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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역에서 심정지 환자 응급처치 주도한 여자 승객

  • 강병진
  • 입력 2015.03.03 06:50
  • 수정 2015.03.04 11:16
ⓒ한겨레

1월 28일 오전 7시 50분경.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던 행정자치부 공무원 정모(50)씨는 녹번역과 홍제역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

주변에 있던 승객은 열차 내 전화기로 기관사에게 연락을 했고, 일부는 119로 구조를 요청했다.

승객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관제실을 통해 홍제역으로 바로 전해졌다.

'환자 발생' 통보를 받은 홍제역 역무원 주규천·이평우 대리는 승강장으로 내달았다.

막 도착한 열차로 뛰어들어간 역무원들은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 정씨를 승강장으로 옮기고 상태를 살폈다.

승객의 코에서 호흡이 느껴지지 않자 주규천 대리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그러나 쓰러진 승객은 의식을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환자를 지켜보던 40∼50대로 보이는 여성이 "모든 지하철역에는 자동제세동기(AED)가 있다. 어서 자동제세동기를 가져 오라"고 외쳤다.

자동제세동기는 심정지환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해 심장박동을 회복시키는 기기로, 공공시설과 다중이용시설에는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주 대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돼 있는 건 알지만 그 순간 심폐소생술에 집중하느라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그 말을 듣고서 심폐소생술은 이 대리와 그 승객에게 맡기고 자동제세동기를 가지러 갔다"고 말했다.

두 역무원과 역장, 그리고 여자승객은 자동제세동기를 작동시키고 심폐소생술도 계속했다.

이 여자승객은 "가슴을 더 세게 압박해야한다"고 조언을 하는 등 신고를 받은 119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응급처치를 주도했다고 역무원들은 전했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승객인 국방부 소속 윤원일 사무관도 이 과정을 도왔다.

정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심혈관 시술과 입원치료를 받고 약 일주일 만에 건강하게 퇴원, 현재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쓰러진 후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기까지 약 8∼9분간 승객과 역무원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없었더라면 정씨는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장애가 남았을 수 있고,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대한심폐소생협회에 따르면 국내 심정지 환자는 연간 약 2만명인데, 이 중 약 8%만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심정지환자 생존율은 2.4% 수준으로, 많게는 40%에 이르는 의료선진국에 비해 극히 저조한 실정으로 알려졌다.

자동제세동기는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국민도 적지 않다.

역무원과 승객의 신속한 대처로 목숨을 구한 정씨와 가족은 홍제역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고 감사의 선물을 남겼지만 역장과 역무원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되돌려 보냈다.

응급처치를 도운 국방부 공무원과도 연락이 닿아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 동안 응급처치를 주도한 여자승객은 아직 누구인지 모른다.

119구급대 도착 후 환자 이송 등을 챙기느라 역무원들이 이 승객의 신원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서대문소방서 웹사이트에 은인을 찾는다는 글도 올렸지만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

정씨는 "아내와 딸이 꼭 '생명의 은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면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홍제역으로 연락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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