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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무작정 무모한 남미 여행기 들어보실래요?"

  • 강병진
  • 입력 2015.03.03 11:02
  • 수정 2015.03.03 11:03

‘아싸라비아 콜롭비아’ 체험기 펴낸 연극배우 이재선 씨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선장 잭 스패로는 특별한 나침판을 지니고 다닌다. 그의 나침판은 방향이 아니라 원하는 존재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가 나침판을 보며 “뱃머리를 돌려라”고 외치면 선원들은 의심 없이 노를 젖는다. 그만큼 선장을 믿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선장인 그가 지구 반대편 남미의 콜롬비아로 1년간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아내(안정희·36)와 아이들은 불안감 없이 가방을 쌌다.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아내를 유혹했다. 각자 1개씩, 여행가방 4개만 챙겨 집을 나섰다. 코펠과 버너, 몇벌의 옷과 라면 한 상자, 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챙겼다. 석달 동안 독학한 스페인어와 대학원 등록금이 콜롬비아로 가는 재산의 전부였다. 현지에서 머물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간 무모한 가족여행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콜롬비아의 산골마을 부에나비스타에서 한 가족이 살아온 지도 3년이 지났다.

“섬유유연제보다도 더 향기로운 부에나비스타의 햇살 냄새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이재선(39·사진)씨는 “연극은 인생이고, 인생은 여행이다”라고 외치는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다. 그의 가족은 즐겁고 행복하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연출자를 믿는다. 그래서 안데스 산맥의 낯선 무대가 이제는 고향보다 정겹다.

실제로 이씨는 4년 전까지 대구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그는 에든버러 축제에 초청받아 ‘신체극’을 공연하기도 했고, 농아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하기도 했다. 애초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그는 스포츠센터에서 수영과 골프도 가르쳤다. 피시방 운영, 레크리에이션 강사, 이벤트 진행까지 이런저런 일을 했다. 하지만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각설이 엿장수’였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전국을 누볐다. 그가 구성지게 노래를 하고, 신명나게 엿을 쪼개며 몸을 흔들면 좌판의 엿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뒤늦게 계명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길거리에서 익힌 각설이 타령으로 비좁은 편입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졸업 뒤 꿈에 그리던 대구시립예술단 연극단원이 됐다. 전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부에나비스타에 마음이 꽂혔다. 더 늦기 전에 그곳에 가서 살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가 끊긴 가족들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가족 캠핑을 하며 예행연습을 했다. 마침내 콜롬비아 보고타공항에 내려 부에나비스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이씨는 말이 통하지 않자 버스 안에서 자신의 장기인 신체극을 공연했다. 반응이 좋았다. 박수를 받았다. 부에나비스타광장에 내려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짐 보따리를 놓고 두리번거리는 아사아인에게 다가와 현지인들은 손가락으로 살을 찔러보며 신기해했다. 독학한 스페인어는 곧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선장’ 이씨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년 전 들렀을 때 학교도 있고 경찰도 있고 교회도 있었어요. 날씨가 춥지 않아 노숙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굳이 미리 숙소를 알아보지 않고 간 거죠. 어느 날 ‘뚝’ 하고 떨어져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천사’가 나타났다. 함께 버스에 탔던 한 여자 승객이 다가와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가자”고 했다. 교사였다. 그는 숙소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주고, 이씨를 근처 농장에 취직까지 시켜줬다.

“둘째인 아들(정호·11)은 운동을 좋아하는데 아토피가 심했어요. 남미 생활 한달 만에 거짓말같이 아토피가 사라졌어요. 첫째인 딸(소영·13)은 최근 지역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선행학습’도 ‘경쟁’도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선생님은 알 때까지 성의있게 설명을 해줬다. 운동과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방과후 수업도 모두 무료다. 복지는 잘사는 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진하고 여운이 긴 커피는 부에나비스타 사람들을 꼭 닮았다. 누가 달려가도 반겨줄 것 같은 따뜻한 이웃들을 소개하며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씨가 처음 취직한 농장은 과일나무와 커피나무를 함께 재배하는 전통 자연농법을 했다. 키 큰 과일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커피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준다. 과일나무 낙엽은 거름이 되고, 나무에 유익한 곤충류가 공생하며 병충해를 막아주니 농약도 필요 없다. 커피나무를 촘촘히 심을 수 없어 대량 생산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커피콩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는 일년에 세번 정도 한국에 들어온다. 현지 벌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엿을 팔기도 하고, 강연도 다니고, 올 초엔 대구에 직접 콜롬비아 커피전문점도 열었다. 개인 블로그(mc800.blog.me)에서 소개해온 현지 체험기를 묶어 최근엔 <아싸라비아 콜롬비아!>(효형출판)도 펴냈다.

날이 밝으면 아내는 카카오를 넣어 초코라테를 끓이고, 그는 동네 빵집에서 1000원짜리 빵을 사 온다. 어느 새 잠에서 깬 두 아이도 품에 달려들며 인사한다. 소박하지만 충만한 부에나비스타의 아침 풍경이 그립다는 이씨는 지난달 26일 다시 콜롬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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