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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4일 07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6일 14시 12분 KST

내 돈, 좀 편하게 씁시다

'애플페이'를 보자. 아이폰을 꺼내 홈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지문을 인식한 다음 결제기에 갖다댄다. 끝. 지금 한국에선 앱카드, 정말 쓸 데 없소이다. 지금 모바일 앱으로 물건값이라도 치르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스마트폰을 꺼내→앱을 찾아 실행하고→결제할 매장을 선택한 다음→거래용 비밀번호(PIN)를 입력하고→결제용 임시 바코드를 보여주면→점원이 바코드 인식기로 이를 찍어야 한다. 아이고, 의미 없다. 그냥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는 게 속 편하다.

ASSOCIATED PRESS

[이희욱의 휴머놀로지]

"우리 애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 ○마켓에 들어갔다가 짜증나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얼굴에 열십자를 그었다. 이 선배는 이름도 헷갈리는 온갖 보안 프로그램을 깔았으리라. "웹브라우저는 또 두 번이나 꺼지는 거 있지. 게다가 뭐가 문제였는지 결제 직전에 에러가 떠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 선배의 죄라면 딱 하나, 한국 웹에서 물건을 편리하게 사려 했던 '욕심'이다.

웹뿐이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모바일금융이 활성화되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한국의 금융 서비스는 '홀로아리랑'이다.

스마트폰만 갖고 다니면 결제도, 송금도 문제없다고 한다. '간편결제' 얘기다. 그런데 국내에서 내놓는 간편결제는 '간편'이란 수식어가 민망할 정도로 함량 미달이다.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뒤처진 탓은 아니다. '규제'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애플이 내놓은 간편결제 시스템 '애플페이'. 애플 제공

'애플페이'를 보자. 아이폰을 꺼내 홈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지문을 인식한 다음 결제기에 갖다댄다. 끝.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을 열거나,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거나,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이 바닥 말로 '사용자 경험'(UX)이 다르다.

우리라고 왜 못할까.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결제 서비스를 하려면 결제 정보를 저장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험난한 과정이다. 정부가 결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업체 자격 요건을 지정해놓았는데, 그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스타트업은 엄두를 낼 수 없는 까닭이다. 온갖 '인증' 절차도 서비스 사업자의 입장에선 지뢰밭이다. 보안을 강화해 금융사고를 막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서비스 편의성을 떨어뜨릴 정도로 과도하고 번거롭다면 문제다.

한때 은행들이 경쟁하듯 내놓은 '앱카드'를 보자. 앱을 내려받는다고 바로 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인인증서도 등록해야 하고, 본인 인증 절차도 거쳐야 한다. 물론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용자가 아니라면 이 기회마저 갖지 못한다. 우리에겐 아주 낯익은 과정이자, 아무리 반복해도 적응할 수 없는 천형이다.

이 험난한 전선을 무사히 통과해 앱카드를 쓸 준비를 마쳤다 해도 또 다른 늪이 길을 막는다. 지금 당장 아무 가게나 가서 물건을 사고 "앱카드로 결제할게요"라고 말해보자. 십중팔구 "네? 뭔 카드요?"라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기술이나 편리함 못지않게 사용처를 확대하는 것도 큰 숙제다. 지금 한국에선 앱카드, 정말 쓸 데 없소이다.

습관은 무섭다. 우리에게 '결제'란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긁고 서명하면 끝나는, 그런 거다. 여기에 익숙한 이용자를 모바일 결제로 유도하려면 이보다 훨씬 쉽고 편리한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모바일 앱으로 물건값이라도 치르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스마트폰을 꺼내→앱을 찾아 실행하고→결제할 매장을 선택한 다음→거래용 비밀번호(PIN)를 입력하고→결제용 임시 바코드를 보여주면→점원이 바코드 인식기로 이를 찍어야 한다. 아이고, 의미 없다. 그냥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는 게 속 편하다. 간편결제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신용카드보다 10배 편해선 안 돼요. 100배는 편해야 모바일 결제를 쓸 겁니다." 호들갑이 아니다. 냉혹한 현실이다.

<한겨레21>에서도 얼마 전 '핀테크'를 여러 지면에 걸쳐 다뤘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조합한 말이다. 기술로 금융서비스를 혁신하려는 시도나 서비스를 아우른다. 해외에선 알리페이, 페이팔 등 다양한 금융 혁신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국내에선 언감생심이다. 규제란 칼이 혁신이 고개 내밀 틈도 주지 않고 싹수부터 잘라버린다. 그러는 동안 될성부른 기술 스타트업은 일찌감치 해외에 둥지를 튼다.

규제를 무조건 없애자는 게 아니다. 세계적 흐름을 따르고, 합리적으로 바꾸자는 얘기다. 규제 체질부터 바꿔보자. 되는 것만 지정해주고 나머진 처음부터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면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다. 모바일 결제가 편리해지면 사람들은 돈을 더 쓰고, 그러면 세금도 더 걷히니 정부도 좋은 일 아닌가.

나도 내 돈 좀 쓰고 싶다, 편하게. 이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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