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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6일 03시 51분 KST

'대통령 지침'에서 반 발짝도 안 나간 검찰

한겨레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지난달 7일 박근혜 대통령)

“이번 수사가 ‘찌라시’나 근거 없는 풍설을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하는 잘못된 풍토를 돌아보고 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함.”(1월5일 서울중앙지검 중간 수사결과 발표문)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5일 조응천(53)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48·구속 기소) 전 행정관(경정)이 사설정보지 수준의 정보를 짜깁기한 문건을 작성·유출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이다.

검찰은 이날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박 전 행정관이 보관하던 청와대 문건을 무단 복사해 동료인 최아무개 경위(사망·공소권 없음 처분)와 한화 정보팀 직원에게 알려준 한아무개(44) 경위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공용서류은닉, 무고 등 4가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수사를 지휘하다시피 했다.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를 보도하자마자,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8명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장을 냈다. 정윤회씨도 12월3일 고소했다. 의혹의 당사자들이 곧바로 역공에 나선 것이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려고 결재서류 판 안에 든 자료를 꺼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난달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수사의 방향과 사건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그달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점심 자리에서는 ‘정윤회 보고서’의 내용을 “찌라시”로 규정하며 수사의 결론까지 미리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집한 증거를 기반으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다는 수사의 상식을 부정하고, 검찰의 발을 묶는 발언이었다.

중간 수사결과는 이런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을 통해 17건의 청와대 문건을 박지만 이지(EG) 회장 쪽에 유출했다고 밝혔다. 또 ‘정윤회 보고서’와 ‘박지만 미행설 문건’ 등은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풍문을 과장하고 짜깁기한 것이라고 결론 냈다. 검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기지국 정보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 관계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으나, 보고서 내용을 입증하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 등이 정씨에 대한 비방 문건을 작성해 박지만 회장한테 전달한 과정 등을 보면, 박 회장을 이용해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 과정을 보면, 곳곳에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먼저 검찰은 ‘2013년 말에 십상시가 정기적으로 모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는 요지의 ‘정윤회 보고서’ 내용 중 서울 강남의 ㅈ중식당에서 실제 그런 모임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수사를 집중했다. 보고서 너머에 존재할지 모르는 ‘국정 개입’ 여부는 파헤치지 않았다. 모임의 실재 여부로 ‘국정 개입’ 유무에 대한 판단을 갈음한 셈이다.

정씨 및 ‘문고리 3인방’ 쪽과 조 전 비서관 쪽에 대한 수사 태도는 큰 차이를 보였다. 국정개입 의혹 당사자 쪽은 정씨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김춘식 행정관만을 소환조사하는 등 대상을 최소화했다. 정호성·안봉근 청와대 1·2부속비서관,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아무런 강제성이 없는 서면조사만 했고, 정씨와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뚜렷한 혐의점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고소인 쪽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설 명분은 없다”고 했다. 결국 검찰은 2013년 12월 초~2014년 11월 말 통신기록을 중심으로 개인 동선 등을 훑어본 뒤 의혹을 털어준 셈이 됐다.

반면 ‘문건 유출’ 수사는 강도 높게 진행됐다.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박 경정이 옮겨놓은 문건을 복사·유출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한아무개·최아무개 경위 등 4명에 대해 모두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의 사무실과 집도 압수수색했다. 이 가운데 검찰 뜻대로 구속한 것은 박 경정뿐이다. 조 전 비서관은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고, 그에 앞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최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차이는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는 데도 반영돼 사건의 결론과 성격 규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검찰은 ‘정윤회 보고서’의 제보자로 지목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박 경정한테 한 얘기가 와전되고 과장돼 보고서에 실렸다’고 진술했다는 점도 주요 판단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박 전 청장은 청와대 비서진뿐 아니라 정씨 주변인물과도 두루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박 경정이 보고서에 쓴 내용이 순전히 추측과 과장에 불과한지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가 그려준 대로 결론이 나왔다. 검찰이 수사하고 처벌하는 기관이지 해명해주는 기관은 아닌데, 얼마나 의지를 갖고 수사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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