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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5일 08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7일 14시 12분 KST

사법부의 길

국회는 국회의 길이, 대통령과 행정공무원들은 그들의 길이, 그리고 사법부는 사법부의 길이 있습니다.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가석방은 행형(行刑)을 담당하는 법무부장관의 소관입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주체가 법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책임 아래 할 일들입니다. 특히 사면권 행사나 가집행은 자의를 배제하고 법에 따른 보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엄정한 소송절차에 따라 확정된 판결에 대한 견제 장치이기 때문에 그 행사 역시 정치보다는 법에 의해 이뤄져야 국민은 비로소 수긍할 것입니다.

Getty Images/Flickr RF

요사이 일고 있는 사면, 가석방 논의 때문에 판사들이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겠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판사 직무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입법(국회), 행정(정부), 사법(법원, 헌법재판소) - 우리가 선택한 국가권력의 분립 체계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 유일한 권력 주체는 국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나라가 움직이려면 수족(手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수족 역할을 행정, 입법, 사법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가조직을 갈라서 분산한 이유는 뭘까요? 권력이 한곳에 몰리면 힘이 커지고 그에 따라 법보다는 힘에 의해 국정이 운영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런 가능성은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특정 부처가 기준보다는 기분에 따라 권한을 행사할 여지가 많아지고, 이로 인해 결국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잦아지게 됩니다. 꼭 국정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회사, 학교, 가정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대입한 것입니다. 국회는 추상적인 기준인 법률을 만들고, 대통령을 수반하는 행정부는 법률에 따라 실제 국정을 운영하되 대통령은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법부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의 권리를 확인해서 실행시켜 주되 다수결 원리에 의해 무시될 수 있는 소수의 권익을 살피게 됩니다. 국회는 대통령과 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을 발의할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지나치게 엄정한 사법권 행사에 대한 제어수단으로 사면권을 가집니다. 훨씬 다양한 견제와 균형 장치가 존재하지만, 지면 관계상 개략만 짚어봤습니다.

우리는 18세기 중반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말한 삼권분립(三權分立)을 국가조직의 기본 체계로 받아들였습니다. 힘을 분산시켜 독재를 막고, 법률로 기준을 정해서 국정을 운영하여 개인이나 집단의 의사가 아닌 국민 다수의 의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근간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만 대통령과 국회는 선거에 의한 다수결 원리에 의해 구성되지만,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근본 원리를 밝히거나 다수의 의사에 의해 무시될 수 있는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부 구성원은 선거에 의하지 않고 특정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 이 원리야말로 국민 개개인이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권력분립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현대사회에서 국가기관 외에 다른 여러 조직에서도 수용해야 할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상법은 주식회사가 대표이사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주주총회의 이사 선출권, 각종 감사 제도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힘이 한곳으로 몰리면 시스템이 경고를 보내고 구성원들이 그 경고를 감지해서 협의를 거쳐 위험을 시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권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시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권한도 가지지만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 각 분야, 예를 들면 회사, 학교 등의 여러 조직 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그 안에 정해진 규칙에 의해 행동합니다.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고전적인 연구 대상이었다면, 이제 회사, 학교와 같이 개인이 자기 삶의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 사회조직으로부터의 자유가 담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일과의 상당 부분을 회사나 학교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런 사회조직 내에서의 부당한 자유 침해나 권익 침해는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회사, 특히 상장회사는 개인 재산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속은 능력이 아닙니다. 경영인이나 주주들 스스로 이 점을 명심해야 하고, 직장에 몸 담은 여러 행동주체들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삼권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국가조직은 각자 역할과 책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겹게 일궈온 우리 사회, 우리 민주주의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이 두려움 없이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국회는 국회의 길이, 대통령과 행정공무원들은 그들의 길이, 그리고 사법부는 사법부의 길이 있습니다.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가석방은 행형(行刑)을 담당하는 법무부장관의 소관입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주체가 법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책임 아래 할 일들입니다. 특히 사면권 행사나 가집행은 자의를 배제하고 법에 따른 보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엄정한 소송절차에 따라 확정된 판결에 대한 견제 장치이기 때문에 그 행사 역시 정치보다는 법에 의해 이뤄져야 국민은 비로소 수긍할 것입니다. 국가조직이 각자에게 분배된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할 때에 대한민국은 건강해집니다. 헌법 제103조가 명한 대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이고, 사법부는 사법부의 길을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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