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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100년과 '1의 전진'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경제발전기, 우리는 수출 1억 불, 국민소득 1만 불, 수출 100만 대 등의 구호를 목 놓아 외쳤다. 모든 목표는 늘 0이라는 숫자로 끝났다. 하지만 아산은 달랐다. 1976년 우리가 처음 만든 자동차 포니의 10만 대 수출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100,001대 수출 기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17살의 나이에 몰래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몰고 간 소는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였다.

  • 김우정
  • 입력 2015.03.06 11:20
  • 수정 2015.05.06 14:12

100년 전에 태어난 한 사람.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산골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정주영, 훗날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주역이 된 현대그룹의 창업주다.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아산은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소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남다른 꿈을 품었던 아산은 결국 소 한 마리 판 돈을 들고 가출을 감행한다.

사실 그의 가출은 한 번이 아니었다. 무려 4번의 가출 시도(?) 끝에 상경에 성공한다. 특히 3번째 가출 때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도망친 것으로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한 아산은 특유의 열정을 인정받아 취직 3년 만에 월급으로 쌀 20가마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 1938년 주인 집 아들이 가산을 탕진하자 주인은 아산에게 가게를 물려준다.

1940년 중일전쟁의 여파로 쌀이 배급제로 바뀌면서 아산은 새로운 사업을 모색한다. 그는 당시 경성에서 가장 큰 자동차 수리공장이었던 아도서비스를 인수하지만 그 또한 2년 만에 일제에게 빼앗기다시피 정리한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6년 미 군정의 산하기관으로부터 땅을 불하 받은 아산은 현재 현대그룹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공업사를 설립하고, 이듬해 건설업까지 진출한다.

기적이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

이후 아산의 업적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겨울에 푸른 잔디밭을 만들기 위해 청보리를 심은 일, 서산 간척지를 메우기 위해 폐유조선을 침수시킨 일, 기술 하나 없이 조선소를 건립하기 위해 오백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영국의 은행장과 담판을 벌인 일 등 그의 일화는 지금도 경영인들의 술자리에 숱하게 오르내리는 이야기의 메카다. 그는 기적을 믿었던 경영자였다.

1975년 주베일 항만공사의 수주는 그가 만든 가장 위대한 기적 중의 하나다. 당시 석유 수출대국이었던 사우디 왕국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국가개발을 하겠다는 야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바로 주베일 항만공사였다. 당시 공사비가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50%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가장 마지막으로 입찰에 참여, 입찰 4일 전 보증금을 겨우 확보했음에도 결국 승리했다.

그의 인생 마지막 기적은 아마도 1998년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판문점을 넘기 전, 임진각에서 아산은 당시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한 마리의 소가 1,001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나는 여기서 그 기적의 실마리를 찾았다.

죽여주는 생각은 1의 전진.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경제발전기, 우리는 수출 1억 불, 국민소득 1만 불, 수출 100만 대 등의 구호를 목 놓아 외쳤다. 모든 목표는 늘 0이라는 숫자로 끝났다. 하지만 아산은 달랐다. 1976년 우리가 처음 만든 자동차 포니의 10만 대 수출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100,001대 수출 기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17살의 나이에 몰래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몰고 간 소는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였다.

0이 마침의 숫자라면, 1은 출발의 숫자다. 기적이란 결국 끝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식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결국 기적이란 어제를 발판으로 내일을 시작하는 일, 출발하는 1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은 0과 1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혹자는 이 세계를 <0과 1의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전진과 멈춤의 싸움,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의 전쟁이 바로 지금 이 시대다.

올해는 아산 정주영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가 만든 현대그룹은 이제 각각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이 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2015년이 그 어느 해보다 경제상황이 어려울 것이며, 지금이 경제부흥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해답을 아산의 <1의 전진>에서 찾는 것은 너무 막연한 제안일까? 사소한 1의 차이가 모든 결과를 바꾼다고 믿는 일부터 시작하는 일이 정말 불가능할까? 아산의 말처럼, 해보기나 하자. 결국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행동하는 1명이니 말이다.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야,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닦아야지. by 아산 정주영

※ 본 원고는 마케팅 전문 매거진 월간 '아이엠'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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