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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0일 08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20일 08시 30분 KST

"전세계 어느 헌재도 이렇게 편향적 구성하는 나라 없다"

헌정 사상 첫 위헌정당 해산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8명이라는 절대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됐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법조계에서는 ‘7 대 2’, ‘6 대 3’ 등 여러 소문이 돌았는데, 헌재의 보수단일화 정도는 이런 예측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셈이다. 헌재의 편향적인 재판관 구성이 다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영국 변호사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해산을 선고하는 주문을 읽자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입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외치다 방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보수정권이 이어지면서 헌재도 보수 성향 인사들로 채워져 왔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박한철 소장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했다. ‘가장 확고한 보수’로 손꼽히던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 횡령 등 의혹으로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자, 그 자리를 공안검사 출신으로 메운 것이다. 박 소장은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으로 추천했는데, 이미 낙태죄 처벌 조항,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내는 등 뚜렷한 보수 성향을 보여왔다.

안창호 재판관도 박 소장과 함께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지낸 ‘공안통’ 검사장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은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이상 ‘평생 법관’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 송두환 전 재판관이 퇴임하고 나서는 그나마 한 자리 있던 재야 변호사 출신 몫도 아예 사라졌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은 기본적으로 법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하는 ‘사회 안전판’ 역할을 맡고 있어서 기본 성향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법의 가치와 적용을 고민하는 헌재는 한국 사회의 인권 및 이념 지도의 축소판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보수적인 사법부 엘리트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5기 헌재 구성원의 보수성은 초기 헌재 때에 견주어봐도 두드러진다. 변정수 초대 재판관은 대한변협 인권국장을 맡으며 ‘김근태 고문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 사건, 사회보호법 사건, 집시법 사건 등 헌재 초기 주요 사건에서 의미있는 위헌 의견을 밝혔다. 2기 헌재 재판관이었던 조승형 재판관이나 1기의 한병채 재판관은 정통 법관 출신이 아님에도 소수의견을 많이 냈고, 그 뒤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수의견으로 확장되곤 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는 “권력의 입맛에 맞춰 재판관을 구성해 놓은 이상 헌재가 제대로 된 정책법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세계 어느 곳에도 이렇게 편향적으로 재판관을 구성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헌재 역할을 맡고 있는 외국의 재판소들은 정치적 편향성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을 의회가 선출하는데, 정족수를 ‘3분의 2 이상’으로 하고 있다. ‘51% 다수당’이 재판관 선출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독일 헌재의 재판관은 절반 이상이 헌법학 등 공법을 전공한 교수들이다.

또 일본 최고재판소는 ‘법률 소양이 있는 40살 이상’으로만 재판관의 자격 요건을 두고 있다. 다만 법관 자격이 없는 사람은 전체 정원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게 해, 최소한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할 뿐이다. 재판관의 ‘출신 성분’을 다양화해 사고의 획일성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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