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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도 콘돔이 제공되는 시대에 청소년 콘돔 규제가 웬 말이오

혹자는 콘돔의 존재를 알리면 갑자기 청소년이 문란해져 섹스만 주구장창하는 색마집단이 될 것처럼 주장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미국에서 콘돔을 교내에 비치하기 시작한 90년대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콘돔 비치 전과 후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의 비율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관계를 기존에 하던 학생들이 피임을 정확히 하는 비율만 늘었다. 지극히 이상적인 결과였다. 콘돔교육이 만능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콘돔과 피임을 가르친다고 해서 갑자기 우르르 모여 섹스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 박진아
  • 입력 2015.03.04 09:23
  • 수정 2015.05.04 14:12
ⓒshutterstock

지난 9월, 캘리포니아는 해당 주 내에 있는 34개 교도소에 콘돔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가 버몬트 주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수감자에게 콘돔을 제공하는 주가 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교도소에서 수감자 간의 성관계는 합의 하에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도관들은 금지해도 성관계는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공공보건운동가들은 어짜피 발생한다면 성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현재 유럽연합과 캐나다에서도 교도소에 콘돔이 공급되고 있다.

교도소 내에 콘돔이 제공된다는 것은 성적 권리라는 개념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섹스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원하는 사람은 적어도 안전하게 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감옥에 있는 범죄자와 성인이 되기 몇 년 전일 뿐인 청소년이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조차 서글픈 일이지만, 콘돔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한 권리임을 설득하기 위해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펼쳐야 씨알이 먹힐 성 싶어서 써본다.

인터넷 상의 청소년 규제

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콘돔을 사려할 때, 청소년들이 판매거부를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신분증 보여주세요"). 직접 콘돔을 사기 낯 뜨거운 성인은 인터넷이라는 대체시장이 있지만, 청소년은 인터넷으로도 콘돔을 살 수 없다. 통신판매업에 대한 법적 기준상 메인페이지 입장도 하기 전에 성인인증창을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며, 대한민국 인터넷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소수 대형 포털들이 성인인증창을 달지 않으면 콘돔에 대한 일체의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쇼핑몰 광고 또한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네이버는 청소년을 보호하지 않는다).

포르노그래픽 이미지 등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전혀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콘돔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성인용 쇼핑몰이 되는 것이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19라는 글씨가 딱 박힌다. 생각해보면 어짜피 콘돔이라는 단어를 쳐도 쇼핑몰은 하나도 안 뜨는데 뭐하러 이중으로 걸러내나 싶기도 하다.

국내 포털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콘돔 사용법이나 콘돔 판매처 등 핵심적인 정보는 없고 뉘집 아들이 콘돔 브랜드를 런칭했네,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콘돔 이야기를 했네 하는 등의 기사가 나온다. 그런 기사는 괜찮지만, 콘돔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유해한가보다. 콘돔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며,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보다 그런 정보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가 보다.

혹자는 콘돔의 존재를 알리면 갑자기 청소년이 문란해져 섹스만 주구장창하는 색마집단이 될 것처럼 주장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미국에서 콘돔을 교내에 비치하기 시작한 90년대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콘돔 비치 전과 후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의 비율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관계를 기존에 하던 학생들이 피임을 정확히 하는 비율만 늘었다. 지극히 이상적인 결과였다. 콘돔교육이 만능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콘돔과 피임을 가르친다고 해서 갑자기 우르르 모여 섹스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성교육의 현황

그러나 현재의 성교육은 대개 청소년 때는 일단 안된다고 하고, 성인이 되면 알아서 하라고 한다. 삶을 살면서 그 어느 시기에도 성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못한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물론 '콘돔 사보기'나 '콘돔 바르게 착용하기' 등의 실습을 하는 학교도 일부 있다. 그러나 성교육을 주관하는 공기관이 없고, 획일화된 성교육에 대한 지침이 없고, 국가가 공인한 성교육 자격증이 없고, 성교육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한 만큼(교육학과에서 성교육을 연구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사실상 자기가 성교육 강사라고 이름 붙이면 거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몇몇 사단법인이 존재하긴 하나 그들도 엄밀히 따지면 자체적 자격증만 나눠줄 뿐, 각자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누구는 혼전순결주의를 가르치고, 누구는 동성애죄악설을 퍼트리고, 누구는 피임교육을 하고, 누구는 올챙이만 잔뜩 나오는 지리한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내 성교육은 당 학교의 장에 따라 섭외되는 경우가 많다. 또, 설사 더 근본적인 성교육을 지향하는 강사를 섭외한다 해도, 교장의 가치관에 따라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교육내용이 재단되고 걸러진다. 때문에 똑같은 사회의 청소년이라 해도 20대로 접어들기 전에 성에 관해 받는 교육이 상이하고 차등하며 으레 부족하다.

10대 이후에는 직장 내 성폭력 예방교육 등의 법정필수이수교육 외에는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무하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배운 성교육이 일생의 전부이다시피하다. 그런데 청소년기의 성교육조차 중구난방이다보니, 죽는 순간까지 함께할 성이라는 이슈에 대한 합의점이 없다. 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할 기회가 없는 현행과 OECD 콘돔사용률 꼴찌라는 통계가 과연 무관할까?

진짜 바른 성(性)의 방향성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은 "어짜피 하지말래도 하니까 할 거면 피임이라도 하게 해라"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권리이다. 청소년(사실 성인도 그리 다르지 않다만)이 섹스를 하다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막아야 할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섹스를 못하도록 압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주체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성적 권리를 인정해주고, 그 권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되어서도 언제나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 이 글은 성문화 개선 소셜벤처 '부끄럽지 않아요'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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