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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삼촌, 그저 조금 더 모던한

형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 첫 조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 있다. 내 조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삼촌은 게이야" 라고 별 일 아닌 듯 말하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는 게 결혼이라고 가르쳐 줄 때, 남자와 남자도, 여자와 여자도 결혼할 수 있다고 손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풍부히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건데, 이제 막상 3년만 더 있으면 첫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거라고 생각하니 참 삼촌으로서 내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 김게이
  • 입력 2015.03.05 11:03
  • 수정 2015.05.05 14:12

몇 년 전 매형을 데리고 천리타향으로 떠난 첫째 누나는 그곳에서 매형을 꼭 닮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딸을 낳아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쯤 한국으로 출장을 올 때 만나긴 하지만, 조카를 데리고 온 적은 딱 한 번뿐이어서 실제로 본 조카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땐 아직 갓난 아기라 포대기에 쌓여 내가 삼촌인지 여기가 서울인지 아예 분간도 못할 때였는데, 누나 페북에서 조카가 두 발로 일어나 어버버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삼촌인 줄 아는 조카들은 둘째 누나네 아이들인데, 이제 다섯 살, 세 살 된 두 딸을 키우느라 머릿결까지 푸석해진 누나를 보면 요놈들 우리 누나 속을 어지간히도 썩이는구나 생각도 들지만, 삼촌 뽀뽀, 하면 와락 안겨 볼에 뽀뽀를 해주는 두 조카에 무한한 삼촌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 여자 뽀뽀를 받고 설레는 건 너희들이 처음이야...

큰누나가 멀리 나가기 전만 해도 우리 삼 남매는 꽤 자주 만났다. 셋 다 미혼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누나들이 결혼을 한 후에도 매형들과 자주 함께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 뿐인데, 그런 만남에는 항상 우리 형도 함께 있었다.

누나들은 결혼을 결심하기 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매형들에게 먼저 밝혔다. 동생인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 생각이 없고, 게이에 대해 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오만과 편견 가득한 사람이라면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매형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내 동생이 게이야, 라는 누나들의 말에 매형들의 반응은 다행히도 쏘 왓? 이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조카들에게도 내 남편, 우리 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존재이다. 이모와 이모부가 자연스럽듯이, 나와 우리 형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삼촌들이다. 두 조카들 모두 병원 신생아실에서부터 형과 함께 봐왔고 누나네 집에 놀러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으니, 나를 본 만큼 형을 본 아이들이다. 친삼촌이 없어서 날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형은 곰삼촌이라고 부른다.

큰 아이가 이제 다섯 살인데, 사실 그 나이에서 관계에 대한 얼마만큼의 이해가 가능한 건지는 짐작이 안 된다. 지금은 나와 우리 형이 어떤 사이인지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할 거고, 그냥 자기들 예뻐해 주는 삼촌들이라고만 생각하겠지. 차차 나이가 들면서 이런 저런 관계에 대해 개념을 가지기 시작할 텐데, '부부'라는 개념에서 우리 조카들은 흔히 우리 세대의 머릿속엔 박혀있는 '이성 간'이라는 조건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둘이 만나 결혼을 한 사이 라고만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째 누나네 딸내미는 아마 평생을 그 나라에서 살 것 같은데, 몇 년에 겨우 한 번 만날 삼촌이라 뭔가 살갑고 다정한 느낌은 훨씬 적을 순 있겠지만, 오히려 그 나라라는 환경 덕에 '남자와 결혼한 게이 삼촌'이라는 존재가 낯설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결혼을 했는데 왜 회사에는 그걸 숨겨? 삼촌 사는 나라는 진짜 이상한 나라구나?" 하면서 나와 내 조국을 꾸짖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째 누나네 조카들은 실제 게이 삼촌을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마주하는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가면서 어릴 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봐오던 두 삼촌의 관계가 사람들이 흔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되면서 혼란을 겪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형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 첫 조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 있다. 내 조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삼촌은 게이야" 라고 별 일 아닌 듯 말하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는 게 결혼이라고 가르쳐 줄 때, 남자와 남자도, 여자와 여자도 결혼할 수 있다고 손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풍부히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건데, 그러니까 한 10년쯤 뒤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했던 생각들인데, 이제 막상 3년만 더 있으면 첫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거라고 생각하니 참 삼촌으로서 내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친구들에게 게이 삼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친구들은 우리 조카들의 말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까?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동성애는 잘못된 거라고, 비정상적인 거라고 가르치지는 않을까? 그런 말을 듣고서 괜히 위축되고 슬퍼하진 않을까? 정말 어느 날 조카들이 '선생님이 게이는 비정상인 거래, 병이래, 더러운 거래'라고 하면서 내게 안겨 운다면 진짜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까.

학교의 분위기나 나라의 분위기를 한 순간에 역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들이 쉬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나는 내가 조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를 형과 함께, 그리고 누나들 매형들과 함께 생각해 봐야겠다. 착하고 똑똑하고 예쁜 누나들과, 착하고 똑똑하고 운이 좋은 매형들을 닮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삼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형과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지. 조카들에게 그저 조금 더 모던할 뿐인 삼촌이 되기 위해서.

아... 그런데 훗날 이미 내가 게이인 거 다 알고 있을 아이들에게 나와 형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장면을 상상해 보니,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춘기 자식들에게 큰 용기를 내 성교육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나도 언젠가 남편과 누나들과 조카들과 함께, 술 한 잔 마시는 날이 오겠지

(게이 삼촌 커플과 조카들이 나오는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www.snulife.com에 게시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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