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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3일 07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12일 14시 12분 KST

서울시향 사태의 본질은 '정명훈의 돈'이 아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철저히 조직 속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문제로, 갑이 을에게 행하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그 중심에 있다.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폭력에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누가 얼마를 받았다, 하는 돈 이야기와 처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혼까지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있는 서울시향 직원들의 바닥에 떨어진 인권보다 누구의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그게 정당한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구는 태도를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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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부터 진보 언론에 이르기까지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다가, 얼마나 긴 글이 될지 모르겠으나 다시 창을 열었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그 사회에서 약자들이 어떻게 대우받는가, 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여자, 어린아이, 노인, 유색 인종, 외국인, 성적 소수자, 노동자, 동물....사회에서 이들이 대우받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어디쯤에 와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갑-을 관계에서 평생 을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을로 살아갈 것 같은 나에게, 일터에서 들어야 하는 폭언과 막말, 성추행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일하는 와중에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상식과 도의를 벗어난 일이지만 상대의 지위가 더 높을 경우, 사회속에 만연한 '을'들에게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 멀리 갈 것 없이 마카다미아넛 사건이 이 단면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함부로 던지는 말과 호기심 어린 시선이 유발하는 불쾌감을 성추행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나 역시 자주 성추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고 명백한 인권 침해이지만 현실에서는 버젓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난다. 현실이 이런데 굳이 법이 규정하는 인권의 범주를 예로 들어야 할까. 유럽연합인권조약이나 이미 18세기에 선포된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거창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프랑스 뮈지크에서 이번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의 발언들을 그대로 옮겨 기사를 올렸다. 한번 번역을 거친 표현이지만 문장들을 따라가고 있노라니 한번 더 낯이 뜨겁다. 이제 파리에서 앞으로 만나는 음악가들이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인지를 물어올 것이다. 녹취된 파일 속 표현들은 그나마 나은 것이고, 한번 시작되면 폭언이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지속되었다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아무리 수직적인 관계일 지라도 이런 야만과 폭력이 행해질 수 있는 걸까,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2014년, 대한민국의 서울, 그것도 서울시 소속의 공공기관,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런 폭력에 사정없이 노출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준다. 폭언과 성추행이 갑-을 관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가해자는 왜 그때 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느냐, 배후에 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정정당당하게 나서서 플랭카드를 들고 퇴진 요구를 하라,고 한다. 수치심을 느낀 피해자가 바로 성추행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그게 되는 분위기였다면 사태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철저히 조직 속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문제로, 갑이 을에게 행하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그 중심에 있다. 회사는 개인의 노동력에 돈을 지불한다. 계약서는 이 교환조건을 문서화시킨다. 우리는 보통 일을 하고, 대가로 돈을 받는다. 하지만 돈으로 한 인간의 정신과 영혼, 인간의 격과 존엄성까지 구매할 수는 없다. 모멸을 온몸으로 겪다가 더 이상 못 견딘 직원들의 절반이 회사를 떠났고 남은 이들은 또 다른 수장에게 긴급 도움을 청했다.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명훈은 또다른 수장으로서, 인권 유린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박원순 시장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이 상태로는 일할 수 없고 내가 그만두겠다, 고. 지난 10월의 일이다. 만약 그리고 박현정 대표가 사퇴를 했다면 아마 모든 이야기들은 서울시향 내부에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직원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다 한들, 사실 정명훈과 대단히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은 아니다. 그는 서울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고, 그저 예술 감독이자 지휘자로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무대에서 지휘를 할 뿐이다.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사조직으로 운영할래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는 그저 3년짜리 계약서에 싸인한 지휘자일 뿐, 직접 행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지난 5월 파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했다. 첫째로 나는 인간이고 둘째로 음악가이며 셋째로는 한국인이라고. 2012년 아들에게 사고가 났을 때 직접 간호를 하느라, 지휘자로서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영예중 하나인, 11년만에 초청받은 베를린필 객원연주를 비롯해 파리와 유럽의 모든 중요한 공연을 두달 가까이 연달아 취소했었다. 다시 베를린필 객원 지휘를 맡은 소감이 어떤지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인간다움을 위협받고 있는 부하 직원들의 처지를 무시할 수 있었을까.

12월에 갱신해야하는 3년짜리 재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정명훈이 정말 계산이 빠르고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었다면, 모른척 했거나 12월 재계약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일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았다.

반면 폭언을 자행한 당사자인 박현정 대표는 방만한 경영을 보다 못해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꽃밭 가꾸듯 온 열정을 쏟아내는 와중에, 진심 어린 열의가 지나쳐 잠시 화가 나서 이성을 잃고 거친 말을 뱉었으나 맥락과 상황을 보아야 한다. 반성하고 있으며 악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2년 가까이 대표를 맡은 집단을 엉망진창으로 운영되는 정명훈 사조직으로 폄훼하기에 바쁘다.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시절, 권력을 쥐고 있었고 그 최고 권력을 더 오래 유지하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재자들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말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그들이 휘둘렀던 공포정치의 논리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당시 부당한 독재에 대해 저항하며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향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독재자들은,이렇게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고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변명은 시대가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1.

배후로 지목된 정명훈과 박원순에게 논란이 옮겨가며, 진흙탕 싸움에 신이 난 언론은 그들이 견제하는 서울 시장의 대권 야욕을 들먹인다. 이 사건을 평등, 진보, 참언론을 추구하는 매체에서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전혀 다른 장르에 몸담고 있는 예술가가 나서서 한마디씩 한다. 업계에서는 상식적인 지휘자의 연봉, 음악가로서 당연한 부대 활동을 문제 삼는다. 아보 파르트와 키스 자렛 등 재즈와 클래식을 걸쳐 인류의 자산이라 할만한 명반들을 남긴 손꼽히는 명문 음반사 ECM은 '정명훈 둘째 아들이 프로듀서로 일하는 음반사' 로 격하된다. 1997년에 타계한 리히테르와, 최근 17년 만에 내한했던 피르스까지 소환되어, 예술가는 이래야 하고, 피아니스트는 저래야 한다고 각자 한마디씩 말한다. 평생 대기실 문을 잠그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 유일한 낙인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욕망할 만큼 특별한 음색을 지녔으나 무한 경쟁에서 도태되어 개인이 구매하는 것 외에는 소장하기 힘든 오스트리아산 피아노를 구입한 것까지 비아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놀랍다. 피아니스트의 피아노가 필수불가결한 무엇이 아니라 버킨백이나 시계, 스포츠카와 비슷한 물품인가? 이제 회갑을 넘긴 그가 여전히 탐욕에 가득 차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에게 연주 기회를 주지 않는다니, 정명훈 덕에 콩쿨 우승 직후 라디오 프랑스와 협연을 하거나 프랑스는 물론 주요 극장으로 손꼽히는 무대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선욱, 조성진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칼럼을 쓴 필자에게 음악이란,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레코딩을 여러 번 반복해 듣는 것이고, 그 레코딩으로 이상적인 피아니즘을 정의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럽에서 지내다보면 미스터치로 가득한 리히테르의 말년 연주를 실제로 들었다거나, 더이상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게 된 누레예프가 형편 없이 망친 공연을 직접 본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다.마스터 클래스에서 오랜 시간 지켜봤던 피르스가 얼마나 기질이 예민하고 날 서 있는지도 직접 보았다. 음반과 자서전 등으로만 접했던 전설적 예술가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실연에서 자주 접할 수 없고 자주 내한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흠없는 모습으로 영원히 박제가 되어 남을 것이다. 레코딩이 가진 가치도 폄하하지 않지만, 음은 공기의 진동이며, 그 진동을 실제로 들을 때의 감동이 가장 강렬하다. 막연하게 필자가 악기를 다뤄봤을까, 실황 공연에 가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시와 소설을 쓴다는데, 소문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평균보다 많이 읽는 편인 내가 아직 그의 작품을 한번도 접하지 못했으니, 그의 예술세계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시로 등단했고, 혁명을 꿈꾸는 시인으로 살다 기회가 닿아 소설도 몇 편 썼다니, 고개가 갸웃해진다. 시와 소설의 장르 구분이 음악계에서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의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계갸 명확한 한국 문단에서, 따로 등단을 하지 않고 소설 쓰는 행보를 보인 시인이, 어째서 피아니스트로서 콩쿨 데뷔 후 별로 활동도 안 했는데, 지휘나 할 것이지 손주와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음반을 내는지 씁쓸하다, 라고 했을까. 문학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시인이 먼저 되었지만 소설만으로 가능한 것을 위해 소설을 썼다면, 이 세상 누구보다 한 음악가가, 지휘자로서 살아왔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피아노를 간절히 열망해왔다는 그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평생 한번도 클래식 연주회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 이라는 구절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2005년 가을,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21년 만에 다시 내한했을 때, 예술의 전당 합창석(가장 싼 좌석)의 가격은 9만원이었고 최고가 좌석은 45만원이었다. 몇 주 지나면 10년 전이니, 그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다면 지금쯤 체감 물가로는 얼마일까. 그 이후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2,3년에 한번 꼴로 더 자주 오고 있지만 2005년에는 그랬다. 언제 또 베를린 필하모닉이 서울에 올지 모르니 무조건 간다, 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2013년 5월, 정명훈 지휘로 들은 서울시향 베르디 레퀴엠과 바그너 공연 티켓 가격은 12만원, 최고가 좌석 가격이었다. 2005년의 베를린 필하모닉과 2014년의 서울 시향을 대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오케스트라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본다면, 서울 시향의 가장 싼 좌석이 1만원에서 시작하는 걸 감안한다면, 실제로 '우리 오케스트라' 에 지불하는 비용은 영화와 뮤지컬, 커피 혹은 밥값에 비할 만하다. 해외 유명악단이 아닌 '우리 오케스트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비용이다.

이것이 사치라고 한다면, 그래,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실황 연주나 음반으로 담긴 연주들이 라디오 음악방송을 통해 전파를 타고,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그 음악을 듣고 접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음악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택시에서도 버스에서도 음악 안에 머무를 수 있다. 하루종일 영업장에 매달리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과도한 업무에 치인 직장인들도 공연장에 직접 갈 여유는 없더라도, 라디오만 켜면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다수에게 접근 가능한 무엇이 된다. 그 무형의 가치는 얼마라고 딱, 환산하기 어렵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비행기값과 호텔숙박 비용까지 모두 지불하는 셈인 베를린필의 티켓 가격이라면 사치, 가 맞지만 서울 시향의 티켓 가격은 그래도 내가 누릴 수 있는 무엇이라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정도는 누릴만 하다고 해야 더 적확하지 않을까.

이전 인터뷰이였고, 예술 전반에 대한 심미안과 유난히 영화 속 음악 선택이 남다른, 클래식 마니아로 알려진 모 영화 감독이 2013년 8월 서울시향의 말러 9번을 듣고 보낸 이메일을 기억한다. 이런 수준의 연주를 서울에서 듣게 되는 날이 오게 될줄은 몰랐다고. 그간 서울 시향의 연주를 지켜본 사람들은 아마 같은 마음일 것이다.

2.

서울시향의 박현정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정년을 넘긴 정명훈의 막내아들 피아노 선생을 갖다 놓았다, 라고 말했다. 이 워딩은 얼핏 들으면 아무런 능력이 없는 피아노 선생을 자기 아들 좀 가르쳤다는 인연으로 낙하산 인사를 행사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 피아니스트는 연배가 있는 클래식 음악을 좀 들었다 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알려진 연주자로, 공연자문위원을 맡아 그저 직위에 맞는 급여를 받아갔다. 1세대 피아니스트인 이 피아니스트는 2010년 한 해에만 10억, 7년간 36억원의 후원금을 유치해왔다. 음악계는 물론, 그간 쌓아온 인맥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열성을 다해 후원을 얻어내고자 발벗고 뛰었겠는가. 자기 급여의 10배, 20배 이상의 후원비용을 유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년을 문제삼을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인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낭비다. 평균수명 100세시대인 요즘, 60대 초반의 정년을 지났다고, 쓸모 없는 노인네 취급을 하며 연로하다고 실무에서 배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지만,윗 세대가 쌓은 무형의 자산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 현장에 와서 시간을 보내며 일을 배워도 대체될 수 없다. 돈으로도 절대로 살 수 없는 경험과 노하우, 네트워크, 인맥이 바로 그렇다. 공연 예술계에서는 이런 자산들이 더욱 귀하고 가치 있다. 이런 귀한 자산들이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대에 전달되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서울 시향이 이미 독립된 법인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3.

보수 언론을 대상으로, 이 퇴진 요구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서울시에서 다듬은 수준의 문장이다, 라는 한쪽의 주장을 열심히 보도했다. 서울시향은 독립된 법인으로 서울시의 예산을 받아 별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박대표의 눈에는 (엑셀도 못하는) 직원들의 수준에 이런 완벽하게 다듬어진 문장이 담긴 문서를 작성하는 건 불가능한 무엇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기자들과 전송한 호소문에사용된 메일 주소가 해외 메일 계정이니,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배후의 증거가 된다고 말한다.바티칸이라도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대표의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문화계 아이콘인 정명훈을 잡아두고, 대권을 준비하면서 표심을 위해 평양공연을 기획하는 것이라고, 보수 언론은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완벽히 사실과 다른 거짓말이다.

2011년 9월 추석, 정명훈의 첫 북한 방문은 이미 수달 전부터 준비되었던 것이었다. 당시의 서울 시장은 오세훈이었다. 무상급식이라는 덫을 놓아 스스로 사퇴한것이 8월 26일, 보궐 선거가 10월 26일이었으니, 2011년 9월, 박원순은 서울 시장은커녕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지 않았다. 정명훈이 평양을 방문해 예술 교류를 도모하고 평양과 서울에서 합동공연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 차원의 대북사회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당시 박원순은 시민운동가이자 인권변호사였고 무소속으로 당선되기 훨씬 전이니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정명훈의 방북을 일회성으로 만든 것은 오히려 당시 정권이었다. 처음 논의한 것과 달리, 평양과 서울에서의 합동공연이 부표처럼 떠도는 프로젝트가 되어 공중분해가 될뻔한 위기에,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 출신인 자크 랑의 전폭적인 지원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그 동안 모아뒀던 예산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2012년 3월, 서울시향과 은하수 교향악단의 남북 합동공연이 아닌, 북한 은하수 교향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합동공연이 파리에서 열리게 되었다. 공개된 리허설에서부터, 프랑스와 유럽 전체의 유력 일간지는 물론, 방송국에서 나온 사회부 기자들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는 기존의 명성에 음악으로의 화합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할 수 있었다. 규모와 희소성에서 비교할 수 없는 도빌 아시아 영화제, 파리한불영화제까지 얼굴을 내밀 수 있는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모습을 보였던 주불한국대사는 끝내 공연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왔다던 북한 측 외교관들만 만나볼 수 있었던 프랑스 언론들은 한국에서는 왜 아무도 안 왔지? 라며 이 상징적인 부재에 의문을 표했다. 정명훈 정도로 스케줄이 꽉찬 지휘자의 방북은 몇 주 사이에 그냥 뚝딱 이뤄지는 절차가 아니다. 애초에 서울시향 북한교류사업을 시작한 정권은 이명박 정권, 오세훈 시장 시절이었다. 박원순이 평양 공연을 위해 정명훈을 붙잡으려고 한다는 건 터무니 없이, 그냥 이 기회를 삼아 박원순을 종북으로 몰아 어떻게든 깎아 내리고 싶은 쪽에서 만들어 낸 상상력 빈약한 소설이다. 왜곡된 뉴스는 몇 개의 단어로만 대중들에게 전달되니까.

4.

박현정 대표는 정명훈이 먼저 집수리를 하니 호텔비를 요구했다, 공적인 자금인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이게 말이 되는 요구냐, 라고 한다. 이 진흙탕 싸움에서는 정말로 호텔비를 요구했는지 안했는지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2007년 호텔비 4천만원이 지급되었지만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을 감사에서 받은 이후, 그 비용을 도로 환급했던 정명훈이 무슨 이유로 호텔비를 먼저 요구했겠나. 비서가 이번에는 정명훈이 집 수리로 호텔에 머무른다고 말하자마자 박대표가 먼저 호텔비는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데, 호텔비를 결제하는 사람은 , 행정 최고 결정권자는 바로 박현정 대표다. 요구한 적도 없으나, 설령 호텔비를 요구했다고 해도, 공연예술계의 관행으로는 말이 된다. 오히려 그동안 서울의 자택에서 머물렀다는 것이 놀랍다.

지휘자에게는 일반적으로 1등석 항공권과 5성급 이상의 최고급 호텔이 제공된다. 지금 1회 연주료가 4천만원이 넘어간다, 는 식으로 이야기 되는데 그 1회 연주에는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2시간 남짓한 시간만이 아닌 리허설 시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정명훈이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비교해 보면, 두 악단의 수준차이 때문이겠지만 서울시향의 리허설 시간이 훨씬 더 길다. 두 곳의 오케스트라에서 동시에 악장을 맡고 있는 스베틀린에게서 들은 이야기니 헛소리가 아니다. 프랑스 악단이 초견에 강하기도 하고, 노동법에 명시된 주당 노동시간인 35시간을, 리허설과 연주를 포함해 초과할 수 없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전 국민이 지불하는 공영방송국 수신료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정부예산으로 운영된다. 정명훈은 서울시향과 무대를 준비하면서, 3시간짜리 리허설로 끝내지 않고 거의 2배에 가까운 시간을 들인다. 그가 원하는 음악적 수준을 위해서, 다른 유럽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긴 리허설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1회 연주료 4천만원은 큰 돈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 무대에서 그의 몸값이 그렇다. 오랑쥬 페스티벌과 같은 오페라 무대에서 그가 받는 지휘료는 말 그대로 정상급이다. 그가 현재 파리의 청중들과 음악계에서 누리고 있는 인지도는, 파리에 상주하는 다른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 다니엘레 가티보다 더 높다. 합창단을 빼놓고 순수하게 악단만 놓고 비교한다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실력은 명실상부하게 프랑스 최고라고 할 수있다. 다니엘레 가티는 로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마리스 얀손스의 뒤를 이어 맡을 사람이다. 정명훈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음악가들이 이 잘생긴 이탈리아인보다는 그래도 정명훈을 더 존경한다고, 스스럼없이 먼저 고백하듯 말한다. 젊은 시절 그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를 맡았던 90년대 초반을 복기하면서.

파리 오케스트라를 맡은 파보 예르비는 북미의 신시내티과 유럽의 도시들을(도이체 캄머 필하모니 브레멘, 프랑크푸르트라디오심포니, 파리오케스트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오간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그렇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리허설로 향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보니 1등석은 기본이고, 최고급 스파와 피트니스 시설과 서비스가 구비된, 공연장과 가까운 위치의 호텔 역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파보 예르비 이전의 전임 지휘자인 에센바흐에게 호텔 대신 알마-마르소에 위치한 최고급 아파트를 마련해주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았던, 사방이 그림으로 가득찬 그 아파트에는 최고급 스타인 웨이가 두 대 있었다. 에센바흐 역시 지휘자 이전에 피아니스트였다.

지휘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대우를 해줘야 하는가, 싶겠지만 한 곡의 교향곡을 위해, 1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집중에 이만한 가치를 지불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를 다루는 것은 인간이고, 그 단원들을 이끄는 것 역시 지휘자다. 최고의 음악은 지휘자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을 때 가능하기에 얼핏 보기에는 사치스럽게 보이겠으나, 음악계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졌다. 어디 지휘자 뿐이겠는가, 파리를 찾은 이름있는 솔리스트들은 대부분 공연장 근처 4-5성급 호텔에 머무른다. 정말 내키지 않지만, 이 논란을 이끄는 사람들이 '세계적인 급' 따지기 좋아하는것 같아 밝히자면, 이런 혜택은 전세계 20명 남짓한 정상급 지휘자들에게만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객원 지휘하러 온 젊은 유망주 지휘자에게도 이런 극진한 대접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최고의 안락한 환경을 제공할테니, 그 댓가로 당신은 우리에게 최상의 음악을 들려달라, 는 무언의 계약인 셈이다.

5.

한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그의 창작활동을 접한 적도 없지만, 본인은 작가라고 하는 사람이 예술가의 사회적인 책임감과 우리의 소중한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가, 에 대해 말하며 정명훈의 고액연봉을 줄기차게, 3년 넘게 집요하게 비난하고 있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그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왜곡해 한 지휘자의 세계적인 명성을 열심히 깎아 내렸고, 정명훈이 예술 감독직을 그만 두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자 지상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예술가로서의 최우선 책무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사회적 기여나 책임감이 아니라 우선 자신의 예술 세계를 쌓아나가는 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스스로 자신의 예술에 몰두하지 않은 예술가가, 내세울 만한 작품과 예술적 성취를 증명해보이기도 전에 사회적인 책임감을 운운 하는 건, 언젠가 아주 인상 깊게 읽은 영화감독/평론가들의 대담에서 보았던 '후지게 만들었는데 진정성이 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 지휘자를 음악가라는 카테고리안에 집어넣고 세계적 수준 운운하며 팩트가 아닌 내용으로 급을 논하며 흠집을 내놓고, 서울 시향이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니 마치 그가 녹을 받는 공무원과 같다는 논리로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민다. 연봉을 주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음악가에 불과하니 20억이면 정명훈과 계약을 해지하고 같은 돈으로 다른 정상급 지휘자를 데려오면 그만이다, 라는 주장은 이미 모순에 빠진다.

그가 그토록 경기를 일으키며 언급하는 고액 연봉인 20억으로 정명훈 이상의 다른 지휘자를 데려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휘자를 그냥 돈만 주면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패착인 것 같다. 프리랜서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나가야 하는 지휘자들은 유럽과 북미에 본거지를 두고 싶어 한다. 축구 선수가 프리미어 리그를 진출을 꿈꾸는 것과는 또 다른 지점이다. 고도의 집중과 체력 소모를 요하는 지휘의 특성상, 아시아의 악단을 맡는다는 것은 엄청난 시차로 인한 체력적 소모, 혹은 커리어적 저평가와 퇴보를 감당한다는 말과도 같다. 지휘자들은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수입과 자신의 커리어와 성취, 예술적 자존심을 동시에 고려해서 움직인다. 지휘자뿐 아니라 모든 음악가가, 예술가가 그럴 것이다. 예술에도 역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격이라는 것이 있다.

서울 시향에 현재 정명훈급의 지휘자를 데려온다면, 리허설 시간이 2배가 넘어가니 연간 20억으로는 해결 될 리가 없다. 20억은 연봉과 1회 공연당 지휘료, 왕복 일등석 항공권등 정명훈 개인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합한 총액이다. 140억은 지난 9년간의 비용을 한꺼번에 더해, 대중들을 한꺼번에 자극하려는 특별한 계산법이다.

그런데 정명훈 급의 외국인 지휘자자를 데려오려면, 우선 그가 커리어의 모험이 될 수 있는 서울에 올지 안 올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20억으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30억쯤 들어갈 것이다.외국인 지휘자들은 서울에 자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5성급 호텔 비용이 체류 기간 내내 제공되어야 한다. 한국어를 구사할리 없고 한국 실정을 모르니 통역사와 전담 비서가 필요하다. 리허설 추가 시간에 따른 추가 수당은 칼 같이 계산해 지급해야 할 것이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인이면 양반이고 동거인 혹은 여자 친구의 일등석 항공권까지 포함될 것이다.

그 지휘자가 비록 외국인이지만, 서울 시향의 음악적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자신이 유럽 혹은 북미에서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최정예 객원 수석 단원들을 저렴한 몸값을 주고 데려올 수 있도록 설득하기를 기대한다. (루세브, 바티, 페뤼숑과 같은 단원들이 서울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정명훈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연주하기 위함이다. 음악가들의 자존심이란 그런 것이다. 정명훈은 직접 나서서 서울 시향을 위해 음악적으로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헌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연주를 빛내기 위해 일회성으로 데려오는 객원수석이 아니라, 그들에게 책임감과 사명을 갖고 서울시향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단다.몇 년 만에 확연히 달라진 서울시향의 소리에는, 그만한 진심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서울시향의 발전을 위해 돈이 곧 시간인 그 외국인 단원들의 실력을 나눠주기를 바란다. 객원 단원들에게 전혀 돈이 안되는 수준의 비용으로 운영되고,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는 각종 아카데미와 마스터 클래스,실내악 공연을 하기를 권유할 것이다. 신작 커미션만으로도 바쁜 세계 최정상급 전업 작곡가를 데려와 세계/아시아 초연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짜서 현대 음악을 소개하고, 그 작곡가가 아무런 댓가없이 개인 시간을 할애하고, 심지어 공항에서도, 이동하는 택시에서도, 상주 작곡가로 초청받아 머물고 있는 호텔의 객실에서도 그 바쁜 일정 와중에도 짬을 내 후배 작곡가들의 작품을 봐주고 조언해 주기를 꿈꿔본다.

여름 페스티벌에서 이틀 간 최정상급 프로덕션의 오페라를 지휘하면서 받을 수 있는 비용의 1/3쯤 되는 지휘료로, 유럽 투어를 기획하고, 본인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단체에 협력을 의뢰해 악단 전체를 이끌고 유럽의 유수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지휘자가 서울에 선뜻 와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세계 10대 오케스트라들과 원하는 레퍼토리로 음반사를 골라 레코딩이 가능한 지휘자가 부득불 레코딩으로 자신의 성취를 남기려는 의욕에 가득차, 적극적 레코딩에 임하기를, 그래서 서울시향의 진정한 발전과 성취를 가져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2011년 정명훈에 대한 공격이 쏟아졌던 이유는 정명훈이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시절에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이명박의 사람이다, 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201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장이 바뀌었으니 서울시향의 리더도 바뀌어야 한다고, 흔히 말하는 코드 인사가 문화 예술계에서도 행해져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진보란 모름지기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 더 많이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예술적으로도 시대를 앞서 나가고자 하는 자세 아닌가. 그런데 '후지게 만들었는데 진정성이 있는 영화'와 그걸 보는 순간의 서글픔은 굳이 멀리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폭력에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누가 얼마를 받았다, 하는 돈 이야기와 처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혼까지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있는 서울시향 직원들의 바닥에 떨어진 인권보다 누구의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그게 정당한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구는 태도를 보인다. TV조선이나 한겨레나 어이없음과 두통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별다를 것도 없다. 이게 제일 슬프고 안타까운 사실이다. 언론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오려내 멋대로 진실을 호도하고 인간의 격보다 얼마를 받느냐, 가 중요한 것처럼 구는 것, 우리가 가진 예술가를 가치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 그리고 내가 태어난 도시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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