도가 우파 세력의 감정을 자극하고 이것이 정부에 압력을 가해 국가보안법 수사 뒤 강제추방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미국의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이 이 사건에 언급하며 "일부 경우에서 보듯이 그 법(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공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과 관련한 악의적인 보도가 국내 갈등뿐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준 경우이다.

위의 보도 사례들을 보면, 밑바닥에 흐르는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자기중심주의적 보도이다. 자기중심적 보도는 국제관계 보도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보도와 거의 비슷한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의 국익에 맞으면 호의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비판적으로 쓰는 것이다. 보도에서 사실의 중요성은 그리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그러니 상대방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갈등만 유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둘째, 절대주의적인 보도 행태이다. 철저한 선악 이분론에 빠져 나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상대의 잘못만 있다고 인식하고 보도를 한다. 일본과의 역사 논쟁,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룰 때도 나의 결점은 없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일본의 역사인식을 볼 때는 우리의 역사인식은 일본을 비판할 정도로 건전하고 흠이 없는가, 북한의 인권을 비판할 때도 우리의 인권에 대한 허점은 없는가를 함께 고려하고 봐야 설득력도 있고 보도의 영향력도 커진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다.

셋째는 주장저널리즘의 경향이 강하다. '21세기 저널리즘의 고전'으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The elements of journalism,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저)이란 책을 보면,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공중을 대상으로 주장을 하는 백가쟁명의 시대일수록 진실을 확인자 노릇을 해줘야 하는 훈련된 언론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을 신성시하고, 판단과정의 투명성 노력을 강화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사실을 내팽개쳐 둔 채 자신의 희망과 입맛에 따라 주장만 해서는 언론이 절대로 신뢰를 회복할 수도 영향력을 증대할 수도 없다.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기 하기 위한 길

동북아 평화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길이라면 한국언론은 지금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하고 더욱 분발하여야 한다. 그 답은 위에서 지적한 약점을 극복하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첫째, 한국 언론은 동북아 사안을 보도함에 있어서 민족주의 성향에서 가급적 탈피할 필요가 있다. 현존 세계질서가 민족국가를 핵심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한, 국익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을 완전하게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지배를 자주 받아온 한국의 처지에서 민족주의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는 커다란 원동력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상대국의 민족주의를 필연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민족주의의 상승·대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동북아 평화의 해법이 아니다. 실리적으로도 민족주의는 주변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한국이 쓸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적어도 침략이나 지배를 또 당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의 언론은 민족주의가 부딪힐 수 있는 사안일수록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서 문제를 보고 전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한국의 언론은 상대주의적 자세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의 잘못과 상대의 옳음을 보려는 자세 없이는 자신의 발전도 이룰 수 없고 남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내 보도가,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고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겸허한 자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나라와 나라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건일수록 그런 자세가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 주장저널리즘을 탈피해야 한다. 자신의 보도가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인지, 또 자신의 판단이 그렇게 판단할 만한 충분한 근거로 뒷받침된 것인지를 항상 꼼꼼하게 되물으며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내가 주장하는 바에 도움이 된다고 객관적 사실을 경시하고 희망적으로 보도해선 안 된다. 북한이나 일본 보도에서 지금까지 문제되었던 사안은 대체로 주장을 먼저 내세운 뒤 사실을 그에 꿰어맞추는 식으로 보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바로 그 역코스의 보도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언론이 동북아 평화에 좀 더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탈민족주의, 탈절대주의, 탈주장저널리즘의 보도가 더욱 많아지고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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