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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란 새로운 바벨탑

우리가 한글과 영어처럼 친숙한 문자와 생전 처음 보는 언어를 조화롭게 표현하기 위해 노토 폰트를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또한 낯선 한글을 편하고, 제대로 쓰기 위해 노토 폰트를 선택할 수 있다. 즉 노트 폰트가 서체 선택의 1순위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모든 이에게 통용된다는 뜻이다. 피땀 흘려 만든 각종 한글 서체들이 어느새 '노토 코리안 외 기타'로 분류된다고 상상해 보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흔할까. 즉각적으로 인식되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시각 언어의 힘을 고려해볼 때 지금 구글이 쿨하게 뿌린 아이콘과 서체는 21세기 새로운 바벨탑을 구축하는 데 손색이 없다.

  • 전종현
  • 입력 2015.03.03 10:16
  • 수정 2015.05.03 14:12
ⓒshutterstock

1998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새로운 알고리즘을 갖춘 혁신적인 검색 엔진을 개발해 차고를 사무실 삼아 회사를 시작했다. 지금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으로 우리에게 공기처럼 친숙한 구글(Google) 이야기다.

구글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영리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기업 모토로 유명하다. 실제 세계에서 날고 기는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된 예술 작품을 온라인에서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구글 아트 프로젝트', 전세계 도서관에 산재한 1000만여 권의 도서들을 디지털 도서관에 모시는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등을 통해 높아진 인류의 보편적인 행복도는 굉장한 수준이다. 전 세계 검색 시장의 70%를 장악한 '빅 브라더'급 기업인 구글의 브랜드 가치와 선호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배경에는 이러한 공익 활동이 만든 긍정적인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4년 구글은 여전히 착했다. 작년 7월 발표한 노토 폰트(Noto Fonts)는 어도비(Adobe)와 세계 각국의 서체회사가 3년간 협업해 전 세계 주요 언어 91개를 커버하는 글로벌 서체 프로젝트다. 온라인에서 오픈소스로 공개한 덕분에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한글과 영어는 물론, 동북아 한자 문화권과 힌두어, 아랍어, 태국어, 아르메니아어 등 평소 접근하기 힘들던 언어까지 서로 균질한 수준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이 개발 비용 전부를 부담한 노토 폰트는 디자이너 입장에서 '구글님 만세 만세 만만세' 수준이다. 지난 10월에는 구글의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인 머테리얼 디자인(material design)에 알맞는 아이콘 750개를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저작권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콘은 직장인의 필수 아이템인 '파워 포인트'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콘 팩 형태로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금전적인 걱정 없이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세상.

아,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그런데 이런 구글의 노고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우선 '은혜로운' 아이콘부터 심판대에 올려보자. 아이콘은 단지 복잡한 형태을 예쁘게 다듬는 게 아니라 지금껏 한 사회가 쌓아온 공통된 경험과 관점을 시각적으로 압축한 산물이다. 물론 비슷한 종류의 아이콘 팩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 행위 주체가 구글처럼 수십억 명에게 동일한 시각 언어를 빠르고 명징하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적은 없었다. 비단 디자이너가 작업에 활용하는 것과 별개로 구글 아이콘은 대중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특정 기업의 관점이 수많은 사람의 뇌리에 꽈리를 트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오랜 기간동안 사회 구성원들이 자연스레 중지를 모은 사회적, 문화적 상징 체계가 제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만약 인류가 동일한 기준에 적응해 다른 접근법들을 어색하게 느낀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게다가 그 기준이 한 영리 기업에서 비롯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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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아이콘 팩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처럼 인구가 많고 국토는 더욱 넓은터라 도리어 인구 밀도가 떨어지는 개발도상국은 기존의 낙후된 인프라 미비를 최신 기술이 대신 감당하곤 한다. 예컨대 유선 전화보다 모바일 사용 비율이 훨씬 높고, 스마트폰이 인터넷 사용의 첫 걸음이 되는 식이다. 만약 구글에서 제공하는 각종 디바이스와 서비스가 특유의 가격 경쟁력과 손쉬운 사용 방법 때문에 수많은 지역민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디지털 생산 도구이자 일종의 기준값으로 위치를 공고히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특정 회사가 제공한 수많은 시각 기호를 자연스레 흡수한 사람들의 인식에 마비가 오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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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노토 폰트

디자이너의 서체 친구, 노토 폰트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우리가 한글과 영어처럼 친숙한 문자와 생전 처음 보는 언어를 조화롭게 표현하기 위해 노토 폰트를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또한 낯선 한글을 편하고, 제대로 쓰기 위해 노토 폰트를 선택할 수 있다. 즉 노트 폰트가 서체 선택의 1순위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모든 이에게 통용된다는 뜻이다. 피땀 흘려 만든 각종 한글 서체들이 어느새 '노토 코리안 외 기타'로 분류된다고 상상해 보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흔할까. 즉각적으로 인식되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시각 언어의 힘을 고려해볼 때 지금 구글이 쿨하게 뿌린 아이콘과 서체는 21세기 새로운 바벨탑을 구축하는 데 손색이 없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대세가 모든 걸 집어삼킬 때에도 소수의 반대 의견은 언제나 굳건히 살아남았다. 다양성은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인간의 근원적인 특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갖가지 개성이 피어나는 토양이 몰개성으로 뒤덮힐 수 있다는 위험을 과연 인지하고 있는가. 디자이너는 획일화에 저항하며 다양성을 보존하고 새로움을 생산하는 관점에서 바벨탑을 부수는 데 꽤나 적합한 직종이다. 그 거대한 구조물을 짓는 각종 도구의 생로병사가 바로 이들에게 달려있고 무엇보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부순다는 진리는 아직까지 무척 유효해보이니 말이다. 구글의 새로운 바벨탑 공사 현장을 꼼꼼히 관찰하며 여차하면 행동에 나서는 마음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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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4년 12월호 'Insight'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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