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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22일 12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2일 12시 50분 KST

샤넬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취업 못한다? 패션계, 디자이너에 모델 몸매 요구

Damon Dahlen, AOL

‘피팅(옷 착용) 모델’ 비용 아끼려…취준생들 체형 교정수술까지 고민

디자이너 뽑는 공고에 키(165~170cm), 신체 사이즈(33-26-36) 명시

키와 신체 기준이 명시된 디자이너 공고문들.

패션업계에서 청년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신체 사이즈나 외모 등을 두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는 채용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알바노조와 패션노조, 청년유니온은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진 ‘몸뚱아리 차별’의 실태를 고발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에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3개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대기업을 비롯한 패션업계가 취업난을 악용해 신입 디자이너를 뽑는 과정에서 ‘모델 같은 신체 사이즈’를 조건으로 내 걸고 있다”며 “디자이너를 뽑는 모집 공고문에는 키(165~170cm)나 특정한 신체 사이즈(33-26-36)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장 스피커를 통해 공개된 증언에서 한 디자인 지망생은 “면접장에서 ‘몸매가 안 돼서 다른 곳을 구해야 되겠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결국 마네킹 같은 몸매를 가진 디자이너를 뽑는 형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디자인 지망생은 “헬스장에 다니며 몸매를 만들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이 지망생은 “선임이 디자인은 차차 배우면 된다고 했다”며 “3개월 동안 몸매를 만들어보고 피팅이 가능하게 되면 정직원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알바노조와 패션노조, 청년유니온은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에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디자이너 채용에 신체 사이즈를 보는 것은 ‘피팅(옷 착용) 모델’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아무개씨는 “피팅 모델을 따로 쓰는 비용이 아까워 막내 디자이너는 피팅 모델을 겸하지 않으면 취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취업을 위해 체형 교정 수술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대학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아무개(25)씨는 “면접을 20여군데 봤는데 ‘말랐다’, ‘우리 이미지와 안 맞는다’ 등 거의 몸매 평가뿐이었다. 취업용으로 열심히 만든 포트폴리오는 거들떠도 안 보더라”고 했다.  

 

이들이 조사한 ‘신체차별 구인광고 업체 리스트’를 살펴보면, 57개 업체 가운데 코오롱, 이랜드, ㈜신원, ㈜세정 등 유명 패션업체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업체들이 온라인 채용 사이트를 통해 올린 디자이너 모집 공고문에는 지원자의 신체사이즈를 필수로 요청하거나, 피팅이 가능한 사람만 지원이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지원자격이나 상세요건을 보면, 남성의 신장은 175~178㎝, 여성의 신장은 164~168㎝가 돼야 지원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어깨너비 △허리둘레 △가슴둘레 △등 길이 △소매 기장 등 구체적인 신체 사이즈를 지원요건으로 내걸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열정 페이’에 이어 신체 차별까지 일삼는 것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정부와 서울시에서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해도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들 3개 단체는 지난 16일 ‘열정 페이’ 파문의 중심에 섰던 이상봉 디자이너와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 임금과 노동 환경 개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시급히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또 13일 세종시에서 고용노동부와 면담을 통해 패션계 근로감독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