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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7일 08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16일 14시 12분 KST

굳이 올린 결혼식

내가 쭉 가지고 있었던 '결혼하고 싶은 욕구'는 사실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욕구'였던 것 같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관계를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욕구'. 서른 즈음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드러내는 것에 언제나 검열이 있었고, 그나마 커밍아웃이라는 형식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 내 게이로서의 모습을 밝히기 시작한 건 해 봤자 십 년이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조용히 버텨내는 선택지는 결국 감추기나 속이기, 이 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입을 닫는 순간 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Getty Images/Brand X

작년 여름에 올렸던 우리 결혼식의 준비 과정에서 음식, 의상, 초대 명단이나 식순 같은 다른 요소들에 비해 식장 섭외는 무척 간단했다. 위치와 분위기, 사이즈 등등 모든 면에서 가장 적합했던 섭외 1순위 게이바의 사장님은,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게이인권단체 국장 형과 인권운동 하면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국장 형의 소개로 여름에 올릴 결혼식의 대관을 아직 벚꽃이 피기 전부터 허락 받았었으니, 결혼식 할 때쯤엔 사장님이랑도 어느덧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너희 그런데 결혼식은 왜 올리려는 거야? 지금도 둘이 잘 살고 있구만 왜 굳이 결혼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흠...... 그러게. 안 그래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데 이런 세레모니를 우린 왜 하려고 하는 걸까? 일반들에겐 결혼이 워낙 공고한 관습이다 보니 그들은 굳이 "왜"라는 생각을 안 할 수도 있겠지만, 게이인 내가 형과 결혼을 하는 것은 확실히 "굳이" 하는 일이 분명했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 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은행에서 돈을 더 싸게 빌려줄 리도 없고 세금을 덜 떼갈 리도 없다. 결혼을 닦달하는 친척들에게 이제 총각이 아니니 고만 좀 달달 볶으라고 대놓고 밝힐 수도 없고 우리 둘을 반씩 닮은 아들 딸을 낳아 기를 수도 없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서로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확신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맞지만, 결혼의 전과 후가 극적으로 달라질 거라 기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이미 그때 동거만 2년 넘게 하면서 시간적 감정적 경제적 공유를 실천하고 있던 우리였으므로, 심지어는 첫날밤의 가슴 떨림 같은 것도 기대할 것이 못 되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결혼을 함으로써 얻는 게 뭐지?

내가 쭉 가지고 있었던 '결혼하고 싶은 욕구'는 사실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욕구'였던 것 같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관계를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욕구'. 서른 즈음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드러내는 것에 언제나 검열이 있었고, 그나마 커밍아웃이라는 형식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 내 게이로서의 모습을 밝히기 시작한 건 해 봤자 십 년이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조용히 버텨내는 선택지는 결국 감추기나 속이기, 이 둘 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입을 닫는 순간 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처음 커밍아웃 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가장 절실했던 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말하고 싶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는 '나'라는 세계를 정의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의 가장 귀한 감정들이 향한 곳이 내 세계가 향하는 곳이 되니까.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말하지 못한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 못하는 것과 똑같은 처지가 된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작년 여름 형과 나의 결혼식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하는 자리였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작은 게이바를 가득 채워준 40여명의 사람들에게 우리 둘이 이토록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크게 말하는 자리였다. 소수자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날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결혼식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증명하고자 한 자리였다.

결혼식 하는 동안 백 번쯤 웃고 열 번쯤 울고 세 번쯤 오열을 했던 것 같은데, 바 사장 형님은 한풀이도 이런 한풀이가 없겠다고,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나라 잃은 사람처럼 우냐고 할 정도였다. 축가로 형에게 금지된 사랑을 시키는 게 아니었어... 웃겨서 하객들이 빵 터질 줄 알았건만 내 눈물이 빵 터질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그리 억울한 게 많아서 눈에서 렌즈 빠질 정도로 울었나 싶기도 하다. 사실 나만큼 복에 겨운 게이도 드문데.

그날 엄마는 축사 중에서, 새벽 안개 가득한 우리의 앞날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고 하셨다. 요 근래 새삼스레, 새삼스럽지만 절실하게 다시 든 생각이지만, 안개 가득한 우리의 앞날을 헤쳐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목소리인 것 같다. 운동이 될 만큼의 큰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딱 내 옆 사람에게만 이야기하는 거라도, 그 덕분으로 한 치의 안개는 걷히는 것 같다. 한 치씩 한 치씩 걷어나간다면 언젠간 남자와 남자가 결혼식을 올리는 게 '굳이 하는 말하기'가 아닌 일이 되지 않을까.

(www.snulife.com에 게시했던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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