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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5일 05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7일 14시 12분 KST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달리 생각하면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은 참으로 적절하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을 가장 잘 반영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일베로부터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라고 공격 받을 때, 남성연대로부터 타도 대상으로 지목 받을 때, 여성가족부 해체를 주장하는 시위에서나 등장하는 단어다. 긍정적 의미에서 입길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구도 손대기를 불편해하는 오염된 이름이다. 이렇다 보니 선뜻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방어막을 친다.

3eyedmonsta/Flickr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i hate feminist. So I like the isis.)"

터키에서 실종된 18세 김군이 트위터에 올렸다는 글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페미니스트'가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 소동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의외의 발견을 했다. 포털에 연동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자신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1」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런 정의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키운다며, 국립국어원에 내용 수정을 요청했다. "페미니즘(feminism)은 계급, 인종, 종족, 능력, 성적 지향, 지리적 위치, 국적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젠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이며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은 참으로 적절하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을 가장 잘 반영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일베로부터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라고 공격 받을 때, 남성연대로부터 타도 대상으로 지목 받을 때, 여성가족부 해체를 주장하는 시위에서나 등장하는 단어다. 긍정적 의미에서 입길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구도 손대기를 불편해하는 오염된 이름이다.

페미니스트가 남성을 증오하는 극단적 여권 숭배자로 오인되는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것은 일종의 '커밍아웃(coming out)'이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민한 젠더감수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는 조직 내에서 까다롭고 불편한 존재로 인식된다. 양성평등 이슈를 꺼내는 순간, 남성들은 자신이 공격 받는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문제 제기조차 '요구사항이 많고 골치 아픈 여자가 떠드는 말'로 취급되기 일쑤다. 페미니스트는 누군가에겐 가해자의 이름, 또 다른 누군가에겐 피해자의 이름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선뜻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방어막을 친다. 어느 여성학자의 책 제목처럼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평등주의자, 인권옹호론자, 휴머니스트 같은 말로 자신을 에둘러 표현한다.

이런 페미니스트 콤플렉스를 어떻게 벗어던질 수 있을까.

영화배우 엠마왓슨의 'HeForShe' 연설에서 영감을 얻어 보자.

엠마왓슨은 지난해 UN 연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하면 할수록 여성의 권리 확보를 위해 싸울수록, 남성혐오와 같은 의미로 오해받곤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녀가 친선대사를 맡은 UN여성기구의 양성평등 캠페인 'HeForShe'는 이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다. 남성들도 '남자다운 성공'이라는 성 고정관념의 피해자라는 것을 깨닫고 양성평등 실천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을 촉구한다. 남-녀로 팀을 나눠 '피해자' 타이틀매치를 거듭해온 우리에게 이것은 남녀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도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며, 누구나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부모, 선생님, 멘토들로부터 어떠한 성차별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며, 이들이 바로 양성평등 대사이자 오늘날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의도치 않은 페미니스트들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 단어(페미니스트)를 싫어하더라도, 단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숨은 생각과 포부죠. ... 만약 당신이 '평등'을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무의식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늘 불편했던 그 질문에 조금 편하게 답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가.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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