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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6일 09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8일 14시 12분 KST

돈과 예술의 경제학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타일러 코웬은 "가장 예술적인 것이야말로 상업화되고 대중화되어야 하며,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예술작품에 값을 매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연달아 발생하는 예술의 경제적 가치, 예술문화 사업의 창구효과(window effects)에 주목하고 예술을 '산업화'하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가는 경제논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시와 경제의 사이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경제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지폐

종이 두 장만 남을 뿐이다.

김광균 '생각의 사이' 中

시인 김광균은 그 누구보다 돈과 예술의 경계를 고민한 사람이다. 21세기는 문화의 가치를 급부상시키기도 했지만 또한 경계를 고민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치를 격상시킨 시대이기도 하다. 고전 동화에 나오는 박쥐와도 같았던 경계인들이 컨버전스와 하이브리드, 디지털과 쌍방향이라는 절대반지로 무장하고 이제는 당당히 사회의 한 축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경계인은 중간자가 아닌, 또 하나의 삼자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예술과 돈, 돈과 예술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제3지대인 경계의 창조적인 모색이다.

2006년 타계한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선생의 죽음에 전 세계가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의 죽음을 슬퍼했던 사람은 백남준의 헌신적인 후원자이자 경제의 그림자였던 유대인 화상(畵商) 칼 솔베이다.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백남준을 만난 솔베이는 단번에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당시 가난한 예술가였던 고인의 열정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이후 칼 솔베이는 한 예술가의 성공을 위해 함께 꿈과 인생을 개척한 백남준의 '예술경제학자(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사람)'가 되었다.

칼 솔베이는 백남준의 작품을 판매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을 파는 그의 상술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인이었다. 그의 직업은 좋은 화가와 좋은 컬렉터를 연결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직업정신은 거래를 통해 미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훌륭한 예술가에게는 훌륭한 예술경제학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예술경제학자에게도 훌륭한 예술가는 필수적이다. 만약 칼 솔베이가 없었다면 백남준은 존재했을까? 물론 백남준의 예술적 천재성은 스스로의 가치를 발현할 만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15세기 문예부흥기에 피렌체의 이름난 미술가들은 대부분 돈을 많이 벌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사망할 당시 그림 한 점의 가격이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100만 달러에 달했다. 라파엘로가 37세의 나이에 죽었을 때, 그는 포도원과 집 두 채 그리고 로마의 대저택을 비롯해 1만 6,000플로린 상당의 돈을 유산으로 남겼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인 피카소는 생전에도 상당한 부를 축적한 부자였다. 21세의 나이에 단돈 200달러로 뉴욕에 입성한 앤디 워홀.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재단에 38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가 넘는 돈을 기부했다. 하지만 이 돈은 앤디 워홀의 1차적인 경제효과에 불가하다. 현재 앤디워홀재단은 그의 작품에 대한 라이센스를 관리하고 있는데, 작품의 대여와 판매 외에도 그의 이름으로 제작된 그림과 향수, 화장품과 기념품 등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는 매년 수억 달러가 넘는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10년간 2조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용역을 받아 한 컨설팅 업체가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구겐하임미술관은 개관 이후 6년간 빌바오 시에 약 10억 7,000만 유로(약 1조 5,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효과를 유발했다. 미술관 건립에 약 5억 달러(약 5,000억 원)를 약간 웃도는 돈이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투자 대비 부가가치가 이 기간 중 3배에 달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10주년까지 이어졌다. 공식적으로는 현재 200여 개 도시가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려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술관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서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빌바오 효과에는 여러 가지 명암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10년간 그들이 만들어낸 경제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오시마는 일본 동부에 있는 작은 섬으로 1910년대 후반 미쓰비시의 철광석 제련소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섬의 경제성장 동력이었던 제련소는 자연의 파괴를 유발했고 결국 미쓰비시는 이 섬을 버리고 떠났다. 그렇게 버려진 나오시마에 기적을 불어넣은 힘은 한 기업가의 꿈이었다. 그 기업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교육문화 기업인 베네세의 창립자이자 CEO인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聰一朗) 회장이다. 그는 황폐한 땅 나오시마에 예술의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를 나오시마로 끌어들였다. 예술경제학자와 예술가가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전장으로 뛰어든 위대한 순간이다.

두 사람은 드디어 1992년 나오시마에 호텔 겸 미술관인 베네세 뮤지엄을 건립한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었다. 이후 나오시마는 차츰차츰 예술의 숨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이들의 열망은 지중미술관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지중미술관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결과물이자 두 명의 전사들에게 하이브리드라는 무기였다. 지중미술관은 3명의 예술가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월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 - 의 작품 단 8점(모네 5점, 터렐 2점, 마리아 1점)만을 위해 건립된 미술관으로 건축물 그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다. 안도 다다오는 후쿠타케 회장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대한 줄이고자 미술관을 지하에 만드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지중미술관은 기업과 예술, 경제와 문화가 어우러져 탄생한 통섭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중미술관의 문화적 가치만을 높이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성공한 문화 프로젝트는 그 문화적 가치와 함께 반드시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야 올바른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 개관 후 3년간의 지중미술관 수익을 모두 합산하면 약 105억 엔(약 850억 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 수치에는 일반 관광객이 가장 크게 지출하는 항목인 항공료와 식음료 비용, 그리고 쇼핑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기념품 구입과 오락비, 기타 비용도 빠져 있다. 3년간 약 4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현재는 매년 50만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다고 가정하면, 현재 지중미술관은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예술경제학의 성공 교과서다. 참고로 베네세가 나오시마 섬을 구입한 금액은 한화로 약 100억 원이었다. 현재 베네세는 나오시마와 같은 섬을 3개나 더 구입한 상태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자, 인기 절정의 경제학 블로그 '한계효용혁명(marginalrevolution.com)'의 공동 운영자이기도 한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가장 예술적인 것이야말로 상업화되고 대중화되어야 하며,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예술작품에 값을 매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연달아 발생하는 예술의 경제적 가치, 예술문화 사업의 창구효과(window effects)에 주목하고 예술을 '산업화'하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가는 경제논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통섭, 변용, 창발의 정신을 통해 예술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aura)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을 지향한다. 시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경기장이기도 하다. 예술도 이러한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결국 시장원리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예술이 상업성과 경제성을 멀리하는 일은 바로 경쟁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성공이 가능하다. 시장의 경쟁을 당당히 극복하고 성공한 위대한 사례들이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성과 경제성, 혹은 작품성과 상업성의 논쟁 따위는 잊어버리자. 그 논쟁은 경쟁이 두려운 사람들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만든 이념의 우산일 뿐이다. 결코 그 우산이 경쟁이라는 폭우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지금은 당당히 두려움이라는 우산을 버리고 활력 넘치는 경쟁의 시장으로 뛰어들어야 때다. 그곳에서 예술이 가진 무한한 창의의 힘으로 창조의 진검승부를 펼칠 일이다. 물론 예술가와 예술경제학자가 융합과 혁신이라는 무기로 한 편이 되어서 말이다.

본 원고는 미술 전문 매거진 월간 '미술세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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