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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묵은 장발장법 없앤 만학의 1년차 '로변'

  • 박세회
  • 입력 2015.03.02 02:50
  • 수정 2015.03.02 02:51
ⓒ연합뉴스

'로변'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준말이다. 사법연수원 출신에 비해 실력이 뒤진다는 편견 속에 1년차 로변이 일을 냈다. 이른바 '장발장법'을 없애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작년부터 수원지법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는 정혜진(43·1회 변호사시험)씨는 지난 26일 위헌으로 결정된 상습절도 가중처벌 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주인공이다.

그는 15년 가까이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로스쿨에 진학, 서울고법 재판연구원(로클럭)을 거쳐 국선변호사가 된 특이 경력자다.

정 변호사는 작년 여름 휴정기 때 판례를 공부하다 그해 4월 헌법재판소가 마약 밀수입 가중처벌 규정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11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고민에 빠졌다.

헌법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로 제시한 법리에 따르자면 자신이 변호하는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상습절도 가중처벌 규정, 특가법 5조의4 1항도 위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도 전과가 많은 경우 라면 하나만 훔쳐도 중형을 선고할 수 있어 '장발장법'이라고 비판받던 조항이다.

특가법 5조의4 1항은 상습절도범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형법 329조가 같은 범죄에 대해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과 균형이 맞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2일 "법리를 보면 당연 위헌인데 워낙 비슷한 사건이 많아서 법률가들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것 같다"며 "10년차쯤 됐으면 나도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라 회상했다.

정 변호사는 마침 노점상에서 600원짜리 뻥튀기 과자 3봉지를 훔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모(25)씨를 변호하고 있었다. '잡범'이었지만, 수차례 전과로 특가법이 적용된 피고인이었다.

정 변호사는 수원지법 형사9단독 지귀연 판사에 위헌제청 신청서를 냈고, 지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상습절도 미수범에 대한 조항에 대해서도 별도 위헌제청이 이뤄졌다.

정 변호사 등의 노력으로 문제의 법 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1980년 11월 신군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한지 35년 만의 일이다.

정 변호사는 "선배 법조인들이 뿌린 씨앗 덕분에 내 피고인이 열매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나도 미래에 누군가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씨를 뿌리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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