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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5일 11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5일 11시 22분 KST

돌아온 '비운의 천재' 토레스를 반기는 고향팀의 팬들 (동영상)

2007년 7월24일 이후, 우리 모두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 엔리케 세레초(Enrique Cerezo)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회장

파란만장했던 축구 인생의 ‘황혼기’를 앞에 둔 페르난도 토레스가 고향팀에 돌아왔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직 입단 환영식을 보기 위해 4만여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아래 동영상을 보자.

토레스는 리버풀을 거쳐 2011년 첼시로 옮겼다. 당시 약 5000만파운드(약 850억원)의 이적료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러나 토레스는 지독한 골 가뭄에 시달리며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다. 토레스가 토레스가 아니었다. 역사상 최악의 ‘먹튀’라는 별명이 붙었다.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폴 스콜스는 최근 “토레스의 추락은 축구계의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언급했고, 2012년 파이낸셜타임스는 ‘토레스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심층 기사를 내보냈으며 스카이스포츠는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라고 묻기도 했다.

그에게도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17세에 데뷔해 19세에 팀의 주장이 됐고, ‘유럽 최고의 재능’이라는 기대 속에 잉글랜드 리버풀로 이적했다. 토레스는 빠른 발과 칼 같은 골 결정력으로 데뷔 첫 시즌(2007-08시즌) 리그 34경기에서 24골을 몰아넣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각종 기록도 여럿 갈아치웠다. 1995-96 시즌의 로비 파울러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리그 20골을 돌파한 리버풀 선수가 됐고, 마이클 오웬이 가지고 있던 리버풀 역대 한 시즌 최다골 기록도 깼다. 외국인 선수 잉글랜드 데뷔 첫 시즌 최다골 기록도 세웠다. 거침없는 질주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 몇 번의 부상을 겪으며 토레스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가 됐다. 폭발적인 질주도, 동물적인 골 결정력도 볼 수 없었다. 기록이 증명한다. 리버풀에서 102경기에 나와 65골(리그)을 기록했던 토레스는 첼시에서 110경기 20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고향팀으로 돌아온 것도 사실상 ‘버려진’ 것과 다름없다. 소속팀 첼시에서 밀려난 토레스는 이탈리아 AC밀란으로 임대생활을 떠났고, 12월 말 완전이적 계약 직후 다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도로 임대됐다. 사실상의 완전이적이다.

‘더 큰 무대’를 꿈꾸며 마드리드를 떠났을 때, 토레스의 나이는 24살이었다. 7년 반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토레스는 주전으로 뛰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경쟁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팬들은 이제 30대를 훌쩍 넘긴 ‘엘니뇨(El Niño ; The Kid) 토레스’에게 따뜻한 환영인사를 보냈다.

토레스는 첼시 시절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확고한 주전으로 매 경기에 나서던 시절이 가끔 매우 그립다. 언젠가 한 번은 자리에 앉아서 내가 넣었던 골들의 동영상을 살펴본 적도 있다. 내가 어떻게 골을 넣었던 건지 알고 싶었다.” (Mirror, 2014년 5월28일)

‘비운의 천재’ 토레스는 부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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