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2월 13일 09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15일 14시 12분 KST

김영란법 제정, 더 미룰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 법에 대한 가장 이상한 반대논리는 "국민을(또는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말이다. 공직자를 규율하는 법률에 대해 "공직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형법은 전체 국민이 적용대상이지만 아무도 "국민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공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그에 합당한 직업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한겨레

2015년 1월의 마지막 날 대기업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정옥근 전 해군 참모총장이 구속되었다. 정 전 총장은 고속함 및 차기 호위함 수주 등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댓가로 STX조선해양, STX엔진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 금품수수는 정 전 총장의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Y사가 해군이 주최한 행사의 하나였던 요트대회를 진행하면서 STX 측으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7억여원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부패양상의 변화와 입법필요성

이 사례처럼 우리나라의 부패양상은 점점 지능화하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경우는 그래도 댓가성이 드러나서 구속이라도 되었지만 몇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폰서 검사'는 금품과 향응을 수수하였음에도 댓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작년 무죄가 확정되었다. 어떤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금품과 향응을 수수하고 있는데도 '당장의' 댓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떡값, 선물, 향응, 스폰서 접대 등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다. 국민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러한 금품수수가 아무런 댓가 없이 순수하고 자발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사회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암묵적이고 간접적이고 강고한 기득권의 카르텔 또는 네트워크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시간차를 두고 아주 간접적으로 서로서로를 도와주기 때문에 적발·처벌·규제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 네트워크는 공정한 경쟁, 사회에 대한 신뢰, 정의의 실현 등을 가로막고 불신과 냉소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하 김영란법)' 제정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부정청탁과, 댓가성이 없는 금품수수도 처벌할 수 있는 김영란법의 제정은 부패 네트워크를 깨뜨리고 우리 사회의 기초를 새로 다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의 범위 문제

김영란법안은 2년 반이라는 오랜 논의를 거쳐 지난 1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는 모두 2월 중 법제정을 공언하고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법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공직자의 범위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을 포함시킨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립학교 교직원 포함 문제를 먼저 살펴보면, 금품수수 등에 있어 사립학교 교직원과 국립학교 교직원을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당초 정부안에서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그밖의 다른 법령에 따라 설치된 각급 국립·공립학교'만 공공기관으로 한 것이 문제였다. 현재 정무위를 통과한 법안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그밖의 다른 법령에 따라 설치된 각급 학교'라고 되어 있어 사립학교를 별도로 취급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워졌다. 나아가 교육이라는 공적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 재정의 상당부분을 정부재정에 의존하는 점, 교육현장의 부패 대부분이 사립학교에서 발생한다는 점 등을 볼 때 사립학교를 이 법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반면 이 법안에서 '공직자'에 '언론사의 대표자 및 그 종사자'를 포함시킨 것을 보고 어색함을 느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살펴보자. 혹시 우리나라의 언론이 언론사주나 특정한 이익집단을 대변하면서 본연의 공적인 역할을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는 않은가? 언론은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며 공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적인 이해집단처럼 느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은 "김영란법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언론의 공공성을 더 강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 "언론자유의 심각한 침해요소는 지금 오히려 정치권력, 자본권력에 의한 간섭"이라고 밝혔다(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2015.1.20.). 결국 우리는 김영란법 제정을 계기로 언론 본연의 공적인 역할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 법에 대한 가장 이상한 반대논리는 "국민을(또는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말이다. 공직자를 규율하는 법률에 대해 "공직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형법은 전체 국민이 적용대상이지만 아무도 "국민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공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그에 합당한 직업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이 법안이 더이상의 지체 없이 즉각 제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몰론 즉각 제정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법 공포 후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따라서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 향후 수정·보완이 필요할 경우, 유예기간 중 보완하거나 시행과정에서도 수정·보완할 수 있다. 김영란법 제정, 더이상 미룰 수 없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