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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23일 10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25일 14시 12분 KST

나도 삼시세끼가 두렵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음식을 곧바로 먹이려 했으나 아들은 내 앞에서 입을 굳게 닫은 채 앙칼진 소리(싫다는 의미)만 낼 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나서 아이가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해준 덕분에 반 공기를 겨우 먹였다. 아드님은 이후 이마저도 마음에 안 드셨는지 입 안에 밥을 한참 물고 있거나 다 씹은 밥을 식탁 위에 퉤 뱉는 행동을 반복하셨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ㅎ고 남은 밥과 반찬을 모조리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 녀석의 밥에 이리도 집착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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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육아일기 #4] 나도 삼시세끼가 두렵습니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셨지만 한껏 끓어올랐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승환 옹의 공연을 설날 특집 TV로 보며 히죽히죽 웃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개운치 않다. 요즘 나의 마음은 용광로가 따로 없다. 고3 시절 유독 좋아했던 허난설헌의 <규원가> "긴 한숨 디는 눈물 속절업시 헴만만타" 구절의 절절한 심경을 애 낳고 나서야 느끼게 될 줄이야.

임신 기간에 읽었던 육아 관련 서적은 모두 한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아이는 엄마의 표정만 봐도 엄마의 뜻을 알아차린다"고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진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애를 낳은 뒤 2주 동안 묵었던 산후조리원 원장 또한 나에게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아이라는 존재는 매우 착하디 착해서 엄마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면 뭐든지 다 이해해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달랐다.

매일 매일 나의 일상과 나의 기분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들 녀석의 밥이다. 아들의 밥 따위에 집착하는 내가 부끄럽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나. 아들 녀석이 밥을 잘 먹는 날에는 제법 큰 실수를 해도 크게 눈 감아 주는 '쿨 한 엄마'가 되곤 한다. 반면, 녀석이 내 밥을 외면한 날에는 어김없이 날 센 소리와 함께 '헐크 엄마'로 변한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 날에는 그 불똥은 남편에게까지 튄다. 평상시와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도 "왜 이렇게 늦냐" "이렇게 늦으면 나 혼자 어떡하라는 거냐" 등등 잔소리를 가득 담아 바가지를 박박 긁어 댄다. (녀석이 밥을 잘 안 먹은 날에는 알아서 바짝 엎으려 내 눈치를 살살 보는 남편, 불쌍하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아침 8시, 잠에서 깬 아들 녀석의 입에 친정엄마가 싸준 김밥을 넣어주려 했지만 아들은 고개를 획 돌렸다. 먹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사였다. '그래 한발 물러서자' 다짐하며 한 시간 뒤인 아침 9시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단무지만 쏙 빼 입에 넣어주려 했는데도 고개를 획 돌렸다. 이쯤 되면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다. "먹어" "씹어" 등 여러 차례의 고성이 오갔지만 결국 아들이 이겼다. 녀석은 아침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실랑이는 저녁 식사 때에도 이어졌다. 평소 그나마 잘 먹었던 스파게티 소스에 밥과 치즈를 넣어 리조또를, 그리고 달달하면서도 짭조름한 연근 조림을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음식을 곧바로 먹이려 했으나 아들은 내 앞에서 입을 굳게 닫은 채 앙칼진 소리(싫다는 의미)만 낼 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나서 아이가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해준 덕분에 반 공기를 겨우 먹였다. 아드님은 이후 이마저도 마음에 안 드셨는지 입 안에 밥을 한참 물고 있거나 다 씹은 밥을 식탁 위에 퉤 뱉는 행동을 반복하셨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남은 밥과 반찬을 모조리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 녀석의 밥에 이리도 집착해야 하나."

옛날에는 잘 먹었냐고? 그것도 아니다. 아들 녀석은 이유식을 처음 시작했을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끼가 보였다. 무척이나 슬프게도 그때부터 안 먹을 조짐이 보였다는 거다. 값비싼 무항생제 한우와 무농약 채소를 송송 썰어 따끈따끈하게 이유식을 만들어 줘도 웃는 얼굴로 씨익 뱉거나 아예 대놓고 퉤 뱉거나 둘 중 하나였다. 먹는 양 보다 버리는 양이 훨씬 많았다. "내 다시는 너에게 이유식을 만들어 주지 않으리"란 다짐을 하루에 수십 번 했을 정도였다.

나는 왜 이렇게 아들의 밥 따위에 집착하는 엄마가 되었을까. 써놓고 보니 더욱 슬프다. 하지만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고는 헤아릴 수 없다. 속이 터져버릴 거 같은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뿐더러 그 어떤 단어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다.

지난 해 힘든 육아 때문에 시작한 심리 상담 도중 선생님은 '아들이 밥을 너무 안 먹어서 힘들다'고 토로한 나에게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화를 내지 말고 차분하게 "하윤아 지금 밥 먹기 싫으니? 그렇지만 엄마는 하윤이가 밥을 먹었으면 좋겠어. 지금 밥을 먹어야 더 열심히 놀 수 있고 하윤이 몸도 튼튼해지는 거니까. 우리 먹기 싫어도 조금만 먹어볼까?" 이런 식으로 말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지만 성격 급한 다혈질 엄마인 나는 매일 삼시세끼마다 이렇게 상냥하고 나긋나긋 밥을 먹이다가는 속이 터져 버릴 거다.

아들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즉 아들의 말이 터지는 순간이 오면 가장 먼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너 내가 준 이유식을 왜 거부했었니. 내가 만들어 준 밥을 왜 안 먹었니"라고. 아들의 입에서 "맛이 없어서"란 말만은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아들 녀석이 "맛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내 지난 시간들 동안 녀석에게 쏟아냈던 고성과 궁디팡팡에 대해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리라.

PRESENTED BY 오비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