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1월 07일 04시 53분 KST

검찰 뒤로 숨은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경제혁신 및 남북관계 개선 등 국정 주요 현안을 짚었지만, 전날 검찰이 발표한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수사 결과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사안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를 알리는 반면, 국민 관심사가 집중된 국정 현안도 불편하거나 불리하면 언급하지 않고 피해 가는 박 대통령의 일관된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윤회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1일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흔든다”,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검찰에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섰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문건 파문 이후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발언을 쏟아냈던 박 대통령이 검찰 발표가 나오자, 검찰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그 뒤로 숨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첫 발언 이후 1주일 뒤인 지난달 7일 여당 지도부 오찬에서도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했고, 동생인 박지만 이지(EG) 회장에 대해서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단정한 바 있다. 이틀 뒤 열린 국무회의에선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과정을 폭로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겨냥해 “국무위원의 언행은 사적인 게 아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 초기,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본인이 직접 나서 미리 사안을 규정했던 박 대통령은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는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대신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국무회의 전 기자실을 찾아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 (문건) 보도 전에 한 번의 사실 확인 과정만 거쳤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우 안타깝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는 짧은 논평을 내놓았다. ‘몇 사람의 사심’과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언론’에 이번 파문의 모든 책임을 돌린 셈이다.

청와대는 여전히 남은 의혹이나 이번 파문 과정에서 제기된 외부 지적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나 조처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철저히 관리했다’는 동생 박지만 회장이 청와대 비서관급 참모로부터 수시로 청와대 내부 문서 원본을 전달받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를 않고 있다. ‘정윤회 보고서’는 김기춘 비서실장 선에서 보고받고 묵살했는데, 문체부 국·과장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는 보고서는 왜 박 대통령이 직접 보고받고 해당 장관을 불러 인사조치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의혹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폐쇄적 의사소통 구조’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 및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 참모진에 대한 쇄신 요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을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던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법적 책임이 없으니,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이번 파문을 계기로 김 실장과 3인방의 입지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

박 대통령은 오는 12~13일께 집권 3년차 구상을 밝히는 신년기자회견을 연다. 파격적인 대북 제안을 포함해 집권 중반기를 끌고 갈 만한 온갖 구상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방’ 등 여권 내부에서조차 교체를 요구하는 인물들에 대한 인적쇄신이 없는 한 진정성, 실현성, 국민소통 등에 대한 신뢰감을 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