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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28일 07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9일 07시 09분 KST

당신이 알렉시스 치프라스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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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그리스 총선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극진좌파연합(시리자)의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에게 온 유럽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긴축 정책과 경제적 위기로 황폐해진 그리스에 새로운 변화를 약속했다.

지난 7년간 시리자의 대표를 맡은 뒤, 올해로 40살을 맞은 치프라스는 조만간에 그리스 대통령궁에 입성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시리자를 제1야당으로 올려놓으며 시리자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낸 후부터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치프라스는 다른 이들은 평생이 되도록 달성하지 못하는 정치적 성과를 냈기에 정치계 일부에서는 치프라스를 "단거리 달리기 선수"와도 견준다. 경제적 위기와 그리스인들의 분노가 치프라스의 상승과 시리자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리스 근현대 역사상 가장 젊은 총리가 된 치프라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판에서 두각을 나타내어왔다. 물론 아직도 그의 행동을 '어린이' 같다고 비하하는 반대파들도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에 당선된 후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리자의 리더가 되기까지

1974년 6월 28일 아테네에서 태어난 치프라스는 암펠로키포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그 두각을 드러냈는데, 교육부의 교육개혁을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었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공산당 청년연맹에 가입했으며 아테네국립공대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다. 이후 시리자의 전신인좌파연합(시나스피스모스)으로 옮기며 그곳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좌파연합에서 정계활동을 하며 치프라스는 예리한 정치감을 단련했다. 치프라스의 선임자였던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치프라스를 2006년 아테네 시장 후보로 추천했을 때 (일부에서는 강요했다고 한다) 당 안에서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치프라스는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2008년에 치프라스가 최고 득표로 좌파연합의 대표로 뽑히자 그는 더 많은 당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그 시절엔 알라바노스와의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알라바노스가 물러나고 치프라스가 좌파연합의 새 리더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둘 사이엔 일언의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 총리

시리자의 프로그램 에디터이자 국제 경제 전문가인 이아니스 드라카사키스(Yiannis Drakasakis)는 치프라스와 가장 가까운 참모다. 또 치프라스 옆에는 치프라스가 일부러 스코틀랜드에서 고향으로 불러들인 90년대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니코스 파파스(Nikos Papas)가 있다. 그는 당의 정치적 사안을 맡아왔으며 언론에서는 그를 치프라스의 "또 다른 자아"라고 일컫는다. 당 대변인인 파노스 스컬텔리스도 치프라스가 신뢰하는 참모다.

치프라스를 잘 아는 사람은 그는 집중력이나 상황판단 능력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늘 침착하고 목표를 주시하며, 화도 거의 안 내고 만약에 화를 내더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동료들과 여러 의원들은 그를 '쿨'하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시민들에게는 늘 크게 미소 짓고 친근하게 다가선다.

또한 그는 엄격한 관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한 예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직접 검토하기 전엔 그 어느 서류나 기사도 사무실에서 밖으로 유출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데 오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국제 뉴스와 파이낸셜 타임즈 그리고 뉴욕타임스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 커피 시간"엔 모든 안건에 대해 보고를 받는다.

사생활을 중요시한다

치프라스는 정치인인 동시에 한 가족의 가장이다. 다른 유럽의 지도자와 다를 바 없이 그 또한 사적인 부분은 될 수 있으면 언론에 노출하지 않고자 한다. 그리스 정치계에 입문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그와 가족에 대한 사적인 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동반자이자 전자공학 엔지니어 베티 바치아나와 십 대 때부터 사귀었는데, 그녀는 공공 석상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둘은 고등학교 때 공산당청년연맹에 입당하면서 만났다. 또한 같이 1990년과 1991년에 여러 학생 시위를 이끌었다. 인생은 물론 사회문제에 공감하는 동반자로서 이 둘은 결혼을 하지 않고 20여 년간 동거했다.

또한 이들은 두 아들, 4살짜리 파블로스와 2살짜리 어네스토스-오르피아스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도록 했다.

최근 해야 할 의무들이 점점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가능하면 에게 섬으로 자주 "도망치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친구인 알렉코스 플람푸라리스 같은 동료들이 에게 섬에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치프라스가 그의 동반자 베티 바치아나와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작은 약점

치프라스의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가족과의 시간은 물론 그가 좋아하는 축구에 시간을 쏟지 못하게 됐다. 그는 스포츠광이며 이전엔 축구도 뛰었다고 한다. 요즘 치프라스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축구 경기장에 가기도 어렵다. 가장 좋아하는 팀은 아테네 프로축구팀 파나티나이코스다. 그는 2007년 잡지 디바(Diva)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농담을 했었다. "올해 파나티나이코스가 우승하지 못한다면 산타클로스를 믿는 걸 그만두겠다."

그는 또한 오토바이를 좋아하는데 2012년까지는 오토바이로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이제는 안전한 자동차를 선호한다고 전해진다.

치프라스에게 생긴 변화는 이게 다가 아니다. 이제는 친구들과 편하게 식사를 하거나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어려운데 업무량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동료는 "공인이 되면 사적인 부분이 많이 제한된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식사나 술 한 잔을 하려 해도 꼭 누구의 시선에 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 특히 남미 음악을 즐기는 음악 애호가지만 즐길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리스 전통 음악과 민속 음악 행사도 좋아하는데, 다시 취미를 되살리기가 어렵다고 치프라스는 말한다.

*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의 'What You Need To Know About Alexis Tsipras, The Greek Leader Who Wants To Change Europe'를 번역, 변집한 것입니다.

* 허핑턴포스트 그리스판에 최초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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