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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순대를 찾습니다

나의 순대는 2호선 아현역에서 추계 예술대학으로 가는 길, 굴다리 조금 지나 있는 아현 파출소 사거리에서 일주일에 단 한번, 일요일 8시경에만 잠시 만날 수 있었던 '동아참순대'다. 트럭 뒤에 설치한 커다란 가마솥에 그날 팔 분량만 딱 삶아 와서는 다 팔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쿨내'를 풍기며 사라지던 동아참순대 아저씨. 지금 어디 계신가요? 쫀득한 전분기가 좔좔 흘러 고소한 피와 당면에 마치 매니큐어를 바른 듯 윤기가 넘치던 그 순대는, 안에 들어있는 찹쌀이 오히려 퍽퍽하게 느껴질 만큼 찰 졌었는데. 진득한 치감과 굳은 피에서 나는 쇠 맛이 어우러져 극한의 고소함을 풍기던 그 순대와는 영원히 썸이라도 탈것만 같았는데, 이제 어디 가면 맛볼 수 있나요?

  • 박세회
  • 입력 2015.03.04 11:41
  • 수정 2015.05.04 14:12

중2병보다 무서운 '서른병'이 찾아왔다. 자작명 '간헐적 초지향성 섭식장애 증후군'이다. 이 병의 증상은 가끔 먹고 싶은 게 머릿속에 한번 떠오르면 다른 음식은 입에 넣기도 싫어지는 건 물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끝없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빈속으로 잠자리에 들면서 베갯잇에 결국 눈물을 떨구고야 말게 된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음식이 비싼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작년 말에는 부산 물꽁식당의 아귀간이, 그 전 여름에는 제주도 표선면에서 먹었던 냉동 흑돼지 막고기(냉동이라 맛있을 줄이야)가 주인공이어서 캐스팅에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다. 돈도 돈이지만, 먼 곳에 갈 시간이 없을 때면 이 병마의 악수에 초인적인 의지로 저항하다 어쩔 수 없이 술로 빈속을 달래며 술병치레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시간도 돈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그리움이 찾아왔다.

내가 순대를 먹는 목적은 두 가지다. 피 맛을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내장의 향을 즐기기 위해서.

'순대', 이건 정말 하찮은 음식이다. 내가 지금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그 순대는 정말 하찮은 음식이다. 명태 내장을 걷어내고 소를 잔뜩 집어넣은 명태순대도 아니고, 오징어에 찹쌀을 넣은 오징어 순대도 아니고, 야채 소가 잔뜩 들은 병천 순대도 아니고, 대창에 피가 잔뜩 들어 '순대 계의 티라미슈'라 불리는 피순대도 아니다. 돼지 소창에 당근과, 찹쌀, 당면이 잔뜩 들어간 분식순대. 1980년대부터 '비닐 순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압구정동 한 복판에서도 1인분에 5천원이 넘지 않는 바로 그 순대다.

순대의 고장 제주에서 입에서 피비린내가 날 때까지 휴양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물론 그냥 순대는 아니다 나의 순대는 2호선 아현역에서 추계 예술대학으로 가는 길, 굴다리 조금 지나 있는 아현 파출소 사거리에서 일주일에 단 한번, 일요일 8시경에만 잠시 만날 수 있었던 '동아참순대'다. 트럭 뒤에 설치한 커다란 가마솥에 그날 팔 분량만 딱 삶아 와서는 다 팔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쿨내'를 풍기며 사라지던 동아참순대 아저씨. 지금 어디 계신가요? 쫀득한 전분기가 좔좔 흘러 고소한 피와 당면에 마치 매니큐어를 바른 듯 윤기가 넘치던 그 순대는, 안에 들어있는 찹쌀이 오히려 퍽퍽하게 느껴질 만큼 찰 졌었는데. 진득한 치감과 굳은 피에서 나는 쇠 맛이 어우러져 극한의 고소함을 풍기던 그 순대와는 영원히 썸이라도 탈것만 같았는데, 이제 어디 가면 맛볼 수 있나요?

지난 7년 동안 적어도 3개월에 한번은 꼭 찾아가곤 했건만, 작년엔 결혼이다 뭐다 해서 조금 소홀했다. 한 반년 못 가보고 작년 12월에 갔을 때 이미 '동아참순대'는 없었다. 혹시 이번주만 다른 곳에 가셨나 싶어 일요일 저녁마다 8시면 아현동에 차를 몰고 가보지만, 아저씨는 없다. 주변에 있는 옷 가게 아주머님께 명함을 주며 '혹시라도 다른 요일에 오면 꼭 전화를 주시라'고 당부의 말씀까지 드렸는데, 연락도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 말고도 아저씨를 찾는 사람의 흔적이 여럿 있다. 경희대학교 근처, 목동, 발산동, 개포동 등지에서 무심한 척, 그러나 열렬한 팬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다. 검색을 계속 해보니 '동아참순대'라는 회사의 전화번호가 나온다. 이름만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끈이라도 잡고 있고 싶어 계속 걸어본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요새 나는 점심시간이면 아무 생각 없이 그 번호를 누르고 울리는 전화 벨 소리를 듣는다. '연결중'. 심장이 울컥울컥한다. 난 대체 동아참순대도 못 먹고 뭣 하러 사는가! 이 가련한 병자가 여러분의 친절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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