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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6일 16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06일 16시 38분 KST

[인터뷰] IS를 탈출한 시리아 소년병의 증언 "IS에 가입하지 마세요"

지난 1월 27일, 소피아 존스 특파원을 터키 샨리우르파에서 만난 전 IS 소년병이 자기 목의 상처를 보여줬다. 소년은 전투에서 총알이 자신의 목 뒤를 스쳤다고 말했다.

*허핑턴 월드포스트는 칼레드의 증언이 사실인지 전부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은 그의 가족과 친구, 또 알 티브니와 다른 IS 캠프에 대해 시리아에서 나오는 정보와 비교해 상당 부분 맞다.

칼레드가 처음 총을 잡았을 때, 그의 나이는 만 14살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과격단체는 처음 총을 잡은 지 15일 만에 그를 전투에 내보냈다.

칼레드는 그때 든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또 총소리가 귀에 얼마나 크게 울렸는지 기억하고 있다. 상대편의 총알이 목 뒤를 스쳐 지나간 얼마 후, 병원에서 두려움에 떨며 깨어났던 것 역시 기억하고 있다.

조용한 성격의 십 대 소년 칼레드는 시리아 동부 데이르 알 주르가 고향이다. 몇 달 전 IS에서 탈출한 칼레드는 이제 자기가 몸담았던 이 폭력 지하드 단체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IS에 가입하지 마세요.”

칼레드는 IS가 데리고 있던, 혹은 데리고 있는 수많은 시리아 소년병 중 한 명일 뿐이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중도파, 쿠르드 반군, 과격 단체와 준 정부군까지. 시리아 분쟁에 관련된 세력 거의 전부가 나이 어린 소년병을 활용한 것으로 비난받아 왔다. 그러나 IS는 이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

지난해 1월, 칼레드는 IS에 가입했다. 그러나 칼레드는 무엇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1년 봄, 시리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터졌을 때 당시 11살이던 칼레드는 자기도 거리에 뛰어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형들과 사촌형들이 길에서 자유를 외치는 것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의 부모는 아이에겐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칼레드를 막았다.

부모의 판단은 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 정부의 단호한 진압이 시작됐다. 시위는 곧 전쟁으로 변했다.

그해 겨울, 칼레드가 다니던 학교가 폐쇄됐다. 정부의 포탄 공세가 이어졌고, 반정부 세력과의 잦은 충돌로 어린이들이 밖에서 놀 수 없게 됐다. 칼레드는 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집안일을 도우며 바깥세상에 나가기를 꿈꿨다. 그의 집에도 전쟁의 여파가 드리워져 있었다.

죽음과 파괴는 칼레드 주변에도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이 죽었고, 나중에는 칼레드의 가족들이 죽었다. 데이르 알 주르 공습으로 고모와 사촌이 죽고 다른 친척도 다쳤다. 칼레드의 형과 사촌들은 자기들도 무장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고, 곧 반군 단체인 '자유시리아군'에 가담했다.

그 몇 달 후, 칼레드는 새로운 반란 세력에 대해 알게 됐다. 나중에 이슬람국가(I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ISIS였다.

"ISIS는 아주 친절하고, 혁명을 지지하는 단체라고 들었어요." 눈 앞의 탁자를 응시한 채, 칼레드는 짙고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IS가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터키의 샨리우르파의 호텔 로비에 앉아, 칼레드는 자기의 선택이 얼마나 잘 못 된 것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했다.

"IS에 가입하지 마세요." 칼레드는 명확하게 말했다. "그들의 방향은 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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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소속 칼리 아샤위가 2013년 8월 11일, 인스타그램에 데이르 알 주르를 찍어 올렸다.

칼레드가 집을 떠난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부모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칼레드는 고향 데이르 알 주르를 떠났다. 칼레드는 그 날이 목요일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죠"라며 그는 편치 않은 기색으로 웃었다.

칼레드는 사촌과 함께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 마야딘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칼레드에 의하면, 당시 IS는 마야딘에 있는 어느 축구경기장을 본부로 이용하고 있었다. 사촌은 본부 문 앞에 다다르자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꾸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칼레드는 주저 없이 반군 본부에 걸어 들어가 IS 군인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칼레드는 이제 전쟁 전처럼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축구하며 놀던 아이가 아니었다. 지난한 지루함을 견뎌야 했고, 자기 마을을 매일 폭격하는 군에 어떻게 맞서볼까 오랜 시간 고민한 후였던 것이다.

"칼레드는 매우 예의 바른 아이였죠. 부끄러움도 타고요." 학교 선생님인 칼레드의 사촌, 오사마는 허핑턴 월드포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칼레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당시에 칼레드로서는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죠. IS가 칼레드의 마을에 왔을 때는 자기들이 매우 선한 단체인 것처럼 행동했거든요."

IS 본부에선 칼레드의 이름과 출신지, 그리고 나이를 물었다. 14살이라는 말에도 아무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이제 막 콧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칼레드가 말했다. "키가 크다고 절 환영했죠."

반군 중 한 명이 그에게 말했다. "다음주 토요일에 다시 와.”

칼레드는 그 말대로 그 다음주 토요일, IS본부를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 바로 IS에 가입했다. 가입한 다음 날, 칼레드는 집에서 가져온 옷 몇 벌만 챙겨서 다른 신병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약 50km 거리에 있는 알 티브니 훈련소로 이동했다. 알 티브니는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훈련소는 IS의 요새이자, 경직된 이슬람 법(샤리아)과 십자가 사형, 그리고 총탄을 소지한 전투군이 도시를 순찰하며 다니기로 악명 높은 라카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 달 동안 훈련과 전투를 하며 받을 급여는 7,000 시리아 파운드(약 37달러)로 정해졌다. 유부남 군인들의 급여는 그 두 배였다.

칼레드는 자기가 약 30명의 소년병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나머지는 다 성인이었다.

유니세프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아동 보호 문제의 자문을 맡고 있는 로랑 샤푸이는 IS가 잔인한 폭력으로 어린이들을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IS는 공개적으로 어린이들을 모병하고 이들을 세뇌시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단체보다도 어린이를 선전용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이들이 전투에서 하는 일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포장하고 순교자 역할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또 어린이들을 매우 극심한 폭력 상황에 노출시켜 전쟁에 무감해지도록 만드는 전략을 씁니다.”

2주가 좀 넘는 기간 동안 칼레드는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칼라시니코프 소총, PKC 기관총, 권총을 포함한 다양한 무기를 이용하는 것을 배웠고 인내하는 법, 그리고 운동도 배웠다. 또 올바른 무슬림이 되기 위한 샤리아 법 수업도 들었다. 칼레드는 IS에서 들은 종교 수업의 극단성에 놀랐다. 그가 이전까지 알던 이슬람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포함해서 그 누구라도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무언가를 훔치다가 걸리면 회초리로 20대를 맞았다. 고무호스로 얻어맞는 사람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비행’을 저지른 것이 두 번 이상 걸리면 고문을 받았다.

"고문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라고 칼레드는 조용히 말했다. "매일 사람들을 회초리로 때렸어요. 어린 아이들도요. 누구도 떠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요."

칼레드는 훈련이 너무 무서웠다고 돌이켰다. 외롭고 두려웠다. 상사 중 좋았던 사람이 있었냐고 묻자 딱 한 사람이 기억난다고 했다. 프랑스인 아부 무삽 알 프란시였다.

알 프란시는 아랍어를 약간 할 줄 알고 농담을 잘 하는 금발의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튀니지인 통역사를 통해 신병들에게 운동을 가르쳤다고 한다. 허핑턴 월드포스트는 IS를 옹호하는 트위터 계정 중에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부 무삽 알 프란시’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이 트위터 사용자는 시리아에 대한 뉴스에서 샤를리 엡도 테러, 퍼거슨에서 일어난 미주리 시위까지 언급했다. 칼레드의 운동 선생으로 추정되지만 정말 동일인물인지 최종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알 티브니에 대한 기억 중 알 프란시에 대한 기억이 칼레드가 가진 그나마 긍정적인 기억이다. 칼레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보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어요. 도망을 칠까도 생각했죠. 그러나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가족에게 연락을 못 하게 하니 부모님이 제가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죠. 우리 가족은 제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칼레드는 신병들이 보통 3개월 정도의 훈련 기간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칼레드가 가담한 당시에는 싸울 사람이 모자란 상황이어서 15일 만에 전투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그는 첫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칼레드의 상사들은 그들이 싸울 대상이 '도둑과 갱'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부상으로 누워 있을 때 칼레드가 우연히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그가 싸우는 상대는 자유시리아군이었다. 칼레드는 자유시리아군에 가담했던 사촌들이 IS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소년병들은 가족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 금지됐고, 한 번 가입하면 기지를 나갈 수 없었다. 부모가 와서 직접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IS의 다른 지인을 통해 칼레드의 위치를 알게 된 어머니가 훈련소에 찾아와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군에서는 면담 요청을 거절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 후 어머니가 성인인 칼레드의 형을 동반하고 다시 찾아오자 그들은 훈련소 안의 IS 고위 간부의 집에서 칼레드와 그들을 만나게 해줬다.

칼레드는 IS 가입 후 어머니를 처음으로 다시 만난 그 순간을 못 잊는다고 말했다.

칼레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그 순간을 회상했다. "우리 모두 울면서 껴안았죠.

칼레드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한 후 상사에게 며칠의 휴가를 요청하기로 했다. 물론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데이르 알 주르의 인권운동가들은 IS가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청소년은 물론 어린 아이들까지 학교에서 빼 내어 소위 말하는 방위 캠프에서 훈련시킵니다." ‘민주주의 방위를 위한 재단’의 연구자 토니 바드란의 설명이다.

아부다비에 위치한 델마 파운데이션에서 이 같은 IS 훈련캠프를 조사해 온 애널리스트, 하산 하산은 지난 몇 달 동안 알 티브니가 현지 및 외부의 지하드 세력이 장악한 IS 요새로 이용돼 왔다고 말했다.

하산을 포함한 다른 시리아 정보원들에 의하면, 시리아 정부와 미국 지휘 하의 연합군은 현재 알 티브니를 겨냥하고 있다. 사상자에 대한 보고도 있는데, 확인된 어린이 사망자가 1명 있다. 지금은 IS 단원들이 알 티브니 훈련소와 주둔지에서 많이 빠져 나온 상태로, 공격을 피해 흩어져있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IS 분쟁과 관련해 미국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데이르 알 주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던 IS 목표 인물들의 거취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민간인 희생을 최저로 줄이고자 예방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미국 지휘하의 연합군이 어린이 훈련소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그곳을 제외하고 공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력은 없을 거라는 것이 전문가의 예측이다. '전쟁을 연구하는 단체(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에서 시리아 전쟁을 연구하는 제니퍼 카파렐라가 말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사실 칼레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약 3달 동안 IS 손아귀에 있다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휴가라는 핑계를 들어 가까스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데이르 알 주르에 돌아온 후 그는 강경 반군인 자밧 알 누스라에 의해 약 12일 동안 억류되었다고 한다. IS와 혈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칼레드는 적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큰 문제없이 어머니 도움으로 풀려났다. 자유시리아군과 연대해 칼레드의 고향을 장악한 알 누스라는 이후 칼레드가 IS로부터 피난할 수 있도록 도왔다.

몇 달 후 IS가 다른 반군 세력을 지역에서 밀어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그들이 아들을 찾아올 것이 두려워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가족이 매우 걱정됐죠. 만약 우리집에 들이닥친다면 할 수 없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칼레드는 싸울지언정 민간인을 살해하는 단체에 다시 가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칼레드는 가짜 신분증을 만든 후 다른 가족을 따라 그 집 아들 행세를 하며 IS의 검문을 통과했다. 어머니는 다른 가족들과 데이르 알 주르에 남았다. 칼레드가 떠난 여정이 너무 어렵고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밀수업자의 도움으로 터키에 넘어온 후에야 그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온 일행과 헤어진 후, 아무도 모르는 남의 나라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이 15세 소년에게 엄습해왔다.

소년병에서 이제 난민이 된 칼레드는 터키에서 학교를 다닐 수도,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낯선 사람들과 호텔에 묵으며 사우디아라비아로 피난해 일하는 형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칼레드는 형들이 사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의 사촌이 그랬듯, 그는 집을 떠났던 지난해 1월의 어느 목요일로 돌아가 IS 모병 사무실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칼레드는 이 과격단체에 대한 진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IS의 진실을 알았다면, 칼레드는 절대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취재: 월드포스트 중동 특파원: 소피아 존스/터키 샨리우르파: 자헤르 사이드/워싱턴: 악바르 샤히드 아흐메드/샌프란시스코: 엘린 고르츠

*이 기사는 Huffingtonpost US의 Escaped Syrian Child Soldier: 'Don't Join ISIS'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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