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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8일 0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1일 14시 33분 KST

인터스텔라, 책과 도킹하다 | 물리학자 이종필 교수 인터뷰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과학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현대 과학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어떤 과학 이슈가 터졌을 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습니다.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인터스텔라>가 쉽게 이해되던가요? 아빠 쿠퍼보다 늙어버린 딸 머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 여러분들도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터스텔라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가 아니라 책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우주론을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종필 교수, 영화 개봉 후 가장 분주하게 지내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에게 아직까지도(?) 헷갈리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책을 읽으면 해소된다는 식의 답변은 스스로 거부했다. 자, 다음 주면 천만 영화로 기록될 작품 <인터스텔라>의 우주론과 도킹해보자.

​Q. 입자 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어떤 학문인가?​

소립자의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세상이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질문에 대해 가장 밑바닥의 수준에서 답을 추구하는 학문이지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연구는 지난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의 성질에 관한 것입니다.

​Q.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어떤 영화가 더 좋은가? 이유는?

이건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는 질문과도 같군요. 저의 경우 가슴이 좋아하는 영화는 <그래비티>이고 머리가 좋아하는 영화는 <인터스텔라>입니다. <그래비티>는 별다른 스토리는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우주공간에 내버려진 듯한 느낌이 확 들잖아요. 광활한 우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저 지구궤도에만 올라갔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또 광활한 우주에 내던져진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요. 저는 <그래비티> 보는 내내 그 생각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우주의 시작과 역사와 진화의 과정을 조금씩 알아내기 시작했다는 건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21세기 들어서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정밀도로 우주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 우주의 나이에 대한 오차가 1%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아인슈타인 말마따나 우주에 대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과학자의 한 명으로서 한편으로는 <그래비티> 보면서 뿌듯했어요. 제가 뭐 대단한 발견을 한 건 없지만 말입니다.

​<인터스텔라>는 그런 느낌까지 들진 않았어요. 아마 <그래비티>를 먼저 본 탓이겠죠. 만약에 <인터스텔라>가 <그래비티>보다 먼저 나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인터스텔라>에 대한 아쉬움은 좀 있어요. <그래비티>를 확실히 뛰어넘는 영상의 충격이랄까, 뭐 그런 걸 관객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냉정하게 말해서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럼에도 <인터스텔라>는 미덕이 많은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인터스텔라>는 관객들이 끊임없이 질문과 생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어요. 그게 참 놀라운 일이죠. 정부에서 융합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고등학생들에게 빅뱅 우주론부터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을 가르쳐 온 게 벌써 몇 년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론에 따른 시간 지연, 블랙홀이나 웜홀 등에 대해서 이렇게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잖아요. 한 국가의 공교육체제가 몇 년째 해내지 못한 일을 영화 한 편이 불과 한 달 만에 해낸 겁니다. 경이롭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이 영화는 현직 물리학자로서 머리로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 덕분에 저도 책을 한 권 내게 되었으니 놀란 감독에게 일종의 빚을 진 셈이죠. 언젠가는 저도 우주론과 관련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

Q. 보름 만에 책을 탈고하셨다고? 혹시 그분을 만나신 건가?

출판사 사장님이 그분을 만나라고 하시더군요.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작두만 타시면 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리학자 데리고 과학 책 내시려는 분이 작두 타령이라니, 이 무슨 개작두 같은 소리인가 하고 말이죠. 결국 그분을 만나지는 못 했습니다. 11월 9일 첫 집필을 시작해서 11월 25일 마감에 맞추려고 했는데 자정을 17분쯤 넘겨서 원고를 보냈습니다. 출판사에서 원했던 매수(600매)에 조금 못 미치는 590여 매수였습니다. 하필이면 그 기간 동안에 강연도 몇 개 있었고 다른 원고 마감도 있고 해서 실제 집필한 시간은 대략 열흘 정도였어요. 특히 마감날인 25일에는 저녁때 90분 강연 끝내고 연구실로 와서 원고 마무리하느라 저녁도 못 먹고 자정을 넘겼죠. 마침 그 다음날 물리 논문 작업하는 미팅이 있어서 원고 쓰는 틈틈이 프로그램 돌리느라고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분을 만났다면 좀 더 여유롭게 고생도 덜했겠죠. 그렇지 못한 탓에 무척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대학생 때는 하룻밤에 A4용지로 20여 장, 그러니까 200자 원고지로 180매 정도 쓰기도 했었어요. 그때야 팔팔한 20대였으니까... 이젠 나이도 들고 했지만 그래도 하룻밤 지새면서 바짝 쓰면 120매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평소에 다른 데 원고 쓸 때는 그런 스피드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에만 하룻밤이 다 소요되는 때도 있고 감정을 살려야 하는 경우에는 하루 종일 한 문장 쓰고 마는 때도 있고 문장을 좀 아름답게 한답시고 또 하루를 보내기도 하니까요.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는 그런 종류의 원고는 아니어서 가벼우면서도 얕지 않게 쓴다면 하룻밤 100매는 쓸 수 있으리라 기대했죠.

그런데 막상 써 보니까 하룻밤에 겨우 60매 정도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꼬박 열흘 걸렸어요. 그나마도 제가 올해 1, 2학기에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물리학 강의를 했던 경험 덕분에 하룻밤 60매라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강의 슬라이드를 열심히 만들어 둔 덕에 기본적인 사실관계 같은 것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원고 쓰는 도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정말 작두라도 타고 싶었습니다. 사장님이 그렇게 저를 작두에 태우고 싶은 이유를 알겠더군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원고 마감날이었던 11월 25일은 마침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한 논문이 발표된 날이기도 해요. 그게 1915년이니까 꼭 99년 전의 일입니다.

Q. 영화 인터스텔라에 혹시 과학적 오류는 없나? 살짝 알려 달라.

토성 근처에 웜홀이 생기면 태양계 모든 행성이 영향을 받을 텐데요. 중력이상이 지구에서 발견되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너무 평화로워 보였어요. 또 많이들 지적하시는 게 밀러 행성의 중력이 지구의 130%인데 우주선이 어떻게 그리 쉽게 궤도로 진입하느냐는 점입니다. 행성이 아주 작으면 행성 표면의 중력가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행성 주변의 공전궤도로 진입할 수 있는 속도를 작게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좀 부자연스럽죠. 밀러 행성의 크기가 지구와 비슷하거나 더 크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파도가 산더미 같은 높이로 올라간다는 건 주변의 블랙홀에 의한 기조력이 굉장히 크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지각도 크게 들썩거려야 하거든요. 영화 속 밀러 행성의 지각은 그렇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물론 이 행성의 지각이 굉장히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듀어런스 호가 블랙홀 주변을 지날 때 말인데요.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가 아마도 블랙홀로 유입되는 물질층의 원반인 듯합니다. 이 경우 대개 주변에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는 인듀어런스 호가 어떻게 지나갔을까 궁금합니다. 블랙홀 속으로 떨어진 쿠퍼와 타스가 블랙홀의 강력한 기조력을 어떻게 버텼을지도 의문이고요. 그 속에서 수집된 정보가 양자중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어떻게 덧차원(extra dimension)을 통해서 블랙홀을 빠져나가는지도 영화적 상상력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과거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 미래가 바뀌는 과정은 인과율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요.

Q. 아,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린다. 저자답게 100글자 이내로 부탁한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얌전히 공부만 하는 모범생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요. 취미 삼아 어쭙잖게 시사평론도 가끔 해왔습니다. 아직 비정규직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고, 아직 미혼입니다. (135자)

Q. 한국은 언제쯤 이런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가?

이런 수준의 이야기 자체를 만드는 건 당장에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과학적인 내용을 말해 줄 과학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도 웬만큼은 만들잖아요. <인터스텔라>의 스토리라인이 사실 그리 정교하거나 획기적인 수준도 아니고... 만약에 <인터스텔라>가 소설로 나왔다면 한국에서 영화만큼 인기를 끌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수준의 스토리를 당장에 꼭 만들어야겠다면 굳이 못 만들 이유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런 스토리가 얼마나 안정적인 생태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생산되고 유통되느냐인데요. 이 생태계가 극히 열악하죠. 무엇보다 기초과학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요. 그리고 스토리를 영상으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지요. 여기에는 엄청난 돈과 기술과 시행착오가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현대물과 사극에 비해 미래의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스토리 자체도 빈약한데다 시도를 많이 해 보지 않았으니까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관건은 의지라고 봅니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기초과학을 사회와 국가운영의 주요 어젠다로 받아들일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컨대 전국 대학에서 물리학과가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되는 이런 상황에서 우주개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100년이 지나도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을 볼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반대로 지금부터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기초과학을 육성하는 경우, 적어도 한 세대가 새로이 구성되어야 건강한 생태계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 30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반짝하면서 한두 개의 훌륭한 작품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당장의 한두 작품보다는 중장기적인 생태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겁니다.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이 그런 '의지'를 갖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Q.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과학 이론 중 2가지만 재미있게 설명해달라.

​재미는 장담 못 합니다. 하나는 블랙홀 정보 역설입니다. 스티븐 호킹은 1974년에 블랙홀이 열을 갖고 있으며 빛을 내면서 종국에는 증발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호킹 복사입니다. 호킹은 여기서 더 나아가 블랙홀 속으로 떨어진 정보는 블랙홀이 호킹 복사로 증발하면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한 기둥인 양자역학에 따르면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블랙홀의 정보 역설입니다. <인터스텔라>를 자문했던 칼텍의 킵 손 교수는 1997년 호킹과 함께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질 것이라는 데에 내기를 겁니다. 반대로 존 프레스킬이라는 교수는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데에 내기를 걸었죠. 내기 품목은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이후 2004년 호킹은 블랙홀에서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자신의 입장을 바꿉니다. 킵 손의 지금 정확한 입장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 블랙홀 내부의 정보가 덧차원을 통해 과거의 시공간으로 전달되는데요. 이것을 블랙홀에서도 정보가 보존된다고 해석을 해야 할지, 아니면 덧차원을 통해서 과거로 빠져나갔다고 봐야 할지 생각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블랙홀의 정보 역설은 아직 완전히 해결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사건의 지평선을 건널 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최근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몇몇 과학자들은 지평선 부근에 엄청난 에너지의 불구덩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인터스텔라>를 보면 아마도 킵 손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이론은 덧차원(extra dimension)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원래 3차원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일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요. 덧차원 이론은 1920년대에 상대성이론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에 다시 덧차원이 큰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물리학의 해묵은 문제 중 하나인 중력이 왜 그렇게 약한가에 대한 답을 덧차원이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력은 전자기력에 비해서 대략 배 정도 작습니다. 지구의 모든 질량이 우리 몸뚱이를 잡아당겨도, 우리는 손쉽게 그 힘을 이기고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중력이 워낙 약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에 덧차원이 있다면, 원래 중력은 약하지 않은데 중력이 덧차원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3차원에서는 중력이 약하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덧차원 이론에서는 중력이 덧차원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요. 실제로 입자가속기 등에서 과학자들은 덧차원의 신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 했습니다. 만약에 덧차원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면, 제 생각에 이는 과학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과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선 미안합니다. 한국의 기초과학이 이 모양인 것도, 여태 노벨 과학상 하나 없는 것도, 그래서 머지않은 미래에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차적으로는 저 같은 과학자들이 못난 탓입니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보니 사회의 무관심이나 정부의 수수방관이나 정치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보다 나은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책임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과학자들이 져야 합니다. <인터스텔라>가 증명하듯 좋은 콘텐츠는 독자나 관객의 반응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과학의 사회적 중요성을 주장한 만큼의 책임도 져 왔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그리고 4대강 논란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이 제때 제 목소리를 냈다면 국가적인 혼란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사회가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과학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말하기 전에, 사회에 대한 과학자의 책임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과학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현대 과학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어떤 과학 이슈가 터졌을 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습니다.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경제기사나 법률 기사를 볼 때마다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와 별도로 검색을 해 보곤 합니다. 피케티가 한국에서 강연했을 때 그 누구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과학은 예외일까요? 올 초 남극의 한 전파망원경에서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어느 방송사에서는 제게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과연 태초의 중력파가 피케티보다 쉬울까요? 알기 위한 지적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한국에서 기초과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과학은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스탠퍼드의 레너드 서스킨드는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현대 과학을 정초하기 위해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만 했다고 얘기합니다. <인터스텔라>가 쉽게 이해되던가요? 아빠 쿠퍼보다 늙어버린 딸 머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 여러분들도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현대 과학이 원래 어렵다는 것을, 어려운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현대 과학은 없습니다.

인터뷰는 영화로 시작해서 책으로, 책에서 다시 과학으로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책도, 영화도, 과학도 모두 사람의 이야기다. 결국 인터스텔라도 사람의 이야기 아니던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 첫 작품 웹툰 <샤먼>에서 과학자였던 안박사의 대사가 떠올랐다. 과학자도 결국 사람이고, 과학자의 연구는 어떤 방향이던 사람을 향하고 있다. 착한 방향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끝

2010년 8월 3일. 실험 쥐에게 새로 개발한 프리온을 주사하였다. 이전 버전의 프리온을 반복 주입한 쥐에게서는 치매 증상이 발견되었다. 새로운 프리온은 신경들 간의 연결 강도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 프리온 유전자는 망가진 PCDHXY 유전자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다. PDCHXY 유전자가 인간의 정신분열과 관계있다는 가설이 맞는다면 새로운 프리온을 주입한 쥐 역시 망가진 PDCHXY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 즉 정신분열과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녀의 죽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떠한 가설도 세울 수 없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