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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6일 11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25일 14시 12분 KST

시향경영 유감

1998년 IMF 사태 이후, 공공예술단체를 바라보는 정부기관의 시선은 변했다. 예술을 예산을 낭비하는 사치품 정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비난을 염려한 정부기관은 경영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재정자립도를 높이라는 압박을 시작한다. 민간 경영자가 예술경영에 투입된 이유다.

시향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예술경영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시향의 이야기다. 시향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1945년 고려교향악단에서 출발, 1957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발족, 2005년 6월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대한민국에는 국립 교향악단이 없다. 그만큼 대한민국 클래식 분야에서 시향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크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향이 말썽이다. 경영을 책임진 대표의 막말과 인권침해 논란에, 작품을 책임진 예술감독의 인사비리 의혹까지. 도대체 한 나라 문화예술의 얼굴 격인 단체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이른 것일까? 내부자가 아닌 이상, 숨겨져 있는 사실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사건을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본질은 예술과 경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의 관점으로 바라보자.

예술경영(Arts Management)은 예술과 관객(소비자)의 만남을 효과적으로 주선하는 방법론이다. 넓은 의미로 보면 문화 촉매 활동의 일환으로, 예술 또는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식 그리고 그에 관한 총체적인 활동을 지칭한다. 이 정의는 시향의 전임 대표였던 故 김주호씨의 저서 <예술경영(김영사, 2002)>의 첫 장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김대표의 저서는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로 통한다. 그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노어노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런던시티대학원에서 예술행정학을 전공했다. 또한 예술의 전당 공채 1기 출신으로 LG아트센터, 메타컨설팅 대표 컨설턴트를 거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중앙대학원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시향 대표를 사임한 후 롯데 콘서트홀 대표이사까지 역임했다. 이론과 현장, 공공과 민간을 고루 경험한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경영인이 바로 故 김주호였다. 예술경영의 본질은 다름 아닌 예술경영자, 즉 사람이다. 경영에서 CEO가 차지하는 비중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시향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재단법인이다.

시향은 예술단체다. 정확하게는 서울시라는 지방정부의 독립 산하기관이다. 예술경영은 크게 민간과 공공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두 영역이 추구하는 경영의 목표는 매우 다르다. 민간의 목표는 당연히 최소비용과 최대이윤이다. 공공은 이와는 다르다. 공공 예술경영이 추구하는 목표는 예술의 품질과 예술기관의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즉, 예술의 공공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시향은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공기관에 민간분야 경영자 출신을 임명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시향도 이 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6년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에서 경영과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이 공공 예술단체의 수장이 된 것이다. 민간영역에서 그 사람이 보여준 실적과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성과 수익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영철학이다. 시향은 매년 100억 원 정도의 서울시 출연금과 70억 원 정도의 자주재원으로 운영된다. 재정적 자립이 불가능한 단체다. 재단법인은 비영리단체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일로 적극적으로 공익을 유지, 증진하는 일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술경영과 일반경영의 본질적인 차이.

예술경영은 분명 경영의 한 분야다. 그럼에도 예술경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일반경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제품의 차이다. 일반적인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일반적인 제품은 보고 만지고 경험한 후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데 예술, 특히 공연예술은 구매 전 경험이 불가능하다. 같은 공연도 매일매일 질의 차이가 존재한다. 둘째, 재무구조가 다르다. 일반적인 기업의 재무기준은 투자나 융자를 통해 조성된 재원을 활용, 최소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인력을 관리해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경영, 특히 공공예술경영의 재무기준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로부터 충당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확고히 하는 일이다. 공공예술경영의 재정적 자립은 설립 목적상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1998년 IMF 사태 이후, 공공예술단체를 바라보는 정부기관의 시선은 변했다. 예술을 예산을 낭비하는 사치품 정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비난을 염려한 정부기관은 경영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재정자립도를 높이라는 압박을 시작한다. 민간 경영자가 예술경영에 투입된 이유다.

시향이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시향이 걸어온 길은 훌륭했다. 국내적으로는 세계적인 명성의 지휘자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후, 탁월한 수준의 프리미엄 시리즈를 연이어 선보이면서 평균 92%에 달하는 유료 판매율을 기록했다. 예술경영의 꿈이라고 불리는 전석 매진을 달성한 것이다. 또한 2007년부터는 해외로 활동 반경을 확장하여 태국, 북경, 일본 투어를 시작으로 미국 UN본부와 카네기 홀을 거쳐 2010년에는 유럽 4개국 9개 도시투어를 통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런 대외적 활동을 통해 국가 브랜드에 기여하면서도, 시향은 결코 공공성이라는 태생적 명제를 잊지 않았다. 매년 70회 이상 학교, 병원, 구민회관 등을 방문하는 <우리 동네 음악회>와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대형 야외공연,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음악 이야기>와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의 공공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혁신적 변화는 2013년 이후 자취를 감춘다. 대표가 바뀐 이후였다. 혁신의 불씨를 살리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위대한 예술경영자를 기다린다.

개인적으로 시향의 전임 대표였던 故 김주호씨를 사석에서 몇 번 만나 적이 있다. 4년 전,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막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당시 3G 폰을 쓰던 나에게 스마트폰의 혁신적인 기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디에서나 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스케줄을 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직원들의 결제나 보고 등의 업무를 간소화시켜서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혁신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곧 창단 이후 최초로 유럽투어를 떠난다고 했다. 마치 봄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렌다면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의 열정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다. 훌륭한 예술경영자를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8개월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시향사태도 어떻게든 마무리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경영자가 시향을 맡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향의 직원과 단원들이 걱정될 뿐이다. 혁신의 중심에서 함께 비상했다가 추락하는 심정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추락에도 끝은 있다. 2015년이 시향의 비긴 어게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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